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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재생된 누드
제1장 누드화의 출현과 쇠퇴 그리고 부활 제2장 신체예술 : 나체로의 여정 제3장 변하는 공간 : 여성의 관점 제4장 화가임을 용서하소서 제5장 누드초상화 제6장 로댕 이후, 더 할 말이 남아 있는가? 제7장 극한의 예술 NOTES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찾아보기 |
Frances Borz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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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까지 여성의 누드는 미술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에서도 남성의 나체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이나 고전 영웅의 모습을 그려 신의 완벽함을 표현하는 그리스의 전통은 지속되었지만 여체가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었다. 고대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대 예술가들과 후원자들은 삼손, 헤라클레스 혹은 이탈리아의 경우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통해 존경스런 인물을 인간적으로 구체화시켰다. 반면에 이브나 아름답지만 사악한 비너스처럼 나체의 여성은 죄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예술가들이 실존하던 실제 세계는 교회의 교리를 중시한 탓에 여성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성과 도덕성은 남성만이 주장할 수 있었고 여성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고 본능적이라 여겨 비교 자체를 꺼렸다. 그래서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는 전쟁의 신 마스만큼 도덕적으로 높이 칭송받지 못했다. 신을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남성의 나체가 최고였다.
이러한 이상적인 누드의 성별이 바뀐 것은 16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1510년에 베니스에서 조르조네가 처음으로 누워 있는 여체를 그린 『잠자는 비너스』를 발표하면서 여성 누드의 장을 열었다. 실물 크기로 그려진 비너스는 아름답고 소극적인 완벽함을 표현하면서도 어떤 도덕적 설명도 필요하지 않게 만들었다. 비스듬히 누워 한 손을 머리에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성기를 가리고 부끄러운 듯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당대 예술계에 처음으로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누드화였다. 그녀는 모든 이의 머릿속에 각인되었으며 후대 아마추어 예술 수업에서도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클라크의 우아한 작품은 여체가 ‘불편한 느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옷을 벗고 예술가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래로 면면히 이어진 전통의 부활을 이루어냈다. 물론 사람들은 이 기품 있는 누드화를 얻기 위해서 실제로 한 여성이 남성 앞에서 옷을 벗고 나체를 드러냈을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술계 이단아들을 매혹시킨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매혹적인 자유를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누드화가 시작된 초기 시대에서부터 예술가들을 위해 기꺼이 옷을 벗는 여성들에겐 그들만의 강렬한 성적 아우라가 있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철학자 플리니는 로마의 미술가 아렐리우스가 부인이 가진 성적 아우라를 여신에게 투영시켜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 속에 매춘부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18세기에 설립된 런던 로열 아카데미는 학생들에게 더 나은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 여성 모델에게 더 높은 모델료를 주었다. 다르게 해석하면 누드모델은 매춘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유럽 아카데미에서는 젊은 남성이 여성의 나체를 그리다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될까 봐 매우 염려해서 여성 모델을 쓰지 않고 그리는 것을 더 선호했다. ---「누드화의 출현과 쇠퇴 그리고 부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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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문제와
모순들을 다루는 매우 불편한 진실 예술에서 누드는 단순한 사실을 묘사하는 단계를 넘어선 허구의 승리로 볼 수 있다. 그 위대한 성공을 통해 누드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타락한 성욕의 표현, 에로티시즘 혹은 불완전성과 분리될 수 있었다. 의학에서 비만, 거식증, 질병, 장기 기능부전과 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사례에 진단을 내려 인간의 신체가 가진 불완전성을 발견하는 것과는 달리 미술은 이상적이고 완벽한 젊은 신체를 보여주는 학문으로 기능하면서 일상의 현실을 정화해 왔다. 그렇다면 왜 현대 미술관에 전시된 누드는 불편한 것일까? 모든 현대 예술가들은 이상적인 누드를 표현하는 대신 당대의 문제가 투영된 대담한 누드를 선보였다. 이 책의 저자 프랜시스 보르젤로는 케니스 클라크의 고전인 『누드(1956)』가 보여주는 문명화되고 위생적이며 완벽한 예술적 누드와 원시적이고 불편하며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지만 흥미를 끄는 현대 사회의 누드를 비교한다. 남성과 여성을 대담하고 좀 더 섬세하게 다루는 새로운 누드는 자극적인 모습으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우리 시대에 몸을 둘러싼 문제와 모순들을 다루기 위해 생성된 매우 사실적인 누드이다. 이 책은 전 세계 예술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당대 누드 작품을 통해 20~21세기 누드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이 책은 특별히 엄선한 아름다운 누드 사진과 더불어 흥미로운 내용을 수록했다. 첫 장에서는 삶과 죽음, 부활이라는 주제로 누드가 죽었다고 성급하게 단정 지은 예술 분야에서 누드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고 번성했는지 살펴본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신체예술과 행위예술에 초점을 맞추어 주제에 접근한다. 누드를 바라보는 여성 예술가들의 새로운 관점을 비롯해 회화, 초상화, 조각 속 누드예술과 일상 사이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넘나드는 극단적인 작품들을 살펴본다. 이 책의 저자 보르젤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술을 살펴보고 이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능숙한 소통가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신체와 누드에 관한 근대 예술과 당대 예술, 역사적 문화적 고정관념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싶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