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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 시몬 베유 / 비극적 감수성 2. 한나 아렌트 / 아이러니와 잔악함 3. 메리 매카시 / 사실의 미학 4. 수전 손택 / 마취-미학과 작인 5. 다이앤 아버스 / 카메라를 위한 감정 6. 조앤 디디온 / 자기연민의 문제 감사의 말ㆍ역자 해설ㆍ참고문헌 |
Deborah Ne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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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련이 쓸모 있기에 사랑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나의 시련은 존재하기에 사랑해야 한다._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Gravity and Grace》
ㅡ 시몬 베유Simone Weil(1909-1943) 나의 시련이 쓸모 있기에 사랑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나의 시련은 존재하기에 사랑해야 한다. ㅡ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1906-1975) 저는 한 번도 어떤 민족이나 집단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오로지’ 친구들을 사랑하며 내가 알고 믿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개인에 대한 사랑입니다. ㅡ 메리 매카시Mary McCarthy(1912-1989) 두 개인 사이에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경합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유일성과 농도 짙은 복수성이 부딪치고 경합해야 한다. ㅡ 수전 손택Susan Sontag(1933-2004) 연민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고통을 초래한 원인과 공범자가 된다. 우리가 느끼는 연민이란 무기력이나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ㅡ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1923-1971) 사진 찍힌다는 것은, 조금, 상처가 되는 것 같아 ㅡ 조앤 디디온Joan Didion(1934-) 삶은 빨리 변한다. 삶은 한순간에 변한다. 저녁 식탁에 앉으면 당신이 아는 세상이 끝난다. 자기연민의 문제. 이 책은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미학적·정치적·도덕적 의무를 열정적으로 설파했던 여성 작가, 지식인 그리고 예술가들에 관한 책이다. 위기 상황에 도움을 구하기에는 이상한 캐릭터들을 캐스팅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이렇게 그녀들이 있다. (…)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문체의 유사성과 함께 20세기 후반 미국을 사로잡았던 고통과 정서적 표현의 문제에 대해 공통적인 관점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여러모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이 여성 작가들은 직접적이고 선명한 시각으로 위로도 보상도 없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과업을 자발적으로 떠맡았기 때문에 터프하다. --- p.9-11 「들어가며」 중에서 천형이 “기독교의 중심”(SWR, 471)이라고 주장하며 베유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한 인류의 구원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번뇌 그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베유가 보기에 구원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야만 하는 천형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보상이다. 그리하여 천형을 통해 베유는 가톨릭 교회와 가장 큰 갈등을 빚은 주장으로 다가가게 된다. (…) 베유가 주목한 이단성은 구원이 아니라 ‘비극’이 하느님의 신성한 사랑의 증거라는 주장에서 나온다. “신앙을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든 허위의 심연으로 도피하는 대신 천형을 마주할 만큼 진리를 사랑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일익을 담당한다.”(SWR, 463) --- p.75-76 「1. 시몬 베유」 중에서 아렌트는 수난이 눈멀고 귀먹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난에 주목해야 할 의무를 거부한다. 자칫하면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감정으로 주의를 분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분명히 주장하듯, 이 재판에서 유대인의 수난이 설 자리가 없었던 건 논쟁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논란의 대상은 아이히만의 책임 여부였다. 그러나 《혁명론》에서 아렌트는 좀 더 보편적인 관점에서 수난을 공적 영역에서 추방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수난에 무관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도저히 무관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133 「2. 한나 아렌트」 중에서 세계의 사실을 존중한다는 것은 나이브하고 단순하고 보수적이거나 그저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실은 종종 그 자체로 자명해서 더 이상의 해석이나 숙고, 행동이 불필요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매카시에게 하나의 사실은 논쟁을 해결하거나 정치적·미학적 참여를 매듭짓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의 시작이다. 사실들이 대화를, 탐구를, 쟁론을 시작한다. 사실의 저항성은 일상적 경험에서 사고, 예상치 못한 요소, 놀라운 것, “기적”을 밝혀 보여주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사실주의 factualism가 매카시의 취향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 p.216-217 「3. 메리 매카시」 중에서 마비와 도덕적 무의미의 바로 뒷면인 유약한 작인은, ‘연민 sympathy’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근하다. 자신의 연민이나 분노, 심지어 고통이라는 느낌에서 쾌감을 도출하든 단순히 즐기기만 하든 관객이 보는 행위를 할 때, 타자의 수난은 연민의 예술이 낳은 효과로 25년 이상 엄청난 비평의 관심을 끌어왔고 여러 장르와 시대를 가로질러 검토되고 재검토되었다. (…) 손택은 독자에게 이 이미지들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을 되살리려 노력하면서도, 연민을 집어치우라고 훈계한다.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며” 또한 공포의 참상과 우리의 공모를 위장하기 때문이다. --- p.273-274 「4. 수전 손택」 중에서 “내가 보기에 사람들이 벗어나야 하는 어떤 회피, 어떤 고상함 niceness이 존재한다.”(DAA, 2) 도구로서 카메라는 회피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카메라에는 “일종의 엄정함”과 “우리가 평소 겪지 않는 면밀한 응시가 있다. 이는 우리가 서로에게는 쓰지 않는 방식이다. 우리는 카메라가 개입할 때보다는 서로에게 더 나이스하다. 카메라가 개입하면 약간 차갑고, 약간 가혹하다.”(DAA, 2) 그녀는 마빈 이스라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인정했다. “내 생각에 사진 찍힌다는 것은, 조금, 상처가 되는 것 같아.”(R, 146). --- p.315 「5. 다이앤 아버스」 중에서 디디온은 자기연민을 피하는 이상은 불가능하지만, 금욕주의는 우리를 위로하는 자기망상의 일환이라는 결론으로 타협한다. “우리는 이상화된 야생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복잡성으로 인해 실패를 거듭하는 불완전한 필멸의 인간이고, 필멸의 운명을 밀어내면서도 항상 의식하고 있다. 이 필멸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어 상실을 슬퍼할 때 우리는 또한, 좋든 나쁘든, 우리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다. 과거의 우리 자신 말이다. 이제는 없는 우리 자신 말이다. 다시는 될 수 없는 우리 자신 말이다.”(YMT, 198) 디디온은 마침내 자기가 느끼는 상실의 감정을 비탄의 분출이나 ‘통곡’이나 ‘울부짖음’ 속에서가 아니라 감정적 자기 반추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살필 수 있게 된다. --- p.403-404 「6. 조앤 디디온」 중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터프한 지성인들의 공통점은, 누구보다 ‘차가운’ 현실 인식을 견지하되 사회적 불의나 정치의 실패로 부당하게 수난받는 약자들을 구제하고 개혁을 선도하려는 의지만큼은 ‘뜨겁다’는 데 있다. 어떤 남성 지식인에 비교해도 ‘터프함’에서 뒤지지 않았던 이들은, 온정과 연민이란 수난자가 아니라 불행한 수난자들의 시련에 공감하는 자신의 도덕성에 심취하는 허영심에 불과하다고 믿었기에, 무력한 감상주의를 거부하고 환상 없는 현실 직시에 근거한 유효한 정치적 비전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이들의 “차가움” 나아가 “비정함”은 현실을 대하는 감정의 온도라기보다는 잘 계산된 “지적 스타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p.415 「역자 해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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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 메리 매카시, 수전 손택, 다이앤 아버스, 조앤 디디온
20세기 지성계의 매력적인 여성들은 왜 ‘공감’ 대신 ‘강인함’을 선택했는가? ‘고통’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지성적이고 날카로운 책 《터프 이너프》는 20세기의 매력적이고 논쟁적인 여섯 여성 지식인을 다룬 책이다. 독특한 신학과 정치학을 개진했던 철학자 시몬 베유, 20세기 최고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 소설가이자 당대 지성계에서 독보적 여성이었던 메리 매카시,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평론가, 소설가인 수전 손택, 사회적 주변인들을 작품에 담았던 천재적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 2005년 전미 도서상을 수상한 작가 조앤 디디온. 이들은 어떤 단일한 전통도 따르지 않으며, 단순한 범주로 묶을 수도 없다. 하지만 저자 데보라 넬슨에 따르면 그들은 문체와 철학적 관점에서 서로 연관성이 있다. 바로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서 유난히 ‘강인한’ 마음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터프함’은 그간 여성의 미덕처럼 여겨져 온 감정 표현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작가의 윤리적 입장과 미학적 접근방식을 결정하는 ‘비감상주의적 태도’를 가리킨다. 이 ‘터프한’ 여성들은 ‘공감’만이 고통을 마주하는 올바른 태도라는 기존의 생각에 도전하고, ‘강인함’이 여성들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이라는 통념에 저항했다. 이들 모두는 인간의 고통과 세계의 상처가 공감이나 연민에서 나오는 격정적인 수사나 드라마에 기대지 않으려 하면서 그 상처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현실적인 방법으로 치유되어야 한다는 강인한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했다. 공감이나 연민이라는 감정은 종종 사실을 가릴 뿐 아니라 도덕적 만족감을 주어 올바른 실천이나 행위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게 하거나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들 수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위안이나 보상 없이 현실을 대면하기를 강조함으로써, 감정 과잉과 냉정한 아이러니의 양극단 사이의 좁은 길을 걸었던 이 여성들은 현실의 고통에 맞서는 진정한 ‘터프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전쟁, 폭력, 죽음, 장애 등 현실의 고통에 맞서 연민, 위안, 구원이라는 마취제를 거부하고 냉철한 사유의 날로 진실을 도려낸 강인한 삶과 사상 시몬 베유는 전후 종교가 부흥하던 시대, 위안과 구원을 강조하는 기독교를 비판하며 고난을 신의 사랑의 표지로 보고 고통과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치관에도 적용되어, 인간이 고통에 취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신학적 의무를 다해야 힘없는 자들을 격하시키지 않는, 더욱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게 된다고 보았다. 한나 아렌트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고통’의 묘사가 감정에 미혹되어 현실을 가리지 않도록 절제하고, 타자와 함께 세계를 공유한다는 인식에 바탕한 복수성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말을 잃게 하는 참상 앞에서도 고통을 분석하고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며 도덕적 판단을 내리겠다는 아렌트의 의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잘 나타나 있다. 메리 매카시는 당대의 ‘비현실적’인 역사(홀로코스트, 원폭 등)와 대조적으로 너무나 사소해 보이는 일상 간에 가교를 놓고자 사실의 문제에 천착했다. ‘사실’은 현실의 포착하기 어렵고 종종 고통스러운 특성들과의 대면으로, 매카시는 사실에 더욱 예민하기 위해 좌우도 중도도 아닌 고독을 선택한다. 좀 더 후대의 인물인 수전 손택은 현대 문화의 극적인 감정변화를 비판하며 보다 예민하게 느끼는 능력을 중요시했다. 감정과 표현은 스스로의 무력함을 즐기는 방식이라고 주장하면서 예술과 정치학에서 냉담함과 지나친 감정 과잉 사이의 좁은 지대인, 감정적 통제를 강조했다. 다이앤 아버스는 자신의 사진작품에 예기치 못한 순간이나 불편한 진실로서의 ‘현실’을 담기 좋아했다. 그녀의 작품은 고통을 강조하는 당시의 보도사진과 달리, 공감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카메라의 미학적 감정과 개인의 감정을 기술적으로 분리하여 현실의 공간을 열고자 했다. 조앤 디디온은 자기연민은 자기기만과 같은 것이라며 도덕적 가혹함을 옹호했다. 감상주의는 고통을 달래는 동시에 감각을 마비시켜 도덕적 결핍으로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논쟁적인 여섯 지성을 하나의 스타일로 꿰어내는 탁월한 논증! 우리가 사랑한 20세기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제안하는 독창적 관점! 현대 한국사회의 ‘강인한 여성’에 대한 동경을 지적으로 해소하게 해주는 책 오늘날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이 매력적인 여성들은 저자 데보라 넬슨을 통해 한자리에 소환된다. 여기서 이들은 단순히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비감상주의적 스타일을 정립한 이론가로서 오롯이 남는다. 저자는 이들이 저작과 작품 속에서 감상주의를 배제한 정치, 윤리, 미학적 실천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음을 탁월한 논증과 세세한 인용, 정밀한 분석으로 보여준다. 이에 더해 저자가 새로 낸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기존 독해를 풍요롭게 하는 흥미로운 맥락을 얻을 수 있다. 이들 ‘비감상주의 학파’가 거부한 공감이나 연민은 오랫동안 정치와 도덕의 영역에서 중요시되어온 가치다. 하지만 절대선처럼 여겨지던 도덕 감정에 대한 믿음이 틀렸다면? 전쟁과 폭력이라는 비현실적 충격이 현실 속에 난입했던 20세기에는 공감과 위안이 넘쳐났다. 이에 반해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는 그 자체로도 견지하기 어려운 것일 뿐만 아니라 무자비하고 냉정한 성품이라는 인신공격까지 견뎌야 했다. 이러한 태도에 엄격했던 삶은 곧, 고통과 한계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치열하고 절박한 하나의 대답이다.‘터프한 여자들’이 끈질기게 완수해낸 윤리적, 정치적, 미학적 작업은 20세기 전대미문의 거대한 악을 경험한 속에서 배태되었다는 점에서 더 큰 울림을 지닌다. 그녀들의 강인한 삶과 사상은 고통이 넘쳐흐르는 시대일수록 고통을 직시하는 ‘무정한’ 세계관이 힘이 세다는 메시지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극단주의와 폭력이 여전히 난무한 오늘날, 보다 강인한 도덕을 선창했던 20세기 여성 작가들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나아가 그녀들의 ‘터프함’은 ‘여성’의 권리와 능력에 대한 인습적 한계들을 허물어가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이들의 인기를 명확한 언어로 직시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