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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이 책을 펴내면서 머리말 1 장 행위과정에서 습관의 역할 1. 사회적 관계 맺기로서 습관 2. 습관과 의지 3. 성품과 행위과정 4. 관습과 습관 5. 관습과 도덕 6. 습관과 사회심리 2장 행위과정에서 충동의 역할 7. 충동과 습관변화 8. 충동의 신축성 9. 변화하는 인간 본성 10. 충동과 습관의 충돌 11. 본능의 분류방식 12. 배타적이지 않은 본능 13. 충동과 사유 존 듀이의 서론 -역자 해제 -찾아보기 |
John Dew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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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적 관계 맺기로서 습관
1. “미덕과 악덕은 외부 객관적 요인과 상호작용하는 습관이다.”(p.20) 2. 습관과 의지 34 2. “우리가 곧 습관이다.” “습관은 자아를 구성한다.”(p.29) “성품이란 진행되고 있는 습관들의 상호작용에 주어지는 명칭”이다.(p.45) "진실로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은 행위에서 나온다."(p.46) 3. 성품과 행위과정 55 3. “의지란 구체적으로 습관을 의미하고, 습관은 그 안에 어떤 환경을 통합”한다.(p.58) "믿음을 갖는 방식, 기대를 하는 방식, 판단을 내리면 감정을 품는 방식은, 일단 형성된 후에는 쉽게 변형되지 않는다."(p.64) 4. 관습과 습관 71 4. “(타성에 젖은) 죽은 습관dead habit이 우세해지면 삶이란 그저 열정으로 그칠 뿐이다.”(p.78) 5. 관습과 도덕 89 5. “틀에 박힌 타성의 파괴는 정정당당한 반역이다. 틀에 박힌 습관으로부터 이탈은 도전이다.”(p.82) 6. 습관과 사회심리 99 6. “습관들의 갈등은 충동적 활동을 유발하고, 이 충동적 활동은 그 표출과정에서 습관의 어떤 교정, 또 관습과 습속의 어떤 교정을 필요로 한다.”(p.95) ---「1장 행위과정에서 습관의 역할」중에서 7. 충동과 습관변화 107 7. “닭이 달걀보다 먼저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떤 특별한 달걀을 골라야 미래에 닭으로 바뀌게 할 수 있다.”(pp.104-105) 8. 충동의 신축성 114 8. “문명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려면, 충동이 일으켜져야 하고, 습관이 충동의 변형력에 신축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p.113) 9. 변화하는 인간 본성 126 9. “행위습관은, 사유습관이 활력을 유지 못할 때, 근육을 움직이는 교묘한 속임수trick에 지나지 않게 된다.”(p.121) 10. 충동과 습관의 충돌 147 10. “인간은 습관의 창조물로서, 이성의 창조물도 아니며, 그렇다고 본능의 창조물인 것도 아니다.”(p.140) 11. 본능의 분류 방식 154 11. “자아란 만들어지는 과정in the process of making (....) 행동에 앞서 미리 정해진 자아ready-made self란 없다.”(pp.153-154) 12. 서로 배타적일 수 없는 본능들 174 12. “놀이와 예술은 도덕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p.177) 13. 충동과 사유 195 13. “성찰이란 경향성을 새로이 하고 또 습관을 재구성하기 위해서 충동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성찰이다.”(p.188) "모든 행동이란 미래로, 미지세계로 향하는 습격과도 같다."(p.211) ---「2장 행위과정에서 충동의 역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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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듀이의 자연주의와 경험철학
이 책을 읽을 때 무엇보다 먼저 염두에 둘 것은, 듀이의 자연주의와 경험철학이다. 그의 자연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무한히 뻗어가는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이 자연 속에서 무한히 펼쳐지는 무수한 사건의 어떤 에피소드일 따름이다. 자연 속에서 사건은, 사람이기도 하고, 사물이기도 하고, 역사이기도 하다. 사물, 사람, 역사는 자연 속 경험이다(여기서 경험은 철학사에 나오는 경험론의 감각경험과는 판이하다: 역자 해제 참조). 자연을 넘어서는 어떤 초월적인 정신이나 영혼이란 없다. 자연주의에 따르면, 자연을 초월하는 세계를 끌어들이는 것은 오류이며, 허구이며, 기만이다. 듀이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제껏 경험을 초월하는 세계를 끌어들여 그것을 경험과 대비시키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이분법은 오류, 허구, 기만이며, 그 원흉은 플라톤Platon이다. 플라톤은 육체로 살아가는 저급한 현실 세계와 고상한 정신이 머무는 이상 세계를 구분 지었다. 그러나 자연 속 그 누구도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살 수 없다. 당연히 정신을 육체보다 우위에 두는 것도 잘못이다. 그 어떤 고결한 정신이라고 한들 한낱 자연 속 경험일 따름이다. 정신은 육체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한탄스럽게도 여전히 사람들이 정신과 육체가 서로 분리될 수 있을까 한 점 의심 없이 그렇다고 믿고 살아간다. 듀이는 자연을 초월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폭로한다. 이러한 폭로로 말미암은 결론이 바로 자연주의다. 도덕(법칙, 원리)을 오로지 순수한 정신의 발로로 여기는 것이 자연주의를 거부하는 대표 사례다. 칸트Kant는 도덕행위를 순수한 선의지의 발로라고 했던가. 그러나 도덕 역시 경험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경험을 넘어선다는 것은 단순한 상상일 따름이다. 단순한 상상으로 육체를 벗어나서 고결한 정신과 영혼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오로지 자기만은 경험을 초월할 수 있다는 자기기만이다. 예언자 혹은 구세주 아니면 깨달음을 얻은 자로 자처하는 자들과 이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마찬가지다. 오로지 마음 하나로 얼마든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도 그들은 아직까지도 세상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밤낮없이 경험세계가 바꾸어지기를 오로지 마음만으로 소망한다. 마음만으로 세상이 바꾸어진다는 이 신비스러움이여, 이 허망한 정열이여, 듀이는 한탄한다. ‘도덕’은 본래적 인간 본성, 사회관습과 사회체제라는 이 두 가지 힘들이 상호작용하는 관계 맺기의 과정이다. 이전 사상가들은 인간 본성(에 관한 어떤 지식)이 모든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열쇠이며 따라서 경제, 정치, 종교적 믿음 등등 사회생활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공통된 본성의 구조와 작용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사회체제와 사회조건의 작용(인간 본성이 드러나는)을 미처 간과하고 있다고 본 듀이는 인간 본성은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받으며 또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아 인간 본성은 신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흄도 습관과 관습을 강조했지만,) 습관과 관습에서, 삶과 연관되는 핵심 사실로서 관습은 개인의 습관 형성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러한 사회조건과 사회체제의 다양성이 작용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똑같은 인간 본성의 요인이라도 서로 다른 태도와 경향을 산출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렇게 보면 한쪽은 원초적이고 본래적인 인간 본성을 강조하고, 다른 한쪽은 사회 환경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인류학에서 보면 사회적 현상에서 문화의 전파과정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공통의 신념과 사회체제가 이 세계의 서로 다른 지역에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서로 다른 지역들이 그 전부터 서로 접촉했었고 상호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반면 그 반대쪽은 어떤 시대 어떤 지역에서든 인간 본성이 일치한다고 생각해서 문화 현상을 인간 본성의 이러한 내재적 통일성으로 해석하려한다. 인간 본성은 사회로부터 어떤 영향도 받지 않으며, 사회현상을 ‘본능’이라고 불리는 원초적 본성의 특질을 끌어들여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후 경향은 후자보다는 전자 곧 문화의 중요성이 그 이전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 본래적 인간 본성, 사회관습과 사회체제! 어떻게 보면 넓은 의미에서 이 두 가지 힘들이 상호작용하는 관계 맺기의 과정이 ‘도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