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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봄날 어느 이른 아침
까까머리를 하고 해가 뜨는 학교 정문을 들어섰지 그림자는 나보다 앞서 있었지 그리고 이곳저곳 이리저리 이렇게 저렇게 허둥대기만 하는 동안에 세월은 흘러 반백이 된 여름날 어느 기우는 저녁 성근 머리로 해가 지는 학교 후문을 나서는데 그림자는 아직도 문 안에 있네 --- 「정년퇴직」중에서 좋은 선생도 못 된 채로 좋은 시인도 못 된 채로 그리고, 좋은 남편도 좋은 아버지도 좋은 형제도 좋은 친구며 좋은 동료며 시민도 못 된 채로 고개 숙인 걸음이 굽이 하나를 돌아섭니다. 남은 길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아직 날은 다 저물지 않았으므로 부끄럼이 조금이나마 옅어질 때까지 어쩌면 꽃 한 송이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곧은 걸음 애쓰는 다리에 힘이 남아 있기를. --- 본문 중에서 3학년 3반 교실 예전에 태극기가 걸려있던 자리에는 지금 걸그룹 트와이스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다 짧은 치마, 배꼽이 드러난 탱크톱, 뼘이 넘는 하이힐 마치 여러 명의 잔 다르크가 천상에서 하강하는 것처럼 또각또각 포스를 뿜어내며 걸어 나오고 있다 조용필이나 송창식 세대인 내가 보아도 그 사진은 태극기보다 더 시원하고 태극기보다 더 향기롭다, 그래서 태극기보다 더 자주 바라보게 된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그 사진을 우러러보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듯 다짐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저녁마다 그 사진을 우러러보며 가라앉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피곤에 젖은 시력을 회복하는 모양이다 - 기필코 대학에 가고야 말리라 - 축제엔 반드시 저들을 부르리라 오늘 수업 시간에, 문득 뒤통수가 근질거려 슬그머니 뒤돌아보니 굽 높은 발소리가 내 이마를 막 밟고 있다 아아, 오늘에야 비로소 알겠다 누군가 트와이스를 학통령이라고 했는데 엄숙함의 눈길로 내려다보던 태극기의 시대에서 열정의 눈길로 올려다보는 트와이스의 시대까지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넌 왜 주춤거리고만 있느냐고 아이들은 그 권위를 불러 나를 꾸짖고 있는 것이다 - 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냐 --- 「트와이스가 걸린 교실」중에서 시간마다 잠을 자는 학생은 절대로 깨우지 말 것 과제 미제출 학생에게 절대로 두 번 이상 종용하지 말 것 주의 산만한 학생에게 절대로 손가락을 뻗어 지적하지 말 것 핸드폰을 보고 있는 학생에게서 절대로 핸드폰 압수하지 말 것 화장실 간다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학생은 절대로 찾지 말 것 수행평가 미제출로 최저점 맞겠다는 학생은 절대로 설득하지 말 것 흡연이나 폭행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학생은 절대로 나무라지 말 것 단답형 문제 : 이 시대에 가장 적절한 학생과 교사와의 거리는? 정답 : 사회적 거리 유사 정답 : 생활적 거리 부분 점수 : 불가근불가원 정답이 정답인 이유 : 학생도 교사도 서로 상처 입거나 다치는 일 없이 한 해를 보낼 수 있기 때문 정답의 근거 :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사회적 거리 두기」중에서 아이들에게 선호하는 직업을 묻는다 간호사가 제일 많고 물리치료사 유치원교사 치위생사 등이 뒤를 따른다 간혹 스튜어디스와 공무원을 말하는 아이도 있다 나는 갑자기 서글퍼진다 저들은 왜 의사라고 말하지 않을까 대기업 임원이나 CEO라고 혹은 유엔본부에서 근무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동시통역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 중의 하나는 성적 때문에 꿈의 키를 낮추는 일이다 ---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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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넋두리 같은 것을 굳이 묶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세상에 내놓고 나면 또 어느 구석으로든 숨고 싶어질 것이기에. 그럼에도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어리석음은 생의 한 굽이를 돌아서며 비워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탓. 해량을.
1부에서 4부까지, 학교와 학생과 교사에 대한 솔직한 느낌을 겪은 바를 바탕으로 적어보려 했다. 그러나 이미 고백한 바와 같이 내 눈이 병들어 있어서 학교 현장의 어두운 구석이 먼저 눈에 띄는 것을 끝내 감추지 못했고, 게다가 사물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우매함으로 인해 그 민낯을 제대로 그려내지도 못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착하고, 자기의 처지에서 물리적 정서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때로 학생들은 어떤 교사보다도 영악하고, 나아가 무서울 때도 있다. 그런 날은 흔히 직(職)을 건 상처를 입는다. 살아가면서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아흔아홉 가지의 좋은 일보다도 단 한 가지의 슬픈 일이라는 말을 긍정한다면, 이 학교 현장의 이야기들은, 이것들도 대부분 순화하려고 애쓴 것들이지만,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 흘러 다니는 학생에 관한 글들을 읽어보면 일종의 터부 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음을 느낀다. 미래의 기둥이 될 학생들의 일탈을 비판하는 글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설혹 그런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그 끝부분에는 공식처럼 이들이 아픔과 방황을 겪고 난 후에 더 큰 성장을 할 것이라는, 말 그대로 철석같은 믿음을 공식처럼 달아놓는다. 이 묵시의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혹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 구조 속에 교사들의 고민이 있다. 사실 그런 일부 학생들의 민낯을, 살짝, 건드려보고 싶었다. 5부에는 살아오면서 가슴에 그림자를 남기는 작은 이야기 몇을 나름 기록해 보았다. 그러나 한 길 물속도 헤아리지 못하는 얕은 사고, 그리고 머리도 꼬리도 어지러운 둔한 연필로 인해 소재가 되는 것들의 속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어리석음을 용서하면서 일독(一讀)해 준다면, 더 바람이 없겠다. 내가 걸어가는 다음 굽이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궁금한 삶을 살고 싶다. ─ 윤장규(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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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규 시인의 시를 처음 대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떤 장면에서는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다. 어렵게 학교에 다녔던 학창 시절을 보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나 역시 문제 학생이었으므로. 앞서 도종환 시인이 밝혔듯이 읽고 난 후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게 한 시들이 많았다. 윤 시인이 등단한 1997년 제1회 동양일보 신인상의 심사위원이 유종호 문학평론가와 신경림 시인이었다는 데 한 번 더 놀랐다. 그분들은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의 단골 심사위원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윤 시인한테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학생과 연관된 글에 으레 따르는 철석같은 믿음을 공식처럼 달아놓는 묵시의 구조를 깨트린 데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참으로 오랜만에 좋은 시를 만나 기쁘다. - 박관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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