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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사라졌지만 결코 사라질 수 없었던 안중근과 그의 총을 찾아서 1장 이토 히로부미는 누구인가 일본 제국주의의 기수들, ‘조슈 삼존’ / 막번 체제의 해체와 메이지 유신의 성립 /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이유 / 이토 히로부미가 권력을 잡은 이유 / 이토 히로부미가 죽지 않았다면 / 비스마르크를 열심히 따라한 외교관 / 겉으로는 평화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속사정 2장 황당한 프로젝트의 시작 우연한 발견과 예상치 못한 전개 / 왜 안중근의 ‘총’인가? / ‘총기 복각’에서 ‘사격 재현’으로 / 총에 품격을 더하다 / “재밌잖아” “우리가 처음이잖아” 3장 그날을 결정한 ‘6초’ 의거 성공 요인 1: 안중근은 죽음을 각오했다 / 의거 성공 요인 2 : 이토 히로부미의 과시욕 / 의거 성공 요인 3: 안중근은 명사수였다 / 6초, 결정적 순간 / ‘M1900’이라는 절묘한 선택 4장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 사라진 필름, 사라진 유해, 사라진 총 / 마침내 총을 구입하다 / 총기를 허용하는 나라와 규제하는 나라 / 총기 청정 국가에 총을 들여오는 일 / ‘총’이라면 질색하는 배송업체들 / 마지막 방법, 사격장 확보 5장 안중근은 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는가 안중근에 감화된 일본인들 / 안중근 재판의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 “나의 행위는 개인적 살인이 아니라 의거다” / “일본은 안중근을 두려워했다” /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죄 /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인가? / 안중근이 죽이지 않았다? 6장 M1900이 말해주는 안중근 장군 총기의 설계자 존 브라우닝 / 리볼버를 넘어, 자동권총 M1900의 탄생 / 한 손 사격의 비밀 / 안중근 장군의 신문기록 / 안중근은 일부러 덤덤탄을 사용했는가? 7장 시행착오의 연발 하나의 프로젝트, 세 개의 플랜 / 안중근의 서른, 그리고 우리들의 마흔 / 안중근과 우리들의 ‘인생을 건 선택’ 8장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영웅 안중근의 죽음,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의 삶 / 전쟁에 미쳐가던 일제의 만행 / 그날 박문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영웅의 아들에서 단죄의 대상으로 9장 미국에서 M1900을 쏘다 ‘플랜 A’에서 다시 ‘플랜 B’로 / 미국 총기 전문가들이 말하는 ‘M1900’ / M1900의 의문을 푸는 세 가지 실험 10장 M1900을 찾아 일본으로 가다 일본 국가기관에서 M1900의 행방을 묻다 / 아키하바라 총포사에서 발견한 단서 / 이토 히로부미 별장에서 ‘부가옹’을 보다 / 안중근을 기리는 절 ‘다이린지’를 방문하다 11장 퇴로는 없다 한국사의 잃어버린 세 가지 무기 / ‘갈 수 있는 길’과 ‘가지 않은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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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사실관계만 보면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기 때문에 한일 병합이 빨라졌고 일본의 군국화를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군국화는 이토 히로부미의 유무에 관계없이 이미 착실하게 진행돼온 사안이었다. …
그렇다면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든 제거하지 않았든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실질적인 효과를 생각하면,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 있었을 경우 한일 병합은 이렇게 급속도로 거칠게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적 수순을 다 밟고, 정치적 안배를 다 마친 후 ‘확실하게’ 병합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 경우 태평양 전쟁의 패전 이후 한국의 운명이 어찌되었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오키나와가 지금까지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처럼 한국이 일본에 완벽하게 종속되었을 가능성은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 p.41~42 일반적인 리볼버 권총을 사용할 경우 4초란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총탄을 다 쏟아낼 수 없다. 격발 간격이 자동권총보다 훨씬 더 길기 때문에 세 발을 쏘기 전에 안중근이 체포됐을지도 모른다. 아울러 당시 리볼버 권총은 위력이 강하기 때문에 탄막 사격(부대 단위로 일제히 한 지점을 향해 가하는 포격)은 가능할지라도 개인의 정밀한 조준 사격용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안중근이 당시로서는 최신식인 M1900을 가지고 거사를 치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안중근은 사전에 치밀한 계산에 의해 M1900을 선택했다. 현대 권총 사격법으로도 상식 밖이라 할 수 있는 ‘한 손 격발’로도 매우 정확한 사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M1900과 7.65밀리미터 탄이 한 손으로도 충분히 반동을 받아낼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p.52 미조부치는 끈질기게 안중근 장군의 역사관과 항일활동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안중근의 정치적 동기에 의한 ‘암살’을 개인적 동기에 의한 ‘살인’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가지와 동양평화론, 그리고 자신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신분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했다는 논리였다(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가지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말했다는 것, 그것도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는 재판장에서 말했다는 것이야말로 안중근 장군의 담력을 확인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미조부치가 안중근의 의견에 수긍한다는 것이다. 공판이 진행되면서, 검사 측에서도 안중근의 인물됨과 논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p.127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일본의 논리를 한마디로 반박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인 것은 범죄가 아니다.”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겠지만, 국제법상으로 혹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보자면 이것은 정당한 행위다. …이렇게 엄연히 의병이자 군인으로서 활동한 안중근 장군은 법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명확히 밝혔다. “나는 대한국 의병 참모중장의 직무로, 하얼빈에서 전쟁을 수행하다 포로가 되어 이곳에 온 것이다. 지방재판소와는 전연 관계가 없는 일인즉, 만국 형법과 국제공법으로서 재판하는 것이 옳다.” --- p.150 안중근 장군의 신문기록에서 FN사의 M1900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발사한 탄환의 숫자를 확인하고 있다. 7연발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7+1이다. 탄창에 7발이 장전되고, 1발은 약실에 넣었다. 처음 8발을 장전했는데, 안중근은 마지막 1발을 쏘지 않고 총을 땅에 던졌다. 이 1발에 대한 집요한 추궁이 있었다. 일본 측은 ‘자살’을 염두에 뒀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었냐는 질문을 계속 던졌지만, 안중근은 무덤덤하게 대응했다. 목표로 했던 이를 다 쐈으니, 총을 더 쏠 이유가 없다는 간단한 답변. 테러가 아니라 의거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진술이다. 무차별적인 살육이 아니라 목표로 했던 이토 히로부미만을 제거하고 총을 버린 것이다. 수행 인원들에 대한 총격에 관해서 안중근은 계속 유감을 표현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알았다면 피할 수 있었던 희생이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 p.191~192 “만약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이 총을 감췄다면, ‘쓰치우라 자위대’로 유명했던 바로 그곳이 유력한 후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총포사 사장님은 ‘자위대’라는 말을 덧붙여서 다시 쓰치우라를 언급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일본 정부가 M1900을 숨길 수 있다면, 이곳이 가장 적합하다. 태평양 전쟁 당시부터 쓰치우라와 그 주변 지역은 일본 군사력의 핵심이었다. 일본이 제국이었던 시절에는 가스미가우라 해군 비행장과 비행학교가 있었지만, 현재는 육상자위대 무기학교가 있다. --- p.283 |
“그들에게는 두려움이었고, 우리에게는 희망이었다”
안중근의 총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안중근이 사용한 총인 M1900의 행방을 찾아 탐구하며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얼빈 의거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정황과 역사를 파헤치는 것이다. 전자는 하얼빈 의거 상황을 재현함과 동시에 안중근 장군이 왜 M1900을 선택했고 그 의미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후자는 하얼빈 의거 전후의 맥락을 촘촘하게 살펴봄으로써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제시하며 시대와 인물을 내다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해준다. 안중근의 ‘사라진 총’은 오랫동안 진행돼온 일본의 조직적인 ‘안중근 지우기’와 우리의 철저한 무관심이 합쳐진 결과였다. 일본과의 무역 마찰로 그 어느 때보다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고 있는 요즘, ‘안중근의 총’은 우리의 역사적 성취를 알리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물증’이자 세계사적 의거의 상징으로서 복원되어야 한다.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기획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중근 장군은 왜 M1900을 선택했는가?” 총을 통해 밝혀지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성공의 비밀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쐈다”는 사실 나열을 넘어 의거 당시의 상황을 보다 생생하게 들려준다. 7미터 거리에서 단 6초 만에 7발을 발사하여 3발을 이토 히로부미에게 명중시켜 사살하고 4발을 각각 그를 따르는 수행원 4명에게 명중시킨 안중근 장군의 과업은 그의 뛰어난 사격 솜씨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총이 ‘M1900’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직접 미국 사격장으로 건너가 실험한 바에 따르면, M1900은 존 브라우닝이 만든 역사상 최초의 자동권총으로, 당시 흔하게 쓰였던 육혈포(리볼버)에 비해 파괴력은 약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도 비교적 손쉽게 여러 표적을 향해 저격할 수 있었다. 또한 리볼버보다 반동도 작아 한 손으로도 정확히 조준, 사격할 수 있었다. 안중근 장군이 선택한 ‘M1900’은 그의 저격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테러가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된 의거였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탄창에 7발, 약실에 1발 총 8발을 장전할 수 있었던 M1900은 리볼버에 비해 장탄 수도 많았다. 그럼에도 안중근 장군은 목표한 이를 저격한 후 아직 1발이 남아 있던 총을 버린 뒤 “꼬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다. ‘자살 테러’를 감행하지 않고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안중근은 법정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가지를 선언했다. M1900은 대한의군참모중장으로서 대한군인 대 일본군인으로 마주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전쟁’을 치른 것이었다는 안중근 장군의 주장을 입증해주는 것이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지 않았다면?” 총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는 안중근과 그의 역사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사건을 만들어나간 인물들을 깊이 있게 조명하며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비밀을 파헤친다. 하급 무사의 아들에서 근대 일본을 만든 최고의 권력자가 되기까지, 막연하게 ‘나쁜 놈’으로만 알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의 일대기를 소개하며 그가 죽지 않았다면 어떤 역사가 펼쳐졌을지에 대한 시나리오도 제시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정치인들 중 그나마 평화적인 외교를 추구한 사람이었고 안중근이 그를 죽인 것은 대단한 실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겉으로는 평화적이었지만 속사정은 똑같은 식민주의자였던 그의 특성을 더욱 세심히 짚으며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척살이야말로 한국사의 항쟁을 이끈 신호탄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또한 호쾌하고 대담한 사냥꾼이자 명사수였던 인간 안중근의 면모를 자세히 소개하며,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법정 투쟁을 벌이고 생애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동아시아의 미래를 고민했던 그의 사상가로서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나아가 후에 ‘친일파로 변절했다’고 알려진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의 안타까운 가족사를 소개하며, 한일 병합 이후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안준생의 상황이라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중하게 질문한다. “‘총기 복각’은 시작에 불과했다” ‘잃어버린 총’을 넘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프로젝트 ‘밀리터리 마니아’라 불리는 이들에 의해 추진된 안중근의 총 복각 프로젝트는 어떤 국가기관의 힘도 빌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역사적 의문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이른바 ‘총기 청정 국가’로 불리는 한국에 M1900을 들여오고, 미국으로 건너가 안중근의 저격을 실제로 재현하며, 일본 취재를 통해 ‘총번 262336’이 새겨진 M1900의 행방을 묻기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온갖 시행착오를 그대로 담아내며 역사란 단순히 ‘아는 자’의 것이 아니라 ‘지켜내고’ ‘즐기는’ 자의 성취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총을 통해 인간 안중근과 항쟁의 역사,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을 교차하며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역사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