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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간
≪산문시≫ 늘 홀로 나그네와 그의 그림자 보잘것없는 행색 아름다운 별 저마다 제 몫을 뒤집힌 이면 삶의 참맛 ≪몇 편의 시≫ 오 지평선 ≪타원형 천창≫ (그 시절 석탄은) (다락방 구석구석에서) 봄의 허무 시간의 너울 (등불이 아직) 걷고 또 걷기 고된 삶 (하루 첫새벽에 나는) 완전한 몰락 또 다른 하늘에서 (한번 눈을 뜨면) 서로 가슴을 열고 (그 겨울은 나를) 늘 여기에 (햇살 한 자락) 심장 종 낯선 세계 속에서 ≪지붕의 석판들≫ 지붕의 석판 위에 길 문턱에서 이튿날 공기 뇌우 비밀 분(分) 떠돌이 방파제 태양 맞은편 별 밝은 하늘 거리 네거리 유성 어두운 오솔길 두 세계 사이에서 시간이 되기 전에 ≪채색된 별들≫ 해묵은 항구들 파도 소리 일손 ≪위대한 자연≫ 그 추억 ≪튀어 오르는 공≫ 끝장난 남자 시간이 흐른다 말 만져 볼 수 없는 현실 ≪바람의 근원≫ 메마른 날씨 얼마나 변하는가 시 작품 수평 그것이 모든 걸 말한다 신호들 끝없는 여행들 여행 ≪흰 돌들≫ 기억 낯선 눈길 하얀 가면 나누는 말 들판에서 들판으로 사실상 어떤 현존 마지막에 움직이는 자 늘 똑같은 이 ≪고철≫ 돌아서는 마음 다정 지평을 들이켜는 자들 ≪잔 가득≫ 마침내 ≪주검들의 노래≫ 잃어버린 길―활주로 감옥 가늠할 길 없는 저 너머 ≪건선거(乾船渠)≫ 출발 ≪초록 숲≫ 안전장치 이 사막에서 ≪유리 웅덩이들≫ 영혼의 불멸성 그 적막한 여백들 ≪유리 웅덩이들≫ 1929년 판본에 덧붙이는 시인의 말 ≪천장의 햇살≫ 형상 전등 괘종시계 ≪바다의 자유≫ 바다의 자유 숨결 낱말의 행복 정신은 바깥에 그림자의 이름 ≪일렁이는 모래≫ ≪되찾은 시 작품들≫ 삶의 늦자락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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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꺼지면, 너는 밤의 어둠 앞에 홀로 남는다. 그러면 너를 환히 밝히는 것은 너의 열린 두 눈.
뜨락에서, 네가 듣지 못하는 소리들이 올라온다. 나뭇잎들과 가지들의 갈색 반점에서, 물이 아침까지 흐른다, 그리고 목소리를 바꾼다. 그러면, 불쑥, 너는 창문을 틀 삼은 하얀 초상화를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나가지 않고 지켜보지 않는다. 바람조차 나무들을 흔들러 불어오지 않는다, 상처 받은 네 정신이 추스르고 일어나 맴도는 이 정체(停滯)와 이 침묵에 활기를 주러. ---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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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주의에서 초현실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20세기 전반에 등장한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 1889∼1960)는 프랑스 현대시에서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독보적인 목소리를 지킨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굳이 계보를 세워 본다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감각적 시어로 표현하려 한 랭보와 여백으로 드러내려 한 말라르메 사이에 그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겠다. 그의 시와 시론은 훗날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는 젊은 앙드레 브르통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프랑스 초현실주의의 태동에 실질적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는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초월(sur-)’이라는 방식으로 대응한 초현실주의에 휩쓸리는 대신, 황폐해진 “[감각] 현실을 끌어안[으면서]” 시 쓰기에서 참된 존재 방식을 탐색한다. 그의 시학은 1950년대 이후 본푸아(Yves Bonnefoy), 뒤 부셰(Andre Du Bouchet), 뒤팽(Jacques Dupin), 자코테(Philippe Jaccottet) 등 일부 시인이 감각 현실을 외면한 초현실주의에 맞서 펼친 존재론적 시학의 출현에 영향을 준다.
르베르디의 시는 감각 현실 너머로 길 트려는 의지와 그 밀도 높은 시적 형상화를 보여 준다. 그 형상화는 그의 세계 인식을 반영하며, 그 인식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내재한다. 그의 시가 표현하는 서정의 본질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 내면에 억압된 정서의 표출에 있으며, 이는 곧 무한이라는 존재 본연 회복의 꿈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감각 현실의 한계를 존재 결핍으로 체험하고 본질 된 세계, 곧 실재에 대한 참된 인식을 추구하는 시적 통찰의 한 사례에서 오늘날 현대인의 존재 결핍과 불안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만난다. 실존의 매순간이 존재 위기인 삶에서 시인은 자신을 낯선 경험으로, 늘 새로운 길로 내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물이 본래 무형임을 깨치고 형상을 허상으로 인식하는 시인에게 감각 현실의 한계에서 절감하는 존재 결핍은 존재 부정이 아닌, 존재 본연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체험된다. 이러한 인식 전환 속에서 그의 감수성은 삶의 본래 모습인 무형에서 존재 자유의 가능성을 읽어 낸다. 그 특유의 시적 형상화는 존재 결핍을 형상으로 메우려 하는 대신, 형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그의 시선을 투영한다. 이처럼 르베르디의 시는 감각 현실에 구속받는 인간 조건 속에서 존재 자유 추구와 존재 본연 회복이라는 인간의 보편 의지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참된 실재 인식이 궁극에는 삶의 영역 확장 가능성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시 창작의 길은 그에 동원되는 삶의 인식 방법과 그 표현 방식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터 가는 일이다. 시선을 스치는 덧없는 삶의 순간들을 뒤쫓아 시인이 터 나가는 그 길은 매순간 존재의 심연에 열려 있다. 르베르디의 시 쓰기는 걸음걸음 열리는 그 심연으로 추락을 무릅쓰는 길트기다. 그런 뜻에서 그것은 시련인 동시에 “길 없는 순수한 환희”일 수 있다. 그것이 열어 가는 길은 이름 붙지 않은 길, 이름 붙일 수 없는 길이라는 점에서, 노자의 도(道)를 연상케 한다. 그 길은 유한과 무한을, 감각과 정신을 아우르며 인간을 절대 근원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노자가 이름 붙일 수 없는 도를 가리켜 “구체적인 형체가 없고, 어디에 매여 있지 않는 [그] 모습을 찬탄”하기 위해 쓴 “황홀(恍惚)”이란 수식이 어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