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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범 사냥
1장 포수의 원칙 2장 백무아 3장 네가 알고 내가 안다 4장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5장 과연 김수협 6장 앞물결과 뒷물결 7장 다이나마이트 8장 단독여단 9장 포수의 것은 포수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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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에게 방아쇠를 당겨야 할 순간은 언제나 단 한 번뿐이다. 격발의 순간을 놓친 저격수에게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 p.148 계절이 바뀌고 해를 더하는 동안 나는 금강산의 일부가 되었다. 토끼의 길과 노루의 서식처, 호랑이의 사냥터와 멧돼지의 동선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눈을 감고도 내달릴 수 있을 만큼 금강이 발에 익었다. 호랑이를 네 마리 더 잡았고, 금강산에 무서운 범포수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태백준령을 따라 번져나갔다. 내가 잡은 다섯 마리 호랑이가 스무 마리로 슬금슬금 불어나더니, 일곱 마리째를 잡고 덕원장터에 내려갔더니 어느새 오십 마리를 잡은 것으로 불어나 있었다. --- p.282 세 개 포연대의 포수 모두가 지켜보는 눈앞에서 산평 포수계의 수포수 넷을 데리고 일본군을 통쾌하게 쓰러뜨리며 그들의 치욕을 씻겨준 것이 유기운이었다. 내가 정면 대결을 펼치겠다는 유기운의 주장을 받아들인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책임감과 자신감은 가장 뒤처졌던 자를 가장 앞선 자로 만들기도 하고 가장 앞섰던 자를 가장 뒤처진 자로 만들기도 하는 마술이었다. “포수의 것은?” 주먹을 치켜든 유기운이 어젯밤 내가 물었던 것을 그의 수하 포수들에게 물었다. “포수에게!” 산평 포수계의 포수들이 하늘을 찌를 기세로 일제히 대답했다. 유기운은 그런 포수들을 둘러보며 다시 물었다. “조선의 것은?” “조선에게!” --- p.5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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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는 산에서 짐승들과 같이 살아. 농부와 어부는 사람의 질서 속에서 살지만 포수는 짐승의 질서 속에서 사는 거야. 산이 내게 내주는 몫만큼 잡는 거지. 여우에게는 여우의 몫이 있고, 늑대에게는 늑대의 몫이 있고, 범에게도 범의 몫이 있듯이.”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범도는 산야를 떠돌며 포수로 성장한다. 생계를 위해 열다섯의 나이에 평양 군영에 입대한 그는 그곳에서 민란의 참상과 위정자들의 부조리를 목격하고 군영을 떠난다. 다시 떠돌이 포수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범도는 군영에서 함께 싸웠던 동료의 가족들이 일본군에게 처참히 몰살당한 것에 분노해 홀로 일본군을 한 명씩 처단해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 한 자루로 일본군과 싸우는 명사수에 대한 소문은 조선 각지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누가 그랬는지도 모르는데 그 많은 일본군과 현흑상단을 다 어떻게 하겠어요?” “다른 사람의 것은 몰라도 세 명의 목숨값으로 한 명에 왜군 열 두씩, 서른 두는 내가 맡아서 계산하려고.”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죽은 내 친구가 할 수 없으니 아직 살아 있는 내가 그것이라도 해야지.” _본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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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을 사냥하던 포수에서 조선 독립군 장군으로
총 한 자루로 외세에 맞선 홍범도의 불꽃같은 생애 대한독립운동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3·1 만세운동과 같은 비폭력 저항운동, 그리고 총을 들고 일제와 싸운 무장투쟁. 홍범도는 무장투쟁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조국을 되찾으려 했던 인물이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겨 군대가 해산된 후 조선에서 총을 가진 유일한 집단은 바로 짐승을 사냥하는 포수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포수로 자라 범을 사냥하는 포수로 전국에 이름을 떨칠 정도의 명사수였던 홍범도는 동료의 가족들이 일본군에 몰살당하는 참상을 목격한 뒤 홀로 일본군과 싸우기 시작하고, 후에는 그를 따르는 포수들을 규합해 항일연합포연대를 구성한다. 『범도』는 그들이 일본군과 싸우다 강제로 해산당해 만주와 연해주를 떠돌고, 이후에 돌아와 대한독립군이 되어 다시 일본군과 봉오동에서 대격돌하는 순간까지를 그린다. 『범도』는 처음부터 대의를 품고 분연히 일어난 영웅이 아닌, 순진무구한 소년 사냥꾼에서 시대의 격랑에 휘말리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홍범도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시대상을 관통하며 나아간다. 먹고살기 위해 군영에 들어가고,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를 위해 홀로 일본군에 복수를 감행하고, 일제의 강제 해산 명령에 궁핍한 신세가 되어 광야를 헤매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영웅과 다르다. 『범도』는 그래서 어쩌면 평범했던 한 사람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신념을 갖게 되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무엇과 싸워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혼자였던 한 소년은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차이경, 군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남창일, 연모하고 존경했던 백무아, 전설적인 저격수 진포 등과 함께하며 비로소 ‘홍범도’가 된다. 하나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범도』는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단지 역사 속 인물의 활약을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방현석은 전란의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치열했던 삶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생생히 그려낸다.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를 비롯해 만주와 연해주를 종횡무진하는 홍범도의 궤적을 통해 당시 민중들의 삶과 거대한 독립운동의 물결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방현석이 되살려낸 개성 강한 인물들이 펼쳐 보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강력한 읽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처럼 마치 한 시기를 함께 살아낸 듯 이야기에 빠져들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귀한 경험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