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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머리에 - 곁님들께
프롤로그 - 외눈, 두 눈, 그 너머의 눈 구미정의 눈 - 신학과 인문학, 그 경계에서 춤추다 ㆍ한 처음에 말이 있었다 ㆍ내 숨은 내가 쉬어야지 ㆍ낀 자리 ㆍ기억의 배반 - 메멘토 0416! ㆍ사랑이 답이다 - 옴란의 옆자리 ㆍ노래가 힘이다 ㆍ잃어버린 18년 ㆍ강철비는 무서워 ㆍ염소 할아버지 ㆍ‘처럼’이라는 말의 무게 ㆍ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운명 ㆍ그녀의 타락이 슬픈 이유 ㆍ무통문명을 애도함 = 다시 꿈을 비는 마음 ㆍ사과의 정석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ㆍ사순절 묵상 - 어느 날치기 재판의 사정 ㆍ낙타에게 배우는 지혜 ㆍ옥시, 성준이, 그리고 모세 ㆍ알파고와 포스트잇 ㆍ1데나리온의 경제학 = 예수의 복지 ㆍ음빙실(飮氷室) = 플뢰르 펠르랭 김종숙 ㆍ빗소리는 비의 소리가 아니다 ㆍ어떤 실종사건 = 예수사람, 숭실사람 ㆍ선한 사마리아인을 기다리며 ㆍ암살 그리고 회개 ㆍ킬리만자로의 표범 그리고 자고새 ㆍ이 몹쓸 기억력 ㆍ밥상을 부탁해 ㆍ가을 수업 박정신의 눈 - 초월의 역사학, 칸막이를 허물다 ㆍ칸막이를 허무는 기독교 ㆍ사랑방 교회 ㆍ플뢰르 펠르랭 김종숙 ㆍ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ㆍ한국교회여, 가시관을 쓰자 ㆍ가시관을 쓰신 예수·역사는 진보 하는가 ㆍ뒤틀린 해방의 뒤안길 ㆍ다시 맞섬의 예수를 본다 ㆍ나비야 나비야·다시 꿈을 비는 마음 ㆍ한글성서, 이 땅에서 소통의 혁명을 일으키다 ㆍ목사님들께 드리는 편지 ㆍ수치심의 힘 ㆍ구십구 대 일 ㆍ우리 이야기를 듣고 싶다 = 내 숨은 내가 쉬어야지 ㆍ세상이 교회에 바라는 것 ㆍ천박해진다는 것 ㆍ탐욕의 끝, 원전 = 밥상을 부탁해 ㆍ예수의 복지 = 1데나리온의 경제학 ㆍ티나에서 타타로 = 밥상을 부탁해 ㆍ케이팝 열풍을 바라보며 ㆍ절기행사의 두 얼굴 ㆍ괴물인가 친구인가 ㆍ태극소녀와 마르틴 루터 ㆍ박정신의 근본주의 해부 - 기독교 근본주의, 한국 지성사에 길을 묻다 - 역사의 반동, 종교근본주의 ㆍ예수사람, 숭실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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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아니, 머물 수가 없다. 외눈박이 홀로 세상을 보는 것보다는 두 외눈박이가 함께 서로 사랑하며 세상을 보는 것이 더 온전하게 세상을 보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오른쪽 눈과 왼쪽 눈으로 함께 세상을 보는 그 수준에 우리를 묶어 둘 수 없다. 그 두 눈 너머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인간의 두 눈, 그 눈으로 본 세상이 온전하고 완전하다고, 이상에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인식하는 수준에서 흡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존질서, 현존체제, 그래,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다보는 ‘두 눈 그 너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한다.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을 소망하는 이들은 ‘이제 여기’에만 머물 수 없고, ‘그 너머’ 의 눈에 잇대어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
--- 「박정신, 외눈, 두 눈, 그 너머의 눈」 중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숨을 쉰다. 사람만 숨을 쉬는 게 아니다. 꽃도, 나무도, 새도, 짐승도, 지구도, 별도, 우주도 저마다 숨쉬기 하는 생명이다. 숨을 ‘쉰다’는 건 멈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정작 숨을 멈추면, 생명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 이럴 때는 ‘숨졌다’고 표현한다. 꽃이 지다, 별이 지다, 할 때와 똑같이 사람도 진다. 천하가 한 리듬 안에서 율동한다. --- 「구미정, 내 숨은 내가 쉬어야지」 중에서 종교의 본령은 사랑이다. 사랑은 곁을 내주는 행위다. 곁을 내주는 일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따른다.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도 한다. 그래도 사랑하라! 마침내 사랑이 이긴다! 이 믿음이 참 종교다. 사랑 대신에 증오를 가르치는 종교는 그저 종교를 가장한 정치에 불과하다. 다시 옴란의 사진을 본다. 누가 이 아이에게 곁을 내줄까. 누가 이 아이를 사로잡고 있는 전쟁귀신을 내몰 수 있을까. 정치로는 못 한다. 오직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마지막 사랑이 답이다. 그 사랑이 꽃처럼 피어날 때 비로소 전쟁귀신이 물러날 것이다. 세상을 구하는 건 총이 아니라 꽃이다. --- 「구미정, 사랑이 답이다」 중에서 아, 그런지 얼마인가. 70년인가. 그때도 이러다가 우리끼리 싸우지 않았는가. 아, 그 전쟁 후 얼마인가. 그것도 70년이 가깝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이 땅에서 벌어진 역사를 읽을 때 이 질문은 더욱 간절하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이 땅에서 벌어진 역사가 과연 진보했는가. 아직도 외세가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이빨을 들이대고 있지 않은가. 이른바 이 땅의 권력자들이나 지식인들은 아직도 무리 지어 삿대질하며 싸우고 있지 않은가. 이 땅의 역사 현실이 이럴진대, 이 땅의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에 한순간이라도 넋을 잃을 수 있겠는가. 그래, 우리 다 함께 정신 차리고 묻자.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그리고 우리 다 함께 생각하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박정신, 역사는 진보하는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