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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이 자라는 일요일들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봄, 여름 좀비 아빠의 김치찌개 조리법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밤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 가을 흔한, 가정식 백반 구석기 식단의 유행이 돌아올 때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의뢰가 없는 탐정, 겨울 펑크록 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 해설 | 이야기를 상상해드립니다_신샛별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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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 천장에는 수많은 옷이 비닐에 씌워 걸려 있었다. 몇 달이나 찾아가지 않은 옷들도 있었고 두 시간 뒤에 찾으러 온다는 옷도 있었다. 브랜드 옷도 있었고 시장에서 산 옷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모두 세탁소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가끔 그것들은 목을 맨 시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만들어져 나와서, 축축한 채로 다른 옷들과 뒤엉키다가, 결국엔 건조되어 천장에 나란히 매달리는 것. 그것이 세탁의 운명이었다.
---「선인장이 자라는 일요일들」 중에서 엄마의 별명은 내 이름이었다. 엄마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걸 좋아했다. 사실 내 이름은 엄마가 갖고 싶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전용 사우나에서 엄마는 종종 나의 이모나 언니로 불렸고, 나는 종종 엄마의 동생이나 조카처럼 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대가족이었다. 수많은 언니와 이모 사이에서 어떤 날은 이곳이 진짜 집이고 모두가 진짜 가족인 양 느껴졌다. ---「흔한, 가정식 백반」 중에서 어딘가 고장 나는 사람은 무언가를 간절히 열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어떤 것에도 열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순식간에 고장 나고 마는 것이다. 갑작스레.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의뢰가 없는 탐정, 겨울」 중에서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지, 어떤 것이 사라지고 어떤 것이 생겨나는 건지, 삶의 향방이라는 것이 이렇게 예측 가능해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나 이대로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남아 있는지. ---「펑크록 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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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의 성장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송지현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어느 날 불현듯이 ‘한 시절의 끝’과 마주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때 이들은 당황하거나 슬픔에 잠겨들지 않고 과거의 시간과 함께 자신이 무엇을 유실하게 되었는지를 골똘히 살펴본다. 자유와 혼란의 펑크punk 정신을 버리고, 규칙과 질서의 현실로 진입해가는 과정을 담은 「펑크록 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의 주인공도 그러하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진지했다. 무섭도록 고요한 시험장에서 나는, 이것이 나의 인생이고 연습 따위는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p. 207) 수능 시험장에서 난생처음 현실의 냉혹함을 마주한 ‘나’는 마치 고향을 찾듯 클럽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거리의 명물인 ‘빨대맨’을 만나 계시와도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펑크의 시대는 끝났네.” 이러한 정황은 표제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에서 “시절의 완성”이라는 제목의 자전적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는 인물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K의 자취방에 모여 허송세월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시절의 완성’, 즉 ‘성장’을 미룬다. 머리를 붉은색으로 염색하고 이성을 쫓아다니며 소설을 습작하거나 자살을 꿈꾼다.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사실 K의 자취방은 1층이었고, 창문은 아주 작았다. 사람이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아주, 작았다. 그곳에선 아무도 자살할 수 없었을 것이다. (p. 62)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유예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현실로부터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작가는 소설 말미에 담담하다 못해 산뜻한 어조로 명시한다. 그러면서 작중 인물들이 추구하는 죽음이 그저 무책임한 회피나 항복 선언이 되지 않도록, 죽음을 감내하는 방식으로 생의 연장이 가능해지는 역설을 보여주기도 한다. 라면이 익는 3분 동안 나는 내가 언제쯤 죽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물론 실업도 실연도 하지 않았을 때여야 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뒤여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컵라면을 후룩댔다. 몸이 따뜻해졌고, 면도칼 따위는 잊은 채로 편의점을 나설 수 있었다. (p. 182) ‘죽음’ 이후에 시작되는 에필로그의 삶 송지현의 소설에서 죽음은 상시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이다. 자살이든 사고사든 의문사든 거의 모든 소설에 죽음이 등장하는데, 그렇게 산재하는 죽음은 너무 평범하게 다뤄져 마치 사건조차 될 수 없는 듯하다. 「선인장이 자라는 일요일들」에서 사춘기에 접어든 언니의 자살 기도에 대한 가족들 반응 또한 그렇다. 가족들은 언니의 방황을 “축축하게 젖어버리는 어느 한 시기”쯤으로 여기고 “저러다가 사람 돼서 나오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마치 죽음 충동이란 누구나 한 번은 겪는 통과의례라는 듯이 말이다. 여기에는 성장통이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어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삶의 의지가 회복된다는 작가의 경험적 확신이 어려 있다. 사이클 머신의 페달을 꾹 밟았다. 아무 데로도 나아가지 않는, 조금은 이상한 자전거였다. 그러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오히려 이런 것들이다. 나는 한 발 한 발 순서대로 번갈아 페달을 밟았다. 진화하는 느낌이었다. (p. 184) 어쩌면 송지현에게 죽음이란 새로운 탄생으로, 체념을 통해 어른의 삶으로 나아가는 성인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그러므로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는 어느새 성장을 마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리하여 남은 생을 기꺼이 살아가도록 북돋워주는 고마운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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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의 소설들은 불안하고 유약한 마음을 치료해주는 가장 간편하고 신속한 레시피다. 마음의 감기 때문에 자꾸만 기침이 나올 때, 나는 송지현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리곤 한다. 기꺼이 우스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을 통해 나는 우울도 절망도, 심지어는 들끓는 사랑조차도 찰나의 에필로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처럼 고통스러웠던 일들도, 감정도 곧 견딜 만해지고 심지어는 조금 크게 웃을 수도 있게 된다. 독자에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소설은 흔치 않다.
일상에 지쳐, 관계에 지쳐 자꾸만 눕고 싶을 때 송지현의 소설은 우리를 웃겨주며, 또 울려주며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게 만든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한없이 일상에 가까운 방식으로. - 박상영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