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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에필로그 지은이의 말 작품 해설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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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차림새였다.
위아래 똑같이 회색 양복에 회색 구두,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고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눈동자는 불타는 듯한 검은빛이었다.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릿느릿 걷는데도 유리 쪽으로 쭉쭉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그 남자가 풍기는 특이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주위의 풍경이 그 남자로 인해 모조리 흐릿해졌다. 인간이 아닌 사람, 뭔가 인간을 초월해버린 듯한 존재. --- p.93 이젠 너무 지쳤어. 좀 더 재미있게 살고 싶었는데. 마음껏 날개를 펼치고 싶었는데. 그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고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냈더라면 이런 곳까지 흘러 들어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평범한 집……. 내게는 그 최소한의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 p.129 “남의 죽음을 예언하는 게 아니에요. 죽음으로 향하려는 사람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거죠. 당신은 침울한 사람과 슬퍼하는 사람을 분간할 수 있나요?” “그런 정도라면 가능할 거 같은데?” “그것과 마찬가지예요.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면 극한의 궁지에 몰려 있는 인간을 분간할 수 있어요.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떤 사인을 보내는 법이에요. 하지만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게 문제죠.” --- p.219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야말로 나락에 떨어졌을 때 그레이에게 구조됐어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런 썩어빠진 세상에 저항할 줄 아는 사람이 있구나,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그래서 그레이를 따라나섰죠. 지금도 이 잘못된 세상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그레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될지 꼭 지켜보고 싶어요.” --- p.290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야. 참아라,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 증오에 사로잡히지 말고 산 사람은 살아라, 내일의 희망을 보고 걸어라. 방관자는 그런 말로 피해자 유족과 약자를 대충 달래가면서 엄청난 사건을 없었던 일로 뭉개버리지. 약자는 항상 참아야 하고 자살자는 자업자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 태어나면서부터 걸머지는 불행도 빈곤도 모두 자기 책임이지. 심지어 아무 죄 없이 범죄에 휘말리는 것까지 내 잘못으로 돌려야 한단 말이야.” --- pp.396-397 *비가 내리는 날은 날씨가 좋지 않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비가 내리더라도 해는 구름 뒤에 숨어 있을 뿐,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료타로는 시선을 푸른 하늘로 향한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여우비 주제에 이렇게 좍좍 쏟아지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흠뻑 젖어버렸네.” 곁에서 불퉁거리는 사유리의 소리를 듣고 료타로의 얼굴에 조용한 미소가 번졌다. 비가 내리더라도 날씨가 좋을 때도 있는 것이다. --- pp.470-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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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양복에 회색 구두,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고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눈동자는 불타는 듯한 검은 빛이었다. 자살하려는 나를 구해준 남자 ‘그레이’는……. 그레이는 썩을 대로 썩어버린 이 세상에서 착취당하고 내버려진 자, 국가로부터 소외된 자, 그리고 죽음을 각오한 자들을 모아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사회에 대한, 국가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그레이, 10년 전 그레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 복수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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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연상되는 일대 복수극에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모험 미스터리가 가미되어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소설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고장 난 자본주의, 부패하고 무능한 국가 권력, 약자의 입장을 옹호하지 못하는 법체계, 인간의 생명마저 상품화하는 도덕성 붕괴와 같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정확하게 짚어낸 문제작이기도 하다.” _양윤옥(심사위원)
현대 사회의 부조리함을 정확하게 짚어낸 문제작 “괴물 같은 세상에 들이대는 날카로운 칼날” 하루가 멀다 하고 끔찍한 범죄가 쏟아져 나와 사회면 기사를 가득 채운다.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도 불분명한 ‘묻지 마 범죄’가 뉴스 기사로 흘러나오는 걸 볼 때면, 지금은 잠시 운이 좋아 불행을 피해 갔을 뿐 나 또한 그러한 범죄의 피해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묻지 마 범죄’라고 간편하게 이름 붙이긴 했지만 정말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범죄를 저지른 걸까? 혹시 사회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절망범죄’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는 꽃을 꺾는 쪽과 꺾이는 쪽, 두 가지밖에 없어. 힘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를 지배하지. 이 세상이 그런 구조로 굴러간다는 건 너도 지금까지 살면서 충분히 깨달았을 텐데?” 못 가진 자들은 계속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회, 강자는 약자를 억압하고 약자는 항상 참아야 하는 그런 사회에서 주인공 그레이는 괴물 같은 세상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댄다. 부패하고 무능한 국가 권력은 나를 보호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법에 호소하기보다는 직접적인 응징을 선택한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10년 동안 복수를 꿈꾸며 살아온 주인공 그레이에게는 타인의 절망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착취당하고 내버려진 자만이 지닌 눈빛, 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맛보고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만큼 어둠의 깊이를 알아버린 사람이 가진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그레이는 그렇게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모아 잘못된 세상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참지 말고 분노하라는 외침은 권력자에게 공포감을 주고, 각자의 세상을 지켜내기 위한 이 절박한 분노는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멋진 곳으로 바꿔보고 싶다는 꿈으로 발전한다. 복수는 우리의 것! “무능한 신을 대신해서 우리가 심판해줄 테니.” 내가 사는 세상이 부조리하고 부패한 데다가 나를 지켜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국가 권력 또한 무능력하다는 것 알았을 때, 위기에 빠진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다. 포기하거나 싸우는 것. 이 작품 『그레이맨』은 나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사회의 악과 대면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레이맨』에서 주인공 그레이는 웃을 일보다 고통스러운 일이 더 많아 이 세상을 포기하려는 자들을 모아 복수를 꿈꾼다. 그레이의 복수는 개인의 분노와 보복에서 끝나지 않고 이 지독한 세상 구조가 바뀌기를 바라는 사회적 복수이다. 범인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갉아먹는 그 잘못된 구조에 복수하는 것, 그것만이 그레이가 삶을 이어가는 이유이다. 그래서 그레이의 복수는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과 같은 슈퍼 히어로가 보여주는 한 개인의 영웅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 세계 ‘99퍼센트의 약자’ 모두가 피해자이기 때문에 복수는 ‘나의 것’에서 나아가 ‘우리는 것’이 되고, 분노와 저항의 물결로 이어지는 것이다. “신은 무능했어. 악을 심판하지 못한 채 그저 내팽개쳐두고. 그뿐인가, 거짓된 평화의 일상까지 안겨주었지. 비뚤어진 세상을 방치해두는 신, 나를 무시해버린 무자비한 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신. 이제 손가락이나 빨면서 내가 하는 일이나 지켜보시기를. 무능한 신을 대신해서 내가 심판해줄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