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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냥꾼
2부 늑대 3부 할머니 4부 빨간 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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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와 전화를 끊고서 기혁은 경미에게 사실을 말했다. 경미는 큰 충격에 빠져 비명을 지르며 손을 달달 떨었다.
“민주는? 민주는 지금 괜찮아? 민주가 가서 만난 할머니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 도대체 누군데 그 집에서 어머니인 것처럼 앉아서 민주를 만난 거냐고.” 기혁도 그걸 알 수가 없어 미칠 것 같았다. 어느 정신 나간 사람 이길래. 어쩌면 사진을 보낸 사람일지도 몰랐다. 모든 걸 다 보고 다 알아낸 다음에 기혁을 협박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잘못 골랐다. 협박해서 얻을 거라고는 돈뿐일 텐데 자신은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다. --- p.90 “왜 이런 얘기를 다 하는 거야?” “니가 먼저 물었잖아. 전화했을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그래서 대답해주는 것뿐이야. 궁금해하는 것 같길래.” 동주는 민주의 말에서 이상한 악의를 느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것뿐이었다. 그것도 순전히 실수였다. 인기척을 내지 않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누군가를 미워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누군가의 비밀을 알게 됐다는 이유만으로. --- p.176 아직 어두웠다. 산 아래 볕도 잘 안 드는 동네라, 해도 늦게 뜰 것이다. 어제 낮부터 눈을 퍼붓던 구름이 다 물러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고요 속에서 푹…… 무언가 작게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 같았다. 눈이 그쳤나. 현미는 담벼락 안쪽의 감나무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또 들리는 푹…… 하는 소리는 깊은 산속에서 나는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현미는 방으로 돌아가 얼른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곤 금세 잠들었다. --- p.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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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할머니는 누구세요?”
기묘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빨간 모자 소녀’의 미스터리 케이스릴러 열 번째 작품 『빨간 모자』는 제목이 암시하듯 동화 「빨간 모자 소녀」에서 모티브를 가져 왔다. 빨간 모자 달린 후드의 어린 소녀가 할머니 집으로 심부름을 갔다가 할머니로 변장한 늑대를 만나는 이야기는 최근 동일 제목으로 일반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동화 속 이야기에 내재된 가장 긴장감을 주는 장치는 무엇보다 할머니인 척하는 늑대일 것이다. 소녀가 할머니인지 늑대인지 알아차리는 순간까지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소설 『빨간 모자』에서도 전세 보증금을 가지고 달아난 친구를 찾아갔을 때 주인공이 친구의 할머니는 진짜일까 의문을 품는 데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빨간 모자』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내가 저 할머니의 손녀가 되면 안 되는 걸까? 사라진 친구와 친구의 실종을 감추는 할머니 그리고 은밀한 유혹 그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다 취업준비생 현미는 전세 기간이 끝나면서 함께 살던 룸메이트 민주와 동거를 끝내기로 한다. 현미는 반지하 원룸을 계약했고, 민주는 할머니 댁에 들어가 살 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사 갈 날을 코앞에 두고 민주가 자신 몰래 보증금을 빼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짐을 그대로 둔 채. 몸만 사라진 것이다. 집을 빼줘야 하는데 민주는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가족조차 알 길이 없다. 현미는 보증금을 되찾기 위해 작년에 민주를 따라 한 번 가봤던 그녀의 할머니를 찾아간다. 그러나 민주는 거기 없었다. 민주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리고 할머니는 그때 본 할머니가 아닌데……. 그러나 현미는 작년에 봤던 할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금세 지워버린다. 민주의 전화가 어제까지도 할머니에게 걸려왔기 때문이다. 민주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했지만, 오히려 살아있다는 게 더 의심스럽게 느껴진다……. 서서히 젖어들다 어느새 숨 막히는 잠식 스릴러 『빨간 모자』는 일본 미스터리, 영미권 스릴러에 조금씩 경쟁력을 갖춰 가는 한국 장르문학에 또 한 명의 놀라운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의 등장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작가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친근하면서도 기묘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러한 이질적인 세계에는 자극적이면서도 덤덤한, 이상한 분위기의 안개가 깔려 있고, 믿을 수 없는 전개가 믿지 않을 수 없도록 천연덕스럽게 펼쳐진다. 작가가 만든 그 세계에는 놀라운 삶의 비밀도 숨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 그 선택으로 인해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내린 선택의 진위를 생각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의 재능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에서 더욱 유감없이 발휘된다. 작가는 시종 툭툭 던져놓듯이, 주머니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꺼내놓는다는 듯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무심한 투의 전개가 그 어떤 고도의 장치보다 더 가슴 철렁 내려앉게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왜 지금 내가 놀란 거지, 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미 나의 의식이 작가에게 흠뻑 잠겨버렸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