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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하는 연민과 사랑 같은 것
1 날마다 상상하고 질문한다는 것 도끔밥 조깔 치킨빵―우리 집 밥상 이야기 내 옷이 어때서요―가쿠타 미츠요의 옷 입는 방법 여행 가방 속의 ‘나’―길에 대한 상상과 새해 인사법 사기당한 날의 노트―크리스토퍼 울의 [무제] 이제 돌아가는 건 글렀지만―삶을 파헤치는 정다운의 방식 2 사랑의 다른 이름들 베란다의 기적―시인농부와「물병자리 아래서」 붓 하나면 나는 만족해요―모드 루이스의 그림들 다정하고 따뜻한 미래―정세랑이 발견한 사랑 빌어먹을 딸들―[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세 딸들] 3 출렁거리는 여자들 창조하는 눈은 아름답다―낸 골딘―비비안 마이어―신디 셔먼의 셀프 포트레이트 내 몸이 어때서요―김언희와 한나 윌키 울어도 괜찮습니다―이주란과 눈물들 밤의 이끌림―「죽은 자의 휴일」과 산 자의 손길 4 다 같이 잘살면 안 되나요 가난은 공기와 같아서―「손톱」과 [기생충], [어느 가족] 너무 늦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것들―도나 해러웨이와 김혜순 그를 사랑하는 나도 괴물인가요―「모조 지구 혁명기」와 [셰이프 오브 워터]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d」와 ‘사탕 더미’ 우리의 뒷모습―신해욱과 요정들 5 미치지 않도록, 책 돋보기를 들어야 볼 수 있어요―브론테 자매의 작은 책들 ‘스푼’이 될 책―「코딱지 왕」의 미래 사랑스러운 곰팡이들―베아트릭스 포터의 정원 시싱허스트 정원의 ‘벽’―비타 색빌웨스트가 정원을 가꾸는 이유 |
Lee Geun-hwa ,李謹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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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도 좋고, 가정식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빈 접시다. 빈 접시를 보며 취할 수 있는 나른한 휴식의 자세가 좋고, 고민은 잠깐 미뤄두었다가 적절한 식사 후에 다시 생각해보면 된다. 입가심으로 먹는 차가운 맥주나 과일 한 의 풍요가 감사하다.
--- p.29 중년에 들어서면 자신이 인생에 사기당했음을 덜컥 알게 되는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공허함이 뒤통수를 가격하는 때를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안 아픈 척 고상하고 우아하게 버텨야 하는 것이겠지. 담요 속의 안락한 고양이도 아니고 자유롭고 배고픈 길고양이도 아닌 것. 굳이 비유하자면 더러운 가죽 가방 속에 든 힘없는 고양이랄까. 그런데 그 가방은 강물 속에 빠져 있다. 곧 목까지 물이 차오를 것이고. 손끝에만 닿아도 싫은 물이 자신의 온몸을 축축하게 적시기 시작할 것이다. 이야옹 마지막 울음은 물고기에게 나 들릴까. --- p.53 인정하기 싫어도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뼈아프게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은 태어났나 보다. 아이들의 성장과 뜬금없는 질문, 답 없음은 ‘나’의 거대한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을, 어쩌면 삶의 한가운데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분열과 망상과 헛소리로서 나의 글쓰기는 어딘가를 헤매고, 무엇을 더듬고 있을 텐데 도대체 그게 뭐란 말인가. --- p.57 식물은 말이 없어 좋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고요하다. 식물의 내부에는 음악이 흐르는 것이 아닐까. 내게 필요한 건 고요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 p.73 그녀에게 세 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아르헤리치의 삶과 정신세계가 더 궁금해졌다. 아버지가 다른 딸들이 어머니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성장해왔을까. 마르타와 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사랑에 관해, 예술가의 나이 듦에 관해, 그리고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새롭게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되었다. --- p.103 (낸 골딘의) 노골적이고 거친 사진들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계층과 성, 제도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누릴 자유가 인간에게 있지 않냐는 질문이 그녀의 사진에는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 p.123 눈으로 볼 수 없는 나의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여성 사진가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기존의 관념에 저항하며 스스로를 바라보고, 관찰하고, 창조하는 눈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때론 시선 그 자체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는 사진들을 보며 편향되고 왜곡된 시선에 대해 반성할 수 있었다. --- p.132~133 주인공들은 기호나 취향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고,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데 애쓰지 않는다. 화가 나도 그런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확실히 주체적인 모습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내세울 수 있는 자리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저마다 자기 나름의 성장 환경과 교육 배경, 삶의 방식이 있는데 이를 한 가지 잣대로 재단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얼핏 수동적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내면을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풀어낸 것은 작가의 주된 관심을 드러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그 사건’은 안정되고 쾌적하게 살지 못하는 여성들을 관통한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적 고통은 공평하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약자, 소수자 들을 아우르려는 서사적 노력이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 p.152~153 ‘나’는 ‘너’와 함께 존재하며 ‘너’의 고통과 피는 ‘나’의 것이기도 하여, ‘우리’의 목소리는 겹치게 된다. 기울기와 스며듦을 통해 목소리를 생산하고 인칭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야말로 시의 위의와 가치 중에 하나일 것이다. --- p.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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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살아간 여성들의 삶이 나를 들여다보게 할 때
인간다운 삶을 상상하는 통로의 글쓰기 『아주 작은 것들이 말할 때』의 1부 「날마다 상상하고 질문한다는 것」은 먹고, 입고, 호주머니를 뒤지는 등 생활의 감각이 선연한 글로 시작된다. 시인은 족발을 먹으며 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는 딸들 앞에서 “몸 없는 발들아, 미안하다”라며 고깃덩이 이전의 동물의 몸을 떠올리고, 옷을 고르면서는 “옷이란, 우리에게 없는 세계로 가는 통로”이자 “나를 짓는 환상”임을 간파한다. 생활인으로 분투하는 와중에도 낯선 눈으로 삶을 더듬는 그의 조용한 열정은 지속된다. 평화로운 가족들 가운데 “조용히 해 미친 양아”라고 혼잣말로 나직이 중얼거리는 아내/엄마의 자리를 나는 안다. 가장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의심과 회의가 고개를 들고, 침묵과 고요의 시간 위에 불안과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삶 말이다. 주인공으로 살 수 없는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살지 못하는 나를, 평화롭고 안정되게 꾸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_p.64) 이러한 실존적 질문과 함께 사회적 존재로서 탐구는 2부「사랑의 다른 이름들」과 4부「다같이 잘살면 안 되나요」에서 주로 다뤄진다. 이는 시인이 애정 어린 눈으로 살펴온 여성 예술가들-김혜순, 김언희, 황정은, 정세랑, 권여선, 수전 손택, 베아트릭스 포터 등-의 삶, 작품과 함께 펼쳐지는데, 그 세계는 불평등?환경문제?소수자 차별 등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꿈꾸도록 우리를 이끈다. 이를테면 김혜순의 시「피어라, 돼지」에 나타난 종을 넘나드는 태도는 동물뿐 아니라 수많은 약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윤리로 확장되고, 정세랑의 소설「모조 지구 혁명기」는 자연과 인공, 지구인과 외계인 등 고정된 정체성을 벗어난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시인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낸 여성들의 활동에 천착하는 것은 그 안에서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자유의 정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의 상흔을 그대로 드러낸 낸 골딘의 사진, 어떤 포장도 없이 구멍으로서 몸을 연상케 하는 한나 윌키의 퍼포먼스는 기존 젠더 질서를 “삐딱하고 불순하게” 바라본다. 때로 기괴하고 추해 보이는 그 작품들은 여성의 몸이 처한 현실의 속악함을 들임댐으로써 아름다움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틈을 발견하고, 실천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읽고 쓰는 일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삐딱하고 불순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글쓰기를 제안해본다.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통로로서 말이다. (_p.99) 시인의 어린 날을 비추는 아이들과의 일상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하는 연민과 사랑 같은 것 시인의 집에는 아이들 넷이 있다. 엄마인 시인은 원고 쓸 시간을 벌기 위해 자주 아이들에게 연필을 쥐여주고 그림을 그리게 한다. 흥미롭게도 현실 속 엄마는 아이들 단속에 바쁜데, 그림 속 엄마는 활짝 웃고 있거나, 큰 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모두를 보듬고 있다.(본문 109쪽 그림 참조) 여기에는 실제보다는 행복한 가족을 향한 아이들의 바람이 담겼을 테지만, 그 그림들은 시인으로 하여금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하는 연민과 사랑”에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시인의 통찰이 아이들의 그림에 바탕을 둔 셈인데, 이 점이 책의 본문에 아이들의 그림이 글과 함께 자리한 이유이기도 하다. 산책길에서 꽃과 나무를 꺾어 오는 아이들의 부산함은 손톱 밑이 까매지도록 흙을 파던 시인의 어린 시절을 되비추고, 때로 버려진 화초나 곰팡이처럼 범상한 것들도 사랑스럽게 관찰하는 아이들의 시선은 시인의 눈 못지않다. 어리고 약한 존재들을 향한 나직한 시선과 느긋한 마음속에는 어쩌지 못하는 감동 같은 것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려는 연민의 감정이 없다면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_p.178)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 오장환문학상 등 여러 차례의 수상 이력만큼이나 단단한 시 세계를 일구어온 작가는 하루하루 사소한 것에서 ‘시적인 것’을 길어 올려 묵묵히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와 세계에 다른 이름을 붙여가는 그 고요한 노동은 시시하고도 허약한 삶마저도 사랑으로 이끌고야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