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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 1 우리는 왜 안철수를 기다렸는가 우리는 왜 안철수를 기다려야 하는가 우리는 왜 강남스타일에 열광하는가 우리는 왜 강남좌파를 미워하는가 우리는 왜 도둑들을 감싸는가 우리는 왜 자본주의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왜 광장에 섰었는가 2 우리는 왜 학력 인플레이션만 걱정하는가 우리는 왜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가 우리는 왜 젊은 보수가 되는가 우리는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우리는 왜 흉을 보는가 우리는 왜 대중을 믿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우리를 차별하는가 우리는 왜 영웅에 물드는가 3 우리는 왜 99퍼센트가 아닌가 우리는 왜 신용을 잃었는가 우리는 왜 기업사회가 됐는가 우리는 왜 구조조정에 처하는가 우리는 왜 시장에서 현인을 만나는가 우리는 왜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는가 우리는 왜 장하준을 읽었는가 우리는 왜 우리만의 경제학이 필요한가 4 우리는 왜 대한조선민국에 사는가 우리는 왜 아이돌을 제조하는가 우리는 왜 김연아에 매혹됐는가 우리는 왜 스티브잡스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왜 마케팅 되는가 우리는 왜 우리를 팔아버리는가 우리는 왜 약탈당하는가 우리는 왜 설계당하는가 우리는 왜 의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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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철수를 기다려왔다. 5년 전 우리는 탈정치적 해법을 선택했다. CEO 출신 대통령을 뽑았다. 명령하고 추진하고 결론을 내리는 기업적인 해법에서 길을 찾았다. 10년 전 우리는 민주적 해법을 선택했었다. 논의하고 합의하고 협상하는 정치적 해법에서 길을 찾았다. 둘 다 실패했다. 안철수 후보는 수평적 리더십과 디지털 리더십을 강조했었다. 정치적이고 기업적인 해법을 넘어선 새로운 리더십을 강조했었다. 안철수 후보는 정치인이 아니다. 기업인도 아니다. 혁신가다.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다. 의사로서 경영인으로서 교수로서 늘 주변 사회를 혁신해왔다. 이번에는 정치 차례였다. 대한민국 차례였다. 우리는 안철수라는 혁신가를 기다렸다. 어쩌면 이미 와 있었다. 단지 지금은 흩어졌을 뿐이다.
- ‘우리는 왜 안철수를 기다렸는가’ 중에서 우리는, 안철수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권력은 수단일 뿐이다. 목적이 될 순 없다. 적어도 혁신 과정에서는 그렇다. 권력이 목적이 되는 순간 정치인은 권력의 볼모가 된다. 손에 쥔 권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권력을 수단으로 활용하려면 권력을 놓아야 한다. 정치의 본질은 책임이다. 가장 큰 정치인은 스스로를 희생해서 책임을 진다. 자신의 욕망을 희생해서 모두의 욕망을 담아낸다. 안철수 후보가 그랬다. 9월 19일 출마 선언을 하면서 안철수 후보는 약속했다. 이젠 정치인이며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앞으로도 정치를 계속하겠다고 공언했다. 후보를 사퇴했어도 안철수는 이미 현실정치인이다. 문재인 정권의 여당 내 야당이 될 수도 있고 박근혜 정권의 야당일 수도 있다. 백의종군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진짜 ‘안철수 현상’은 이제부터란 사실이다. 안철수 정치혁신도 지금부터다. - ‘우리는 왜 안철수를 기다려야 하는가’ 중에서 우리는, 강남 스타일에 열광한다. 싸이의 노래가 강남의 욕망을 긍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희화화하기 때문이다. 배 나온 싸이가 삐쩍 마른 유재석과 말춤을 추는 건 누가 봐도 신사의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가사는 은유적인데 춤은 반어적이다. 그렇게 강남을 해체시켜버린다. 어차피 현실에선 커피를 원샷때려봐도 심장이 뜨거운 그녀를 잡을 수는 없다. 싸이는 우리의 욕망을 긍정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욕망을 사정시켜버린다. 강남 스타일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동네방네에서 강남 스타일의 패러디물을 만드느라 난리법석이었다. 대구 스타일부터 경찰 스타일까지 나왔다. 강남 스타일이 확산되는 과정은 강남 부동산 상승세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형국과 꼭 닮았다. 돈도 문화도 강남에서 지방으로 흐른다. 정작 패러디물에는 아무런 창조성도 없다. 강남 흉내 내기일 뿐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다. 언제나 강남은 우리 욕망의 원본이었다. 이번엔 강남마저 스스로를 흉내 냈다. 원본마저 상실됐다. 싸이는 노래했다.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어쩌면 여기까지다. - ‘우리는 왜 강남 스타일에 열광하는가’ 중에서 우리는, 꿈을 착취당한다. 우리가 같은 꿈만 꾸기 때문이다. 자본주의화된 꿈만 꾸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을 꿈으로 삼는다는 건 산업 구조에서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싶어 한다는 의미다. 그 기능을 배우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더 비극적인 건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그런 기능을 습득했는데도 사회가 그의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다. 꿈조차도 수요와 공급곡선을 따른다. 사회는 우리에게 사회가 필요로 하는 꿈을 심어주려고 든다. 그런 꿈을 꾸는 순간 노예가 된다. 모두가 같은 꿈만 꾼다. 하지만 진짜 꿈을 꿀 수는 없다. 이젠 자본주의적인 꿈에서 깨어날 때도 됐다. 노예가 될지 별종이 될지는 꿈에 달렸다. - ‘우리는 왜 꿈을 착취당하는가’ 중에서 우리는 젊어서부터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십대 대학생들의 보수성향은 이념적이라기보다는 시장적이다. 과거의 대학생들이 시장적이라기보다는 이념적 진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십대가 보수성을 띠게 된 까닭은 그래야만 시장에서 살아남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사립대학 인수를 상아탑의 자율권 훼손으로 보기보다는 10년 뒤 졸업할 때 취업에 유리할 거라고 해석하는 게 시장적 보수다. 지금의 이십대는 분명 과거의 이십대보다 보수적이다. 기성세대를 지배하는 시장이 이십대마저 보수로 만들었다. 리영희 선생은 말했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 이제 새는 날지 않는다. 새장 안에서 돈을 먹고 산다. - ‘우리는 왜 젊은 보수가 되는가’ 중에서 우리가, 장하준 교수를 신뢰하는 건 우리가 상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려주지 않는 23가지』는 우리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든다. 무엇이 옳은지 알아듣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옳은 선택보다는 유리한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장하준 교수는 우리가 알지 못해 속고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이기적인 선택을 할 뿐이다. 국민은 그렇게 의심은 해도 행동하지는 않는다. 국민이 행동하지 않으면 정부는 시장의 전리품이 된다. 장하준을 읽는 건 계몽이다. 그는 대중지식사회의 리영희다. 리영희 선생이 정치적 전환 시대의 스승이었다면 장하준은 경제적 전환 시대의 선생이다.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변화에 대한 의지이자 이해에 대한 욕구다. 상자 밖 세상도 새로운 커다란 상자 안이라는 사실은 절망적이다. 그 상자가 다름아닌 우리 내부의 이기적인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학자로서 장하준의 역할은 어쩌면 거기까지다. 우리에게는 장하준이 있다. 장하준에게는, 아마 우리가 없다. 그가 알려주지 않는 단 한 가지다 - ‘우리는 왜 장하준을 읽었는가’ 중에서 우리는, 지금도 스티브 잡스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의 유산이 우리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5가 팔리고 아이패드 미니가 나와서 그런 게 아니다. 잡스의 철학과 가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000년대가 스티브의 시대였다면 한국에서 2000년대는 이건희와 삼성의 시대였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를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스티브 잡스처럼 이건희 회장도 한국 사회에 미치는 문화적?사회적인 영향력이 엄청났다. 한국 사회는 늘 이건희와 삼성을 소화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정작 이건희 회장은 우리에게 별다른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더 치열하게 일하고 더 많이 벌라는 얘기를 했을 뿐이다. 마누라 빼곤 다 바꾸라고 했을 뿐이다. 우리삶을 변화시켰지만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혁신시켰다. 혁신의 목적은 더 높은 매출이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변화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흔적을 남기는 삶 말이다. 잡스는 기업과 CEO가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 ‘우리는 왜 스티브 잡스를 기억하는가’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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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안철수를 기다려야 하는가, 우리는 왜 강남스타일에 열광하는가, 우리는 왜 장하준을 읽었는가, 우리는 왜 스티브 잡스를 기억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되물어야 할 33가지 질문, 그리고 해답! 어지러운 세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나오는 뉴스들을 보다보면 현기증이 느껴진다. 카페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집에서 혼자 SNS를 들여다볼 때에도, 이 어지러운 세상을 탓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명쾌한 답을 알려주겠다는 속삭임도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그들’이 문제라는 목소리가 세상에 퍼져나간다. 모두가 서로 ‘네 탓’이라며 소모적인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저널리스트 신기주는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우리에게 왜냐고 묻지 않는가?” 저널리스트 신기주의 사회비평 에세이 『우리는 왜?』는 정치, 경제, 경영, 대중문화, 인문,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진단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겪는 고통의 공모자이며, 가해자이며, 피해자다.”『우리는 왜?』는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아니 모르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을 들춰낸다. 그래서 특별한 책이다. 우리는 왜 우리에게 왜라고 묻지 않는가? 한 저널리스트가 되묻는 우리의 존재 이유 우리는 말한다. 그들이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저들이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민주주의가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자본주의가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시스템이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보수가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진보가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언론이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국가가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기업이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금융이 문제다. 우리는 말한다. 강남이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1퍼센트가 문제다.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이고 저들이라고.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굴절시킨 건 유권자인 우리이고 자본주의에 중독돼 있는 것도 소비자인 우리라고. 우리는 또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수이자 진보이며 언론을 오염시킨 것도 여론인 우리라고.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업사회를 불러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도 금융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 안의 강남적 욕망을. 그래서 우리는 말할 뿐이다. 우리는 선량한 99퍼센트라고. 우리는 불평한다. 정치는 후진적이고, 취향은 획일화 되었고, 성장은 한계에 부딪혔으며,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진다고. 우리는 분노한다. 언론이 변질되었고, 민주주의는 후퇴했으며, 신자유주의가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고. 우리는 알고 싶다. 우리를 둘러싼 이 불합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 답을 구하고 싶기에 우리는 현인을 찾아 나선다. 우리의 열망을 등에 업고 시장에 나타난 현인들은 ‘88만원 세대’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메시지를 들려준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의란 무엇인가’를 논하고, ‘닥치고 정치’에 참여할 것을 주문한다. 현인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바벨탑이 쌓여 하늘을 향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된 ‘그들’에게 총을 겨눈다. 하지만 여전히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를 괴롭히는 자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냉철한 사회비평 『우리는 왜?』의 저자 신기주는 이 바벨탑에 망치질을 가한다. 그리고 외친다. 우리를 괴롭히는 가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우리가 총을 겨누는 ‘그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우리에게 왜냐고 묻지 않는가?” 우리 시대의 모든 문제는 바로 우리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속았을 수도, 믿었을 수도, 모른 척 눈 감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현실을 돌아보자.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대통령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기업의 주식을 사거나 팔지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상품을 구매할지도 선택할 수 있다. 누구를 사랑할지 선택할 수도 있다. 꿈을 선택할 수도 있다. 아니다. 그렇게 보일 뿐이다. 정작 그 선택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왜 그것들을 선택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를 선택하는 건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왜?』는 우리가 사는 이 구질구질한 현실에 해답을 전해주는 책은 아니다. “우리는 왜?”라고 끊임없이 질문할 뿐이다. 우리의 행동과 욕망을 파헤치며 문제의 근원을 탐색할 뿐이다. 하지만 저자가 던지는 33가지 질문을 탐색하노라면 우리 삶의 모든 문제는 결국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욕망에 굴복하고 정치와 경제에 영혼을 판 건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는 우리는 희생자이며 선의의 피해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겪는 많은 고통들의 공모자이며 가해자라고 단호히 정의한다. 책을 읽노라면 저자의 질문에 따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왜 안철수를 기다렸는가를, 우리는 왜 안철수를 기다려야 하는가를, 우리는 왜 강남스타일에 열광하는가를, 우리는 왜 강남좌파를 미워하는가를, 우리는 왜 자본주의를 사랑하는가를, 우리는 왜 젊은 보수가 되는가를, 우리는 왜 99퍼센트가 아닌가를, 우리는 왜 구조조정에 처하는가를, 우리는 왜 장하준을 읽었는가를, 우리는 왜 아이돌을 제조하는가를, 우리는 왜 김연아에 매혹됐는가를, 우리는 왜 스티브잡스를 기억하는가를, 우리는 왜 마케팅 되는가를, 우리는 왜 의심하는가를 질문하고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사회 구조를 알지 못한 채 나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왜?』는 분석이며 주장이며 설명이며 결국에는 질문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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