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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부 도전 1. 고통, 그리고 의심 2. 고통을 위한 변명 3. 강제수용소에서 배운다 4. 초도덕의 위기 5. 진화심리학은 믿을 만한가? 2부 응답 6. 프랜시스 쉐퍼의 유산 7. T. S. 엘리엇의 원대한 구상 8. 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다 9. 복음주의자는 누구인가? 3부 예술 10. 채찍과 못, 땅에 쓴 글씨 11. 예술과 선전 사이 12. 하나님의 음악 13. 헨델의 선물 맺음말 | 옮긴이의 말 | 주 |
Philip Yanc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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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셨는지는 예수라는 역사적 실체를 통해 알 수 있다. 주님의 사랑을 회의하는 이들은 인간의 고통에 반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친밀하고 인격적인 반응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그리스도를 다시 보아야 한다. 사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하나님과 고통에 대한 회의는 상당 부분 걸러지게 마련이다. --- p.30쪽
현대 사회는 고통을 원수 대하듯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아픈지 묻지도 않고 없애버리려 합니다. 진통제는 아픔을 잠재울 수 있지만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심리학도 매한가지라고 믿습니다. 죄책감을 악으로 규정하고 어떻게든 억압하거나 잘라내려 합니다. 무조건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들 하죠. 원하는 대로 살라는 겁니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에게 죄책감은 무척 소중합니다. 죄책감의 원인이 되는 잘못을 바로잡도록 밀어붙일 뿐만 아니라, 용서라는 통로를 열어서 근원을 완전히 제거하도록 돕습니다. --- p.62쪽 기본적으로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은 춥고 주린 이들의 형편을 헤아리기 어렵다. 압제에 맞서 지칠 줄 모르고 투쟁했던 솔제니친마저도, 흐루쇼프 치하에서 두루 명성을 얻고 국내에서 간행되는 잡지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실리기에 이르자, 비슷한 심리에 빠져 들어가더라고 했다. 작가는 관료주의의 화려한 본산들이 줄지어 늘어선 붉은 광장에 초청받아, 자신이 직접 보고 느꼈던 불의와 부정을 증언했다. 줄기차게 벌여온 저항에 합리적인 답변을 줄 힘을 가진 정부각료들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푹신한 팔걸이의자에서부터 청산유수처럼 매끄러운 말솜씨에 이르기까지 한 점 부족함이 없는 밝고 상쾌한 방에서 굽어본 수용소는 끔찍하기는커녕 도리어 참으로 타당해 보였다. … 자, 이 흉악한 자들을 세상에 풀어놓으라는 말인가?” --- p.105 희한하게도, 우리 시대의 운동가들은 윤리논쟁을 벌일 논리적 기반을 내팽개치면서도 그 논쟁 자체는 포기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주장(노예를 소유하고, 여성을 성폭행하고, 아이들을 학대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건 잘못이라는)을 계속하지만, 더 높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탓에 윤리적 판단을 호소할 대상이 없다. --- p.140-141 몇몇 진화심리학자들을 만나봤지만, 다들 세련되고 품위가 있었다. 어느 모로 보든, 아이들을 때리거나, 세금을 포탈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촌들을 살해할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윤리를 지탱하는 초월적 기반들을 죄다 흔들어가며 이들이 널리 퍼트리는 학설은 행동의 선악을 가리는 능력을 파괴하고 있다. 나는 진화론을 믿는 자들의 도덕성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 한계선까지 그 주장을 좇는 이들의 도덕성을 염려할 따름이다. --- p.162 실존주의에 잠시 기울었던 젊은 시절에는 전도서라는 신비로운 책이 보여주는 모호한 표현과 삶의 리듬을 짚어가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각을 사랑했다. 실존적 절망을 잘 딛고 일어선 뒤에도 줄곧 리얼리즘의 진수를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거룩한 책 가운데 넣어주기로 결정해주신 하나님께 중얼중얼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 유대인들은 장막절 기간 동안 이 책을 큰 소리로 읽었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관습이다. --- p.275 스페인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대표적 문사인 프라이 루이스 폰세 데 레온Fray Luis Ponce de Leon은 가혹한 종교재판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아가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하고 라틴어로 쓰인 불가타 성서를 비판해서 권력자들의 눈밖에 났던 프라이 루이스는 살라망카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도중에 끌려 나갔다. 그리고 무려 4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았다. 시대의 광기가 사라지고 난 뒤, 허리가 굽어서 거의 부러지다시피 한 교수에게 강단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발을 질질 끌며 강의실로 들어선 프라이 루이스는 스페인에서 전설이 된 한 마디로 강의를 시작했다. “어제 얘기한 것처럼!”그러곤 지난날 무참히 중단되었던 자리부터 수업을 이어나갔다. --- p.285 예수님은 50만 종에 이르는 딱정벌레에서부터 세렝게티에 사는 이국적인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피조물들을 디자인하는 일에 빠짐없이 참여하셨지만, 지상에 머무는 내내 뭇 사람들이 찬양할 만한 불후의 명작을 단 한 편도 남기지 않으셨다. 주님은 금판이나 파피루스 두루마리 대신, 팔레스타인의 흙을 팔레트로 선택하셨다. 이윽고 불어온 비바람과 함께, 주님이 친히 쓰신 유일한 작품은 흔적도 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 p.289 |
독자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필립 얀시의 신간이 나왔다. 필립 얀시의 보석 같은 에세이 13편을 엮은 《단단한 진리》는 저자에게 따라붙는 ‘이 시대 최고의 복음주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내용도 단단하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의 집요하기까지 한 솔직함은 그대로이고, 여기에 저널리스트다운 치밀함과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해 우리 시대와 교회의 첨예한 이슈들을 두루 다루면서 전방위적 글쓰기를 선보인다.
기독교에 도전하는 현대의 상황을 다루는 1부에서는 크리스천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부닥치게 마련인 인류가 겪는 고통, 자유의 한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방식 같은 문제를 논구한다. 저자의 전공 분야라 할 수 있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성찰을 비롯해, 오늘날 지성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신(新)무신론과 진화심리학의 문제점도 비판을 두려워 않고 신랄하게 파헤쳤다. 2부에서는 저널리스트로서 교회의 활동을 근거리에서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글들을 모았다. 세계의 온갖 긴급한 문제들에 교회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황무지》의 시인 T. S. 엘리엇에서부터 소말리아 난민캠프의 구호요원들의 삶을 두루 살피며 이야기한다. 20세기 후반기에 ‘기독교 지성세계의 선지자’로 인기를 누리던 프랜시스 쉐퍼와의 격의 없는 인터뷰도 실려 있어 더 반갑다. 3부에서는 예술의 문제를 다룬다. ‘이 엄중한 시대에 예술이란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가’ ‘믿음을 담은 예술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젊은 작가와 예술가들을 위한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될 만한 것들이다. 이 의혹의 시대에 누가 답을 가졌는가? 얀시는 그리스도인 말고 누가 진리를 말하고, 의미의 표본을 제시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이 책은 말과 논리뿐 아니라 삶을 통해 세상에 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독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전 세계 최초 출간! 한국의 독자를 위한 특별한 선물! 《단단한 진리》는 1982년에 출간된 Open Windows(한국어판 미출간)를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전면 개정해 펴내는 책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큰 글들을 추려내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새로운 글 몇 편을 추가했다. 본문 원고만 완성되어 있을 뿐 아직 미국에서도 출판되지 않아 특별히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쓴 머리말과 맺음말에는 한국 교회와 독자를 향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브라질과 필리핀이 교회와 ‘허니문’을 즐기고 있고, 미국은 시스템은 갖추었지만 뜨거움은 사그라진 ‘원숙한 결혼’ 단계에, 유럽이 신앙적으로 ‘이혼’ 국면에 접어들었다면, 한국 교회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얀시는 진단한다. 이 책에 가감 없이 기록한 서구 교회의 성공과 실패는, 세속 사회의 물음과 도전에 응답하면서 온몸으로 기독교 복음을 살아내야 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되어준다. ● 간단치 않은 현실 속에서 균형을 찾는 법 얀시의 글은 설득력이 있다. 그가 무비판적, 교조적 태도로 진리를 말하지 않고, 회의자의 입장에서 명제의 진리치를 여러 각도에서 부단히 시험하고서 납득이 될 때에야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에서는 저널리스트로서 그가 오랜 세월 당대의 숱한 사안들에 대해 글을 쓰면서 익힌 이러한 치밀함이 유감없이 발휘되며, 아울러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얀시는 예술이 지닌 힘을 말하면서도 “‘불멸의 예술’ 따위의 번드르르한 표현은 기만이나 다름없다”고 따가운 말을 아끼지 않고, 소말리아 난민 캠프에서 크리스천이 보이는 활약상을 보여주면서도 구호단체에서는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좀 더 참혹한 과거의 사진을 제시한다는 식의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만을 제시하는 선동가들과는 다른, 객관적 글쓰기의 좋은 예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