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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잉여의 몫
이수형 비평집
이수형
문학과지성사 20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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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Ⅰ 문학이 할 수 있는 것
문학의 무상성(無償性)
배반과 복수의 곤경에서
근대문학의 기획
욕망과 상상력

Ⅱ 자유롭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결정론적 세계의 증상
고장 난 기계가 사랑을 꿈꾸는가
무력한 사람들을 위한 상상
작가의 윤리와 소설의 윤리
무엇을 할 것인가
91년의 애도를 위하여
상실에서 재생으로
가장 나종 지니인 것

Ⅲ 언어의 안팎?재현, 커뮤니케이션, 수행성 기타
언어의 발생
그는 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미디어의 환상을 넘어서
공동체와 타자
이야기는 힘이 세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
수취(受取)의 정신경제학
작용·반작용의 법칙, 단 부작용에 주의할 것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문학 평론을 시작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 『문학, 잉여의 몫』, 『이청준과 교환의 서사』, 『1960년대 소설 연구』, 『감정을 수행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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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9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26쪽 | 405g | 148*210*30mm
ISBN13
9788932023496

출판사 리뷰

문학은 잉여 중의 잉여
“그 잉여는 아마도 자유롭고 관대한 윤리로 나아가는 도정 위에 있을 것이다.”


문학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원동력에 대하여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이수형의 첫 문학평론집 『문학, 잉여의 몫』(문학과지성사, 2012)이 출간됐다. 저자는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평단에 나왔고, 등단 이래 비평가적 존재 기반에 대한 모색을 거듭하며 당대의 문학을 읽고 있다. 저자의 이와 같은 고민은 문학의 본질과 역할, 그리고 가치에 천착하게 했다. 어쩌면 새삼스러울 수도 있는 이 작업은 “왜 쓰는가”라는 사르트르의 질문을 받아 안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라는 김현의 진술을 경유했고, 지금은 문학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도 끊임없이 생산되게 하는 원동력을 확인하는 중이다.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코드는 없다

저자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반복되는 현상을 진단하면서 문학 체계 안에 그러한 질문을 억압하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코드를 묻는 일이 기존의 문학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끊임없이 자신의 체계를 갱신해왔으며 그 주역은 다름 아닌 문학적 코드에 관한 의문에 답하는 다양하고 과감한 시도들이었다. 여기에서 저자가 진지하게 되던지는 물음이 눈길을 끈다.

문학과 비문학을 나누고 또 문학을 그 자체로 판단하도록 하는 규정으로서의 코드는 어디에 있는가? 그런 것은 없지 않은가? 실은, 문학을 문학만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주어진 코드 없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지 않은가? 문학을 문학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언제나 감성의 분할을 재구성하고 그 분할선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이라는 체계는 애초부터 정해진 코드가 없다는 사실을 은폐(억압)한 채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pp. 49~50)

문학의 정의와 효용에 대한 논의에 다른 방식을 제안하는 질문이다. 문학에서 코드가 있다고 믿어졌던, 실제로는 텅 빈 공간이 문학이 주거나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가치들과 관계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문학의 잉여에서 잉여로서의 문학으로

문학에 코드가 없다는 선언이 나오기까지는 문학이 수용자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강요는 곧 의도이며 의도는 필요에서 온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잉여가 어떤 것에서 필요를 뺀 나머지를 일컫는다고 한다면 이렇듯 태생적으로 옳고 그름의 판별이 무의미한 문학은 그 자체로 잉여다. 문학은 애초에 내재한 의도나 의미보다는 잉여 자체가 본질이라는 것이다.

문학은 힘이 세다

문학이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참이나 거짓을 판단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의를 불러일으킨다. 문학은 늘 묵묵히 삶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떠맡으려 했다. 언제나 가치와 윤리의 정립과 함께했고(「욕망과 상상력」), 특정 시대의 아픔을 위무하며(「91년의 애도를 위하여」), 행복했던 한때가 더욱 빛을 발하게 하고(「가장 나종 지니인 것」), 분열을 견뎌 현실의 균열을 살아내게 해주기도 한다(「그는 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렇게 문학은 힘이 세다.

자유롭고 관대한 윤리로 나아가는 도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에는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보상이 없다는 것은 문학이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쓸데없는 글더미에 티끌과 먼지를 더하는, 또 한 번 무심한 짓의 반복”일지라도 문학은 씌어진다. 씌어진다는 것, 읽힌다는 것 자체를 보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문학이 잉여 중의 잉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학이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는 비밀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이러한 잉여가 자유롭고 관대한 윤리로 나아가는 도정 위에 있음을 믿는다고 한다. 그의 비평가적 존재의 기반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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