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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프롤로그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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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느낌이 있다. 체포되기 전에도 늘 그랬다. 이번에는 잡혀가겠구나, 하면 어김없이 그랬다. 스물여섯 번 중에 어느 한 번도 피해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나는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체포는 피하지 않은 것이고,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러나 그 차이도 사실은 차이가 아니다. 나는 지금 꼼짝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다. 겨우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난 시절에도 나는 여러 번 꼼짝없이 묶인 채 내 운명을 지켜보아야 했다.
아내는 지금 자기가 반드시 나를 일으켜 세울 테니 지켜보라고 당신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는데, 아니다. 이십육 년 전에는 인재근이 나를 살려낸 것이 맞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싫지만,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내 기억의 편린을 정리하는 것은 이제 내 몫이 아니게 되었다. 어떤 것은 현실 같기도 하고 꿈 같기도 하다. 내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고, 하지 못하게 한 이야기도 있다. 여전히 하지 말아 주기를 바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는 이것도 내 몫이 아니게 된 것 같다. --- p.9 내 눈길을 잡아당기는 것은 이상하게도 그렇게 주장하는 아이의 입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목덜미였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조금의 떨림도 없이 그 아이의 미끈한 목젖을 타고 미끄러져 나오는 이 어휘가 내 목에는 가시처럼 걸렸다. 한 끼라도 굶어 보았을까.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반복하는 그 아이들의 ‘결사반대’에 나는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 p.51 전태일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의 처절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폭로한 비참한 노동 조건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감내하기 어려운 가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고, 그들의 고통을 아파했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던진 충격의 실체는 조금 더 깊고 근원적인 그 무엇이었다. 세상의 어떤 무관심과 횡포도 훼손시키지 못한 한 인간의 완벽한 선의는 놀라운 희망의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전태일은 우리가 외쳐 온 정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불타는 몸으로 묻고, 차가운 주검으로 대답을 요구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제 모두의 몫으로 남았다. 질문을 던진 전태일은 주검이 되어 대답 듣기를 영원히 거부해버렸다. 이제 그가 던진 질문은 내게도 평생을 두고 대답해 나가야 할 숙제로 남겨졌다. 참으로 어렵고도 잔인한 질문이었다. 11월 25일 수요일,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합동 추모 예배가 연동교회에서 열렸다. 학교가 문을 닫아버린 상태에서 단식투쟁을 계속하던 나는 후배들을 데리고 이 예배에 참석했다. 어느새 나는 다시 맨 앞줄에서 있었다. 예배에서 김재준 목사가 한 추도사는 오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에 전태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나태와 안일과 위선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다.” --- p.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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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영동 1985’의 주인공 김근태 이야기
고(故) 김근태의 생애를 다룬 최초의 소설 어떤 위협 앞에서도 자긍심을 낮추지 않았던 김근태의 고독, 그 뜨거웠던 삶의 연대기가 펼쳐진다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소설이지만 김근태가 쓴 자서전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했다. 같이 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김근태의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인재근 (故 김근태 의장 부인, 기자간담회에서)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가 방현석의 장편 소설 故 김근태의 삶 소설로 그려내 주변 사람들의 회상과 증언도 소설에 녹아들어 사실감 더해 2003년 「존재의 형식」으로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 방현석의 장편 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는 2011년 12월 13일 작고한 故 김근태 씨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2012년 고인의 수기를 바탕으로 한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가 개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삶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 바 있다. 영화 [남영동 1985]가 고문실의 풍경과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영혼을 지켜내려는 한 인간의 사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방현석의 소설은 실제 우리 현대사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김근태가 실명으로 등장해 흥미를 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김근태의 개구쟁이 유년 시절과 학생운동이나 정치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학창 시절의 모습, 대학생이 된 후 역사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계기 등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으며, 소설 중간 중간 삽입된 인터뷰 형식의 증언들이 사실감을 준다. 논픽션의 반대편에 소설이라는 픽션이 서 있는 게 아니다. 논픽션 너머에 있는 게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픽션은 논픽션의 불완전한 감동을, 완전한 감동으로 만든다. 이 소설에서도 논픽션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실이 가지고 있는 진실을 좀 더 잘 보여주기 위해 픽션이 동원됐을 뿐이다. 나는 이 소설이 백 퍼센트 진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방현석 (저자, 기자간담회에서)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가 방현석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 생생한 서사 2012년, 한국 현대사의 빛나는 이름들이 다시 호명된다. 1988년 《실천문학》 봄호에 생동감 있는 노동현장을 그려낸 「내딛는 첫발은」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방현석은 『내일을 여는 집』 『십년간』 『당신의 왼편』 『아름다운 저항』 등 우리 현대사에서 노동자의 숨결과 헌신, 민주화 운동 세대의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해 왔다. 그런 그의 시선이 고 김근태를 주목한다. 고인이 된 김근태가 주인공이자 실명으로 등장하는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에는 가까운 현대사에 실존하는 인물이자 소설 속의 김근태라는, 한국문학사에 이전에는 없던 전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느낌이 있다. 체포되기 전에도 늘 그랬다. 내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고, 하지 못하게 한 이야기도 있다. 여전히 하지 말아 주기를 바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는 이것도 내 몫이 아니게 된 것 같다.” 대학병원의 한 병실에 누운 화자로부터 누군가가 이야기를 옮겨 적는다. 이어 화자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시인한다.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들던 ‘남영동’에서조차 아득하게 떠올리곤 했던 유년에 대한 회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화자는 다름 아닌 김근태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교장 선생님 댁 막내인 꼬마 근태는 교사의 닭장에서 달걀을 훔쳐내 고구마과자를 사 먹자는 꾀를 내어 누나와 함께 일을 저지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 들켜 벌을 서게 된다. 누나가 자신을 대신해 잘못을 뒤집어쓰고, 아버지는 달걀과 고구마과자를 바꾸어준 학교 앞 털보 할아버지에게 찾아가 사과를 한다. 어린 근태는 자신의 잘못으로 누나가 벌을 서서 미안했지만, 털보 할아버지에게 사과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근태의 유년은 아버지를 따라 관사에서 관사로 옮겨 다니는 연속이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이어지는 이사와 전학 때문에 근태는 공부보다는 친구를 사귀는 일에 더 열심이다. 그럼에도 성적에는 늘 자신이 있는 근태였지만 원하는 중학교 시험에 떨어져 의기소침하게 되고, 이때부터 근태는 공부에 열심히 매달리게 된다. 두 번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근태는 경기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공부한다. 그러나 5·16군사정변 이후 갑자기 바뀐 정년제도 때문에 퇴직하게 된 아버지가 퇴직금을 사기 당하고, 집안 살림이 거덜 난다. 그런 와중에 근태는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집안 살림에 부담을 덜기 위해 근태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입주 과외 교사가 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해의 4월, 경기고등학교 학내 서클들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하는 한일협정 반대 토론이 벌어졌다. 그러나 근태는 빌리기보다는 받아야 할 보상금을 먼저 받아서 사용하자는 생각이 왜 나쁜지 이해할 수 없다. 고등학생 근태의 모습은 학생운동이나 정치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사회 부조리를 해결하고 경제성장을 이루는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한다. 경제학을 공부해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가난 때문에 무시당하고 모욕당하지 않는 세상을 설계하는 일에 기여하겠다는 막연한 꿈도 키운다. 빗물에 집이 무너져 내리고, 대학 등록금을 낼 길이 없어 방황하기도 하지만 근태는 서울대 상대에 입학한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바꾸게 되는 경제복지회와의 만남. 근태가 가졌던 역사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뒤집히고 자신의 운명 또한 다른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김근태의 삶은 바로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가 걸어간 길, 고독했지만 당당했고, 슬프지만 찬란했던 역사 그 자체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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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석 작가가 김근태 씨에 대해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혹시라도 그 사람을 너무 크게 과장한다든지 그럴까 봐 조금 걱정스러웠습니다. 웬걸요, 생전 소탈하고 다정하면서도 고집스럽던 그 모습으로 김근태가 내 앞에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아무 군더더기도 걸치지 않고, 내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버지로 우리 이웃의 이웃으로, 무엇보다 평화를 사랑했던 민주주의자로…. - 인재근 (故 김근태 의장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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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을 다한 한 남자의 생을 읽으면서, 한 시대의 증언을 목도하면서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눈물이 났다. 그리고 숨도 못 쉬고 읽어내려 갔다. 스려저간 많은 별들을 떠올리며 가슴에 오랜만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 정지영 (영화 [남영동 1985]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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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맡은 김종태 역은 모진 고문을 받고 몸은 물론 영혼이 부서져 내릴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과연 나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연기를 하면서도 되묻곤 했지요.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읽고 알았습니다. 아, 이런 분이셨구나… 그래서 결국은 이겨내고야 마셨구나, 하고요. - 박원상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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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처럼 재밌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김근태와 그가 살았던 1970년대가 어떠했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이 잘 들어 있다. 박원순, 정운찬, 장기표, 조영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있다. - 문소영 (서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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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존재의 신성함을 경험했다. 실로, 실로 오랜만에 세계의 비의에 몸을 떨었다. 어떤 위협 앞에서도 도덕적 자긍심을 낮추지 않던 단독자의 고독, 그 비애와 슬픔과 연민과 고뇌들이 모여 강철 이미지로 전이되는 광경을 보라. 소설을 읽으면서 적어도 세 곳에서 울음이 복받치는 것을 누르지 못했다. 이 인물이 바로 그, 한국현대사를 뒤흔들며 오만하도록 당당했던 세대가 눈부셔하던 그가 맞다. 우리가 그토록 경외해 마지않던 저 고적한 인간의 실체에 가장 근접한 거리까지 육박해 간 작가에게 갈채를 보낸다. 한국문학의 어느 모서리에 이렇게 위엄에 찬 인간형이 출몰한 적이 있었던가. - 김형수 (소설가,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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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역사를 낳고 역사가 사람을 낳는다. 그 시대가 김근태를 만들었고 김근태는 그 시대를 만들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서 역사와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이 소설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 현기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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