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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위기는 기회다
극복 Part 1. 나를 깨부수라 1단계. 내가 만든 하나님을 깨부수라 2단계. 두려움의 바이러스를 깨부수라 3단계. ‘상황’에 묶인 생각을 깨부수라 4단계. 다 내 뜻대로 하려는 고집을 깨부수라 극복 Part 2. 하나님께로 달려가라 5단계. 전부를 걸고 달려가라 6단계. ‘기도 모드’로 달려가라 7단계. ‘하나님 뜻’을 향해 달려가라 에필로그.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달려가라 |
Mark Batt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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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은 단순히 ‘천성과 교육’의 산물이 아니다. 자아상이 아닌 하나님상이야말로 우리의 인생 방향을 결정하는 열쇠다. 하
나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머지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 대부분은 주변 상황이 아닌 자신의 머릿속에서 비롯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을 역추적해 보면 여지없이 하나님에 관한 오해가 나타난다. 문제가 커 보이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작게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주보다도 크신 하나님을 한낱 이 작은 땅 덩어리 안의 문제보다도 하찮게 취급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 p. 42 영적 성장의 절반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아는 것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다. 만약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마음에서 지워 버리지 못하면 절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없다. --- p.64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 여기서 예수님이 단순히 병자의 몸만 낫게 하신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그를 정신적으로도 자유하게 하신 것이다. 믿음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근거 없는 걱정과 그릇된 가정을 버리는 것이다. 믿음은 단순한 행동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다. 성경을 공부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성경을 읽고 되새기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다운로드하여 우리의 마음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 p. 65-66 상황에 대해 불평하면 그 상황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로 변한다. 족쇄를 푸는 방법은 바로 예배다. 예배는 문제에서 시선을 떼서 다시금 삶에 집중하게 만든다. 예배하면 우리 주변에서 항상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기적에 눈이 뜨인다. 삶의 ‘결과’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달려 있다. --- p. 98 하나님을 만난다고 해서 무조건 삶의 실타래가 시원하게 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옳은 방향’으로 복잡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중략)… 가장 최근에 달란트 비유(마 25:14-30 참조)를 묵상했을 때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하나님의 일 하나를 잘했을 때 얻는 상은 조기 은퇴나 휴가 연장 따위가 아니라 한 무더기의 새로운 일거리라는 것이다. 그렇다. 복잡성은 축복의 한 단면일 때가 많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삶을 복잡하게 만들지만 어디까지나 ‘더 좋은 방향으로’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 죄는 삶을 ‘나쁜 방향으로’ 복잡하게 만든다. 아무튼 어떤 경우든 삶은 복잡하다. 기분 좋게 복잡하냐 기분 나쁘게 복잡하냐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 p.118-119 믿음은 인생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은 눈앞에 나타난 사자를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알고 최선을 다해 쫓는 것이다. 관계적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라. 불확실성이 없으면 로맨스도 없다. 영적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라. 불확실성이 없으면 신비도 없다. 직업적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라. 불확실성이 없으면 운명도 없다. 감정적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라. 불확실성이 없으면 뜻밖의 기쁨도 없다. 지적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라. 불확실성이 없으면 계시도 없다. --- p.124 안전하게 죽음에 이르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소심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나라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싸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에게 수세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최후의 공격’을 감행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전원 수비’에 급급하니 어찌된 일인가? 믿음은 역전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골문을 공략하는 것이다. 단 며칠이라도 살겠다고 성문을 꽁꽁 잠그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밖으로 나가 지옥의 성문을 부숴 하나님나라를 넓히는 것이다. --- p. 167-168 사자 추격자들은 변명거리를 찾지 않는다. 삼갈도 국가의 위기를 모른 체할 이유가 충분했다. ‘마땅한 무기가 없어. 다칠지도 몰라. 나는 군인이 아니라 한낱 농부야. 머리털 나고 군사 훈련이라곤 받아 본 일이 없어. 600 대 1이 말이나 돼?’ 하지만 삼갈은 할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은 어떤 변명을 대고 있는가? “너무 바빠.” “자격이 없어.” “나는 그런 미천한 일을 할 몸이 아니야.” “나는 문제가 너무 많은 사람이야.”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아직 준비가 덜 되었어.”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도 완벽히 준비될 수 없다. 나도 교회를 목회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혼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자식을 낳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두 번째 캠퍼스 교회를 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커피숍을 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평생 완벽히 준비될 수 없다. 이젠 하나님이 꽤 오래전에 주신 꿈을 창고에서 꺼내 먼지를 털어내야 할 때가 아닐까? 이제 그만 출전해야 할 때가 아닐까? 더 이상 뭘 기다리는가? --- p.198-199 그 춤을 통해 다윗은 우리에게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예배를 보여 준 것이다. 예배는 허울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기쁨과 의미를 얻고 나머지는 모두 벗어던지는 것이다. 우리가 왕의 옷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상 “더러운 옷”에 불과하다(사 64:6 참조).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는 하나님이 해 주신 일에 감사하며 춤추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말할 수 없는 자유가 찾아온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거들먹거릴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었다. 그저 만왕의 왕을 예배하느라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 p.225-226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사자를 쫓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첫 걸음은 작을지 모르지만 작다고 해서 하찮은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따라가기만 하면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거대한 도약이 된다. 나는 단 한 번의 사자 추격전이면 평생의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추격전이 단기간에 수월하게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두렵고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이 꼬리를 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운명은 인생길에 만난 사자 앞에서 어떻게 구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자가 무서워 도망치면 언젠가는 그것이 결국 자기 자신과 하나님에게서 도망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문제와 꿈이 평생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지 몸을 돌려 사자를 쫓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언제나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분이다. --- p. 235-2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