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5 발간사
7 사진으로 보는 포항 6·25 제1부 총론 45 제1장 6·25전쟁 개관 74 제2장 포항 6·25전쟁 개관 제2부 전쟁 이전, 전쟁의 기운 83 제1장 6·25전쟁 전 포항 지역 상황 113 제2장 공비들에 의한 피해 제3부 포항 6·25전쟁사 131 제1장 죽장 지구 구암산 전투 137 제2장 미군 포항상륙작전 152 제3장 죽장 보현산 수석봉 전투 168 제4장 학도병들이 산화한 포항 실함 직전 전투 184 제5장 송라 독석리의 3사단 철수작전 193 제6장 민 부대의 포항 탈환 작전 199 제7장 기북 지구 비학산 전투 203 제8장 천마산지구 삿갓봉고지 전투 223 제9장 포항 안강 전투 232 제10장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 형산강 전투 272 제11장 포항 게릴라헌트 작전 296 제12장 포항 경찰과 6·25전쟁 제4부 전쟁 이후, 상흔과 위로 309 제1장 전쟁의 상흔 378 제2장 호국현창사업 447 제3장 포항 전쟁의 영웅들 453 제4장 생존자 증언 465 제5장 남은 이야기들 부록 477 포항의 6·25전쟁사 연표 499 주요 참고자료 및 문헌 503 찾아보기 |
김정호의 다른 상품
김진홍의 다른 상품
이상준의 다른 상품
이재원의 다른 상품
|
포항전쟁사에서 절대 빠트릴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동안 서울·경기 지역 출신 71명의 학도병들이 중심이 되었던 포항여중 전투(8월 11일)는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알려진 상태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학도병들이 산화하기 이전에 이미 포항에서 자원입대한 지역 출신의 수많은 학도병이 포항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서 먼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포항출신 학도병들은 기계·안강 전투, 삿갓봉고지 전투 등에서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신병으로 전투에 참가해 무명용사로 산화하였다. 무엇보다도 포항여중 전투에서 71명의 학도병들이 북한군과 저항할 수 있는 경계태세를 갖출 귀중한 시간을 제공한 전투가 있었다. 제3사단 제25연대 제3대대 제9중대가 남하하는 북한군 전초부대와 8월 9일과 8월 10일 자정 즉 8월 11일 00:00부터 03:00경까지 소티재(105고지)에서 격렬한 백병전까지 치른 끝에 15명만 남긴 채 모두 전멸한 소티재 전투였다. 제25연대는 7월 중순경 병력보충을 위해 신규 편성된 연대로서, 현재 기준으로 포항고 300명, 동지고 300명, 해양과학고 200명으로 구성된 약 6~7백명의 포항 출신 학도병들이 대부분 편성에 들어간 부대였다. 그들은 중대, 대대 단위로 편성되는 즉시 포항을 사수하는 안강·기계 전투, 천마산지구 전투 등에 순차적으로 투입되었다. 따라서 편성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던 제3사단 제25연대 소속의 포항 학도병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따라야 할 것이다.
--- 「포항 6·25전쟁 개관」 중에서 6·25전쟁의 초기 한반도 전역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할지도 모르는 긴박한 전황에서,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미군이 수행한 한반도 상륙작전은 작전명블루하트오퍼레이션 즉 포항상륙작전이 최초였다. 이 포항상륙작전은 이후 작전명 크로마이트 즉 인천상륙작전의 롤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포항상륙작전은 6·25전쟁 최초의 유엔군 상륙작전이며, 소규모의 상륙작전이었지만 계획·준비·실시 단계에서 완벽한 상륙작전의 표본이었다. 그리고 단시일 내에 완수한 기록적인 작전이었다. 조이(C. Turner Joy) 제독은 훗날 “제1기병사단의 포항상륙작전이 없었다면 부산 주변을 북한군에게 넘겨주는 위험을 초래하였을 것이다”라고 술회하였다. 그만큼 이 작전은 부산지역 방어와 인천상륙작전 등에 많은 영향을 깨쳤다. --- 「미군 포항상륙작전 (작전명:블루하트)」 중에서 LST선단은 순양함 헤레나호와 구축함 4척의 호송을 받으며 영일만을 우회하여 이날 10:30경 목적지인 구룡포에 무사히 상륙하여 다음 작전에 대비하게 되었다. 독석리 철수작전은 치밀한 계획 하에 빈틈없이 수행된 완벽한 작전이었다. 병력 승선계획 수립 당시 제3사단장은 경찰과 지방 공무원, 반공 투사들을 반드시 탑승시켜야 한다고 역설하고 이를 실행하였다. 제3사단장이 사단 병력을 철수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경찰과 민간인까지 승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국군이 작전할 때마다 늘 그들에게 많은 협조를 요청하고 도움을 받으면서도 위급할 때는 군인만 철수한다면 군에 대한 그들의 신뢰감을 저버리게 되어 결국 군관민의 화합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 「송라 독석리의 3사단 철수작전」 중에서 1950년 8월 11일부터 북한군이 포항을 점령하자 그동안 꼭꼭 숨어 있던 좌익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1948년 이후 좌익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경찰관·서북청년단원·대한청년단원 등으로부터 고통받아온 이들이 보복심에서 경찰관 등 우익인사에 대한 폭력과 살해를 감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역 사람들이 가장 두렵게 여긴 것은 ‘붉은 완장’을 찬 지역 빨갱이들이었다. 치안대 등의 명칭을 단 ‘바닥 빨갱이’들은 허리띠에다 손가락만한 빨간 헝겊을 감고 있었다. 몇 명씩 무리를 지어, 손에 몽둥이를 질질 끌고 다녔다. 이들은 지역 사람들의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북한군은 이 바닥 빨갱이들의 보복심을 활용하였다. 이들에게 감투를 씌워 주었는데, 원래 좌익사상에 투철하지 않던 사람들도 가담하여 북한군과 함께 행동했다. 지역 유지나 토호들은 이들의 뒤를 버티고 있는 북한군들이 너무 무서워 평상시 반말을 하던 종이나 나이 어린 청년들에게도 존댓말을 해야 했고, 함부로 대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반면, 국군이 다시 수복하였을 때는 그 반대의 경우가 생겼다. 수복 지역에 국군이 진입하면서 우익 측 피해자들이 북한군 치하에서 부역한 사람들에게 다시 보복을 가하였다.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 북한군 측에 협력할 것이라는 이유, 북한군 측에 협력했을 것이라는 이유로 많은 민간인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되는 사실도 있었다. --- 「전쟁의 상흔」 중에서 |
|
1. 군부대 단위의 영문명칭 번역
이 책을 집필하는 데 참고한 주요 영문 자료에 나오는 유엔군, 미군 등 군 부대단위의 편성은 다음과 같이 번역 사용하였다. Division은 사단, Regiment는 연대, Battalion은 대대, Company는 보병중대 또는 중대, Platoon은 소대, Squad는 분대, Task Force는 특수임무부대로 통일하였다. 2. 아군과 적군에 대한 표기 주요 전쟁사, 전쟁사료 등 참고문헌과 자료에서는 아군과 적군을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아군의 경우에는 ‘아’ 또는 ‘아군’, ‘한국군’, ‘국군’, ‘미군’, ‘유엔군’, ‘한미연합군’ 등 다양하다. 그중 미군, 유엔군 등과 관련하여서는 미군은 ‘미’, 유엔군은 ‘유엔군’으로 표기한 다음 부대 명칭(예: 사단, 중대 등)을, 한국군은 ‘국군’ 다음에 제XX사단 제YY대대 제ZZ연대 등으로 표기하였다. 한편 적군은 당시 자유진영의 해외 언론에서는 빨갱이(Reds) 등도 사용하고 있지만 국내 자료에서는 괴뢰군, 조선인민군(KPA; Korea People Army), 북한군, 인민군, 인민의용군, 적 또는 적군, 공산군 등으로 표기되고 있으나, 이 책에서는 모두 ‘북한군’으로, 중공군, 중국인민의용군(CPVA; Chinese People’s Volunteer Aramy), 중공군, 중국공산군, 중공의용군, 중국인민군 등은 모두 ‘중국군’으로 통일하여 표기하였다. 다만, 이 책의 제4부에 인용 소개하고 있는 진실규명 관련 판결문과 주요 참전용사의 증언록 등은 원문에 충실하여 적, 적군, 인민군, 괴뢰군 등의 용어를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혀둔다. 3. 지명에 대하여 이 책은 2020년 현재 포항시의 행정구역 전체에 해당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쟁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에는 포항시와 이를 둘러싼 영일군이 행정구역상 구분되어 있었다. 특히 6·25전쟁 기간 동안 한미 연합군의 작전지역명을 인식할 때는 유의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1927년 조선총독부가 측도하여 1945년까지 일본군이 사용하고 있던 군사지도를 미군이 그대로 접수,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해당 작전지도에는 일본 발음의 영문명으로 지명이 덧붙여 있어, 일례로 장진호 전투는 장진의 일본 발음인 쵸신(chosin)으로 표기되었다. 그래서 영문자료에서는 장진호는 찾을수 없으며 조신저수지전투(chosin reservoir battle)로 나온다. 포항도 당시 시(city)였음에도 불구하고 포항상륙작전의 영문설명에서는 포항동(pohang-dong)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최대한 현재의 행정구역에 맞추되, 포항시 전역에서의 전쟁사를 다루고 있기에 읍면 단위의 기계, 흥해 등은 상황에 따라 별도 읍, 면이라는 표기를 하지 않고 사용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