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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기억하는 인간, 기록하는 작가
아거
인물과사상사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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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 왜 지금 오웰인가? · 005

이른 나이에 눈뜬 차별 · 019
대영제국의 추악한 이면을 엿보다 · 033
속죄의 길, 밑바닥으로 · 045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길 · 055
희망을 엿본 자의 업 · 069
스페인 혁명의 좌절 · 081
거짓에 맞서다 · 093
파시즘과의 전쟁에 중립은 없다 · 105
전체주의에 저항하다 · 119
기억하라, 이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 131
쓰는 인간, 오웰 · 147

참고문헌 · 156

저자 소개 1

문득 지나치다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동네식당 같은 글쓰기를 지향하는 프리랜서 작가. 1976년에 태어나 신문 방송학을 공부하였다. 1999년부터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글쟁이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글을 통해 한 개인이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독립, 독립된 주체로 오롯이 서기 위한 사유와 성찰,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감정과 인생의 아릿한 순간에 대한 포착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어린 시민』으로 제5회 브
문득 지나치다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동네식당 같은 글쓰기를 지향하는 프리랜서 작가.

1976년에 태어나 신문 방송학을 공부하였다. 1999년부터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글쟁이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글을 통해 한 개인이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독립, 독립된 주체로 오롯이 서기 위한 사유와 성찰,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감정과 인생의 아릿한 순간에 대한 포착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어린 시민』으로 제5회 브런치북 은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 『불온한 독서』(2017), 『꼰대의 발견』(2017), 『어린 시민』(2018), 『어떤, 낱말』(2019), 『조지오웰』(201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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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182g | 128*188*11mm
ISBN13
9788959065431

책 속으로

4~5세 무렵 ‘호랑이’에 대한 시를 썼던 오웰은 5~6세 무렵부터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꾸준히 글을 썼고,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인 11세와 13세에 쓴 ‘애국시’가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렇게 시를 쓰고, 2편 정도의 단편소설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또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겪은 일이나 본 것을 묘사하는 글을 마음속으로 되뇌이기도 했다. 17세 때부터 24세 때까지는 작가가 되는 걸 포기하려고 했지만, 어쨌든 차분히 앉아 책을 쓰는 일을 해야 하리란 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 p.24

파리와 런던에서 극빈자로, 또 부랑자로 살면서 생전 처음으로 극도의 가난과 처음 마주한 오웰은 가난에 대해 통찰할 수 있었다. 그는 빈민과 빈민이 아닌 사람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점, 빈민이나 걸인은 사회적인 쓰레기가 아니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차별하고 비하하거나 경멸할 근거가 없다는 점, 가난한 자의 “인격을 파탄시킨 것은 나쁜 성품이 아니라 영양실조”라는 점,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보수적인 사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민중들을 위험한 존재들이라고 겁내기 때문”이라는 점 등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계급적 편견을 깨는 일임과 동시에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는 경험이었다.
--- p.49~50

위건에서의 경험을 통해 노동계급에게 하나의 희망을 엿보고, 또 사회주의자를 자처하게 된 오웰에게, 스페인은 민주적 사회주의가 실현되었을 때의 모습이 어떤지를 확연히 보여주었다. 계급과 신분 차별이 사라지고, 누구나 평등하게 서로를 대하는 그 사회는 유토피아에 가까웠다. 너무나 이상적인 사회였지만 오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회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걸 목격했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은 오웰에게 희망과 욕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사회주의가 실현된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았기에, 그 사회를 더욱더 갈구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게 희망을 엿본 자의 업(業)인지도 모르겠다.
--- p.78~79

스페인 내전의 실상은 오웰의 심신에 큰 상처를 남겼다. 1937년 6월 전선에서 저격병에 의해 목에 관통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난 그는 바르셀로나에 돌아와 쉴 틈도 없이 스페인을 탈출해야 했다. 통일노동자당이 불법 단체로 규정된 이후 대규모 검거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무사히 탈출했지만 그와 함께 싸운 동료들은 재판도 없이 감옥에 구금되었다. 통일노동자당 당원이나 의용군이란 이유만으로 그런 상황에 처했다. 전선에서 파시스트와 전투를 벌인 공로는 전혀 인정되지 않았다.
--- p.98~99

1944년 2월 4일 『트리뷴』에 발표한 「진실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에세이에서 오웰은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면서 “나는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적어도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면 적보다 거짓말을 적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전체주의가 정말로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잔혹 행위를 저지르기 때문이 아니다. 전체주의는 객관적 사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과거만 통제하는 게 아니라 미래도 통제하려 든다”라고 썼다.

--- p.135~136

출판사 리뷰

사회적 약자의 친구가 되다

영국의 식민지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제국 경찰로 근무하며 오웰은 제국주의의 끔찍함을 느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오웰은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던 영국은 식민지에서는 압제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과 식민지 정책의 부당함을 깨쳤다. 식민지 주민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인간에 대한 모든 형태의 지배는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오웰은 억압받는 사람들, 밑바닥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식민지에서의 경험을 통해 피착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오웰은 영국의 노동계급에 주목했다. 오웰이 보기에 잔혹한 자본주의 사회인 영국에서 압제에 신음하고 착취당하는 이들은 노동계급이었기 때문이다. 1928년 초 오웰은 자신이 좋아하던 작가 잭 런던이 그랬던 것처럼 영국 런던의 빈민가로 향했다. 노동계급의 처지나 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가난과 빈곤에 대해 아는 게 없었던 오웰은 구걸을 하고 부랑자 숙소를 떠돌아다니며 부랑자와 걸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다. 그 시절 오웰은 “계급을 가르는 벽이 무너져 내리는 같았”고, “해방감과 모험심을 맛봤”으며, “아주 행복”했다고 말한다.

파리와 런던에서 극빈자로, 또 부랑자로 살면서 오웰은 가난에 대해 통찰할 수 있었다. 오웰은 빈민과 빈민이 아닌 사람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점, 빈민이나 걸인은 사회적인 쓰레기가 아니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차별하고 비하하거나 경멸할 근거가 없다는 점, 가난한 자의 “인격을 파탄시킨 것은 나쁜 성품이 아니라 영양실조”라는 점,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보수적인 사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민중들을 위험한 존재들이라고 겁내기 때문”이라는 점 등을 깨달았다. 그것은 계급적 편견을 깨는 일임과 동시에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는 경험이었다. 스스로 택한 빈민, 또 실업자로서의 생활을 통해 오웰은 피착취자로서의 노동계급을 인식하며 사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스페인 내전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오웰은 그해 12월 스페인으로 향했다. 신문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간 오웰은 도착하자마자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 소속 의용군으로 전쟁에 참가한다.

처음 당도한 바르셀로나에서 오웰은 혁명적 분위기에 전율했다.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은 게 사람과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오웰이 보기에 계급과 신분 차별이 사라지고, 누구나 평등하게 서로를 대하는 그 사회는 유토피아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웰은 이상적인 사회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웰은 스페인 내전의 실상은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의 전쟁이라고 평가했다. 오웰이 비판한 대상은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이 손잡은 부르주아 개량주의자들이었다. 오웰이 보기에 부르주아는 자본주의를 위해 싸우고, 노동자들은 사회주의를 위해 싸우는, 즉 각기 다른 목표를 위해 싸우는 게 스페인 내전의 양상이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은 러시아, 즉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서 혁명 세력인 의용군을 감옥에 가두는 등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혁명은 사라졌다는 게 오웰의 진단이었다. 특히 오웰은 파시즘이란 거대한 악과 싸우면서 내부의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설 자리가 사라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스페인 내전의 실상은 오웰의 심신에 큰 상처를 남겼다. 1937년 6월 전선에서 저격병에 의해 목에 관통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난 오웰은 바르셀로나에 돌아와 쉴 틈도 없이 스페인을 탈출한 후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책 한 권을 썼다. 스페인 내전에서 목격한 전체주의와 교조주의의 폐해와 역사 왜곡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카탈로니아 찬가』였다. 출간 당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카탈로니아 찬가』는 나중에 가서야 스페인 내전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기록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다

스페인 내전에서의 경험을 통해 오웰은 그 어떤 형태의 전체주의와 맞서 싸울 각오를 다졌다. 오웰은 스스로 밝혔듯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글을 쓰고 행동에 나섰다. 1938년 6월 자신이 영국의 유일한 좌파 단체로 생각하던 독립노동당에 가입하고 그 입장을 표명한 게 첫 시작이었다.

오웰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부터 3개월에 걸쳐 이오시프 스탈린의 전체주의를 비꼬는 『동물농장』을 썼다. 하지만 이 책은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했고, 탈고한 지 1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된다. 출판사들이 출간을 꺼렸던 이유는 영국과 미국이 소련과 동맹국이라는 당대의 정치 상황 때문이었다. 전쟁 시기에 동맹국을 비판하는 책을 출간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이었다. 『동물농장』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17일에야 출간될 수 있었던 이유다.

오웰이 보기에 소련의 전체주의는 오웰이 지지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체제에서는 권력을 잡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온갖 협잡과 음모가 난무하며 끊임없는 숙청과 역사 왜곡이 일어나고 있었다. 프롤레타리아는 여전히 억압받고 있었으며 언론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았다. 당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었고, 당을 비판하는 이들은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소련의 관료 체제는 부패한 권력에 불과했다. 그것을 오웰은 『동물농장』에 담아냈다.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집중한 오웰은 평생 자신을 따라다녔던 폐질환이 계속되어 타자기를 치지 못할 정도의 악화된 몸 상태에서도 1948년 기념비적인 책 한 권을 썼다. 소설 『1984』가 그것이다.

오웰은 평생에 걸쳐 전체주의를 혐오했고, 전체주의가 주는 해악을 경고했다. 또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정치도 ‘최악과 차악’ 사이의 선택으로 보았고, “대중은 노예와 경제적 불안정 사이의 선택에 직면하면, 도처에서, 이름이야 어떻게 불리든 즉각적으로 예종의 길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웰은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했을지언정 유토피아를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웰은 정치적인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런 믿음에 기반해 행동했고, 세태를 진단했고, 비판했고, 대안을 제시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비판하기도 했고, 대세에 따르는 것을 거부했다. 오웰은 “솔직하고 힘 있는 글을 쓰려면 두려움 없이 생각해야 하며, 두려움 없이 생각하게 되면 정치적인 통념을 따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오웰은 정치적인 통념에 따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거짓을 거짓이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거짓된 정치적 통념을 따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웰은 통념에 저항했다. 그것이 오웰의 글이 가진 생명력이었다.

오웰이 내놓은 저작들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직 우리는 전체주의와 독재의 위험 속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웰의 책이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회자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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