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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6
파리 지도 11 서문 가공할 해 │1870-1871│ 12 제1장 잿더미가 된 파리 │1871│ 17 제2장 회복 │1871│ 35 제3장 정상을 향해 │1871-1872│ 55 제4장 도덕적 질서 │1873-1874│ 75 제5장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 │1875│ 93 제6장 압력이 쌓이다 │1876-1877│ 110 제7장 화려한 기분 전환 │1878│ 127 제8장 공화파의 승리 │1879-1880│ 143 제9장 성인들과 죄인들 │1880│ 161 제10장 경제 침체의 그늘 │1881-1882│ 183 제11장 몽테스큐의 황금 거북 │1882│ 195 제12장 장례의 해 │1883│ 213 제13장 마침내 완성된 자유의 여신상 │1884│ 235 제14장 그 천재, 그 괴물 │1885│ 252 제15장 에펠의 설계안 │1886│ 269 제16장 뚱뚱이 졸라 │1887-1888│ 287 제17장 100주년 │1889│ 310 제18장 성과 속 │1890-1891│ 328 제19장 집안 문제들 │1892│ 344 제20장 서른한 살의 조종 │1893│ 359 제21장 폭풍과 폭풍 사이 │1894│ 385 제22장 드레퓌스 대위 │1895│ 406 제23장 이행 │1896│ 426 제24장 어둠 속의 총성 │1897│ 444 제25장 “나는 고발한다!” │1898│ 460 제26장 “이 모든 불안에도 불구하고” │1898│ 479 제27장 렌에서의 군사재판 │1898-1899│ 496 제28장 새로운 세기 │1900│ 518 주 541 참고문헌 563 찾아보기 575 |
Mary McAulif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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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성공의 전조들이 보이기는 했다. 가령 1866년 살롱전에 모네의 바다 풍경 두 점이 입선한 것도 그중 하나였는데, 이는 에두아르 마네에게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바로 그 전해에 「올랭 피아」에 대해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은 마당에, 모네와 이름 이 비슷한 탓에 많은 사람이 그 둘을 혼동하고 모네의 그림에 대 해 마네에게 축하를 건넸기 때문이다. “내 그림을 그따위로 한심하게 모방한 녀석이 대체 누구야?” 마네는 두 사람을 소개하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답하며 적어도 당분간은 만남을 사양했던 것 같다.
마네는 이미 1863년 살롱 낙선전(그해 살롱전에 입선하지 못 한 전위적 작품들의 전시회)에 출품한 「풀밭 위의 점심」으로 파 리 비평가들에게 충격을-그리고 모네에게는 영감을-주었던 터였다. 비평가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간에 모네는 「풀밭 위의 점심」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그 자신도 대작 「풀밭 위의 점심」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결국 완성하지는 못했다. --- p.59 묘하게도 모리조는 결혼 증명서에 자신의 직업을 “무직”이라고 적었다. 아마도 성장 과정에 배어든 겸양과 절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평생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니까. 결혼한 뒤 마지못해 그림을 그만두었던 언니와는 달리, 베르트 모리조는 헌신적인 외젠의 지지를 받아가며 결혼 후에도 직업적인 행보를 꾸준히 넓혀갔다. 그리고 아마도 의도하지 않은 모더니티의 징표로, 그녀는 자신의 그림에 계속해서 결혼 전의 이름, 내지는 직업적인 이름으로 서명했다. --- p.92 물론 로댕으로서는 1877년 살롱전에 「청동시대」를 출품하면서 물의를 일으킬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는 몇 해 전 벨기에에 있는 동안 한 벨기에 병사를 모델로 그 조각상 작업에 착 수하여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것을 완성, 벨기에의 한 전시회에 출품했었다. 작품은 찬탄과 의혹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비평가들은 실물의 본을 뜨지 않고서야, 다시 말해 모델에 직접 석고를 입혀 본을 뜨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조각상을 만들 수 있을지 의아해했다. 로댕은 자신의 예술적 정직성과 능력을 의문시하는 그런 의혹에 깊이 상처받았다. --- p.121 철탑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내놓은 것은 에펠의 조수들인 에밀 누기에와 모리스 쾨클랭이었다. (…… ) 놀랍게도 에펠 자신은 처음에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설계도를 본 그는 심드렁했지만, 그래도 누기에와 쾨클랭에게 그 아이디어를 좀 더 진척시켜보라고 허락했다. 그들은 곧장 강베타 정부의 예술부 장관이었고 당시 박람회 행정 위원회의 장을 맡고 있던 앙토냉 프루스트에게 소베스트르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설계 도면을 본 프루스트는 크게 흥분하여 공개적으로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아마 이 시점에 에펠도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재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설계안의 진두지휘를 맡은 에펠은 1884년 말 누기에, 쾨클랭, 소베스트르로부터 그 배타적 특허권을 사들였다. --- p.243-244 끈질긴 인내는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 프로젝트의 특징이기도 했다. 일찍이 1871년에 시작된 이 사업은 1884년에야 그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자유의 여신은 마침내 완성되어 1884년 7월 4일 파리 주재 미국 공사에게 공식적으로 기증되었다. 부득이하게 증정식은 조각상을 제작한 주물공장 뜰, 여신상의 발치에서 거행되었다. 중요한 행사였고, 다만 그 과감한 프로젝트를 정점으로 끌어온 당사자가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이 애석한 일이었다. 에두아르 드 라불레는 바로 그 전해, ‘세상을 비추는 자유’의 기념비가 완성을 눈앞에 둔 시점에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 p.250 1887년 봄, 묘령의 아름다운 여성이 뜻밖에도 그[공쿠르]의 관심에 반응을 보였고, 오래지 않아 그는 자신이 청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렘에 떨었다. 하지만 서글픈 갈등이 시작되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애정에 감싸여 말년을 보내는 것을 그려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에 평생을 바치기로 하고 전 재산을 들여 문학 아카데미를 설립하기로 했던 결심을 떠올렸다. 그의 아카데미는 당대 문학의 최고 작가들에게 시상하게 될 터이니, 공쿠르에게 그것은 일시적인 변덕이 아니라 일찍 죽은 동생에게 바치는 기념비이자 공쿠르라는 이름을 남기는 방도로 구상된 필생의 꿈이었다. --- p.290 조각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졸라는 크게 실망했고, 협회원들로부터는 불만의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마침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주물공장에 넘겨지기 전의 작품을 볼 수 있겠느냐는 위원회의 다그침을 받자, 로댕은 적어도 1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 로댕은 정말로 「발자크」에 몰두해 있어서, 그 대작가를 묘사한다는 문제 속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 발자크의 양복을 만들던 재단사에게 그의 신체 치수를 묻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이는 극단적인 사실주의로, 로댕의 비판자 중 한 사람은 그러다가는 조각상을 결코 완성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고 사실 많은 사람이 같은 우려를 하고 있었다. --- p.380 외롭고 울적한 그[무하]는 휴가를 떠난 한 친구를 위해 석판화 몇 점을 시험 삼아 찍어보고 있었다. 막 일이 끝나가는데, 갑자기 운명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사라 베르나르라는 형태로. 공방 매니저가 황망히 뛰어 들어왔다. 사라 베르나르가, 그 대배우 사라 자신이, 방금 전화하여 현재 공연 중인 연극 「지스몽다Gismonda」의 새 포스터를 주문했다고! 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것을 새해 첫날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그 일을 맡을 수 있는 화가라고는 없었다. 그는 「지스몽다」를 공연하고 있는 르네상스 극장(베르나르가 포르트-생마르탱 극장을 팔고 새로 사들인 극장)을 향해 출발했다. 베르나르에게 매료된 무하는 즉시 작업에 착수했고, 그의 일생을 바꿔놓을 포스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 p.402 드레퓌스는 자신이 사랑한 군대에 결코 진정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우선 그는 자신의 동료들 대다수와 달리, 지주 귀족 계층이나 전통적인 중산층이 아니라 신흥 산업 부르주아 계층의 일원으로, 그의 새로운 출신이나 그의 명백한 부유함이 그를 불리하게 차별화했다. 그뿐 아니라 알자스 출신인 그는 독일어, 즉 프랑스의 숙적의 언어를 할 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유대주의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이 시기에,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었다. --- p.408 1898년 1월 12일 저녁, 졸라는 그 폭탄을 [로로르] 사무실에 전달했다. 그리고 클레망소가 그 글에 역사에 길이 남을 제목을 붙였다. 「나는 고발한다J’accuse」. 「나는 고발한다」에 졸라는 이렇게 썼다. “진실은 땅속에 묻히면 점점 자라며 숨이 막혀서,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에는 모든 것을 날려버릴 만한 폭발력을 얻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공개서한이 갖는 폭발력을 얕보지 않았으니, 1월 13일 아침 [로로르]지가 파리 전역에 뿌린 이 공개서한은 30만 부를 더 찍었고, 수백 명의 신문팔이들이 외치고 다니며 팔았다. 그 효과는 즉각적이고 흉측하게 나타났다. 길거리 시위가 벌어졌고, 졸라의 허수아비 화형식이 거행되었으며, 그 남은 재는 센강에 뿌려졌다. --- p.4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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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지 않는 예술가들의 분투
예술가 중에는 초기부터 인정받고 성공을 거두는 이들도 있지만, 뛰어난 능력에도 기성 권력에 부딪쳐 험난한 시기를 보낸 이들도 많다. 1권은 그야말로 인상파 화가들이 ‘살롱전’으로 대표되는 기성 화단과 치르는 기나긴 전투라 할 수 있다. 거듭되는 낙선에도 꾸준히 살롱에 출품했던 마네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모네와 모리조, 르누아르, 시슬레 등의 화가들은 인상파 전시회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로댕조차 서른다섯에 이르러서야 살롱전에 입선했고, 2년 뒤에 출품한 「청동시대」는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모델에 직접 석고를 입혀 본을 떴다’는 소문이 돌면서 미술계에 파문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러한 논란은 결과적으로 그의 명성에 득이 되었다.(1권 122쪽) 모리스 라벨과 같은 작곡가는 그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콩세르바투아르에서 두 번이나 퇴학을 당했으며, 계속된 도전에도 로마대상 경연에서 결국 탈락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탈락했을 때 그는 이미 「물의 희롱」, 「현악 4중주」 등의 곡으로 평판을 얻고 있었기에 이 사건은 스캔들로 비화되기까지 한다. (2권 184쪽) 르코르뷔지에나 만 레이처럼 처음에는 그림 쪽에 야망이 있었지만,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이들도 있었다. 르코르뷔지에는 건축가로 일하면서도 진정으로는 화가가 되길 원했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1차 대전의 정전협정이 조인된 날은 하필 그가 전시회를 열기로 한 날이었고, 이 때문에 그의 전시회는 연기되고 만다. 어쩌면 그가 미술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현대 건축은 한 발 빨리 변화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위대한 작품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재미는 역시 위대한 예술가들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에펠탑처럼 한 권 전체에 걸쳐 완성되어 가는 대작을 보는 것도 즐겁고, 피카소의 「인생」이나 조이스의 『율리시스』 같은 잘 알려진 작품들의 뒷이야기를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자유의 여신상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는 대개 거대한 이상과 가치가 담기기 마련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을 축하하는 프랑스인의 우정의 선물이었지만, 이는 동시에 혁명과 반동 사이에서 부침을 거듭해온 프랑스 국민들에게 ‘자유’라는 이정표를 세우는 행위였다. 이 여신상의 외관은 바르톨디의 것이었지만, 내부 구조는 에펠이 담당하여 거대한 외형을 떠받칠 철탑을 고안했다.(1권 178쪽) 한편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또 한번의 만국박람회에 무언가 ‘진짜 볼만한 것’을 내놓자는 제안에서 시작된 에펠탑은 원래 ‘에펠’탑이 아니었다. 애초에 철탑 아이디어를 냈던 것은 에펠의 조수들이었는데, 에펠 본인은 처음엔 이 계획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으나 당시 박람회 행정위원장이 이 제안에 크게 흥분하자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재고하여 특허권을 사들였다.(1권 244쪽) 피카소의 청색시대 걸작으로 평가되는 「인생」은 충격적인 개인사와 그에 얽힌 복합적 감정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나체의 한 남자와 여자가 나온다. 남자는 피카소와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온 친구 카사헤마스이고, 여자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 제르멘이다. 카사헤마스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제르멘으로 인해 절망에 빠진 나머지, 여러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를 쏘고 뒤이어 자기 자신에게도 방아쇠를 당긴다. 다행히 제르멘은 살아났고, 이후 피카소의 애인이 된다. 「인생」에 엑스레이를 쬐어 보면 카사헤마스의 그림 밑에 원래 피카소 자신을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의 의미는 피카소 자신조차 확실히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2권 146쪽) 책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프랑스를 여행할 때 꼭 들르는 곳이 아마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일 것이다. 이곳은 이후 파리에 거주하던 영미 계통 작가들의 삶을 크게 바꾸었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운명도 바꾸었다. 미국 잡지에 연재되던 이 작품은 ‘외설물’ 혐의로 고발되어 게재 중단의 위기에 처한다. 출판업자를 구하지 못하여 좌절한 조이스에게,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창업자인 실비아 비치가 출간을 제안한다. 출판 경험도 자본도 없었던 이 용감한 여성 덕분에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끝까지 써 내려갈 수 있었다.(3권 160쪽) 편견을 부수며 전진한 굳센 여성들 급격한 변화의 시기, 전위적인 시기였다고는 해도 선구적인 이들이 길을 트기는 녹록지 않았고, 여성들에게는 이 길에 ‘여성’에 대한 제약이 더해져 더욱 험했다. 그러나 앞서 나간 여성들은 어떤 편견과 부당한 대우에도 굴하지 않았다. 시리즈 전체에 걸쳐 위풍당당함을 보여준 대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햄릿 같은 남자 배역도 마다하지 않았고, 조각에도 열정을 보였으며, 만국박람회 때 선보인 열기구를 타보는 모험을 한 뒤,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하고야 마는 성미였던 것이다. 상류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난 베르트 모리조는 일찍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부모는 그런 그녀에게 미술 선생을 구해주었다. 상류 계층의 여성이 ‘교양으로’ 그림을 배우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욕구가 아마추어리즘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그녀의 부모는 난감해했다. 모리조는 자신의 성별 때문에 동료 화가들과 함께 어울리기 어려웠음에도 자신만의 비전과 테크닉을 개발했다. 결혼 증명서와 사망 증명서에 그녀는 ‘무직’으로 기록되었으나, 그녀가 그린 뛰어난 작품들은 현재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에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걸려 있다. (1권 30쪽) 마리 퀴리에게도 학업과 연구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폴란드 출신이었는데, 당시 바르샤바 대학교는 아예 여학생을 받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장장 5년 동안 가정교사로 일한 끝에 그녀는 파리로 유학을 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생활고와 임신과 출산 등 온갖 어려움에도 연구를 계속하여 방사능을 발견했다. 그러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마리의 기여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노벨 물리학상에서 그녀를 배제하려 했다. 다행히 이런 시도를 미리 안 피에르가 손을 씀으로써 마리는 의당 받아야 할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녀를 향한 학계의 차별은 계속 이어진다.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죽은 후에 피에르의 소르본 교수 자리를 마리에게 정식으로 주지 않고, 교수직은 공석으로 두되 ‘마리가 피에르를 대신하여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다. 끝없는 차별에도 두 개의 노벨상을 탄 그녀는 선구자들은 인생의 아늑한 구석에 정착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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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콜리프는 예술가들과 예술가들을 둘러싼 이들의 내면을 꼼꼼하게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이 비범한 인물들의 인간적 면모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이 위대한 인물들은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애도하고, 경제적 측면과 유산에 대해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예술가의 삶과 그들이 살아가는 격동적인 세계를 진정으로 놀라운 통찰력으로 보여주며,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전혀 본 적이 없는 세계를 장엄한 필치로 폭넓게 그려냈다. - [워싱턴 인디펜던트 리뷰 오브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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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파리는 예술과 패션,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메카로서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이 매력은 벨 에포크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시대’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문화가 활짝 꽃핀 시대였다. 매콜리프는 이 예술적 폭발의 시기를 한 해 한 해 추적하면서도 그 빛나는 그림의 이면에 관심을 기울인다. 유럽사의 한 획을 그은 흥미롭고 중요한 시대를 정직하게 묘사한 뛰어난 책.
- [북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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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역사책이라기보다 소설처럼 읽히는 책. 1차 자료를 풍부하게 인용하여 역사의 인간적인 면을 더없이 친근하게 보여준다. - [뉴욕 저널 오브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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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을 갖춘 개성적인 책. 각 장에서 우리는 종종 편지나 일기를 통해 당대를 살았던 주요 인물과 사건을 만나게 된다. 나는 내가 책 속 인물들의 삶의 일부인 것처럼 느꼈고, 책을 다 읽을 무렵에는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그 유명한 인물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 [컬렉티드 트래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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