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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은주(ducia@yes24.com)
어린 시절, 이런 숲의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쩐 일인지 혼자 무리에서 벗어나, 숲의 어느 빈터에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가만히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저 멀리 사람들이 웅얼거리는 목소리, 뽀로롱~ 방울새가 나뭇가지를 스치고 날아가는 소리... 시원한 바람은 진한 송진 냄새를 후욱, 실어다 주고, 따뜻한 봄볕을 가득 목덜미에 받으며 나는, 어느덧 현실인지 이상인지 알 수 없는 세계 한가운데에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하루종일 정신없이, 무슨 일을 했나 모를 정도로 바쁜 일상이, 그렇게 계속 계속 계속...되던 어느 날의 늦은 퇴근 길. 스쳐 지나가는 봄내음이 저를 순간적으로 그 시간이 멈추었던 그 시절로 훌쩍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 곳이 얼마나 그립던지요. 어느 봄, 숲 속으로 놀러나온 한 여자아이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마리 홀 에츠의 대표작『나랑 같이 놀자』는 그 시절의 느낌을 그대로 화폭에 담은 그림책입니다. 해가 뜨자 풀잎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나는 들판으로 놀러 나갔죠. 메뚜기 한 마리가 들풀 이파리에 붙어 있었습니다. 아침밥으로 이파리를 먹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말했죠. "메뚜기야, 나하고 놀래?" 내가 메뚜기를 붙잡으려고 하자, 메뚜기는 톡톡 튀어 달아나 버렸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뛰기를 멈추더니 연못가에 앉았습니다. 개구리는 모기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것 같았어요. 내가 말을 건넸습니다. "개구리야, 나하고 놀자." 내가 개구리를 붙잡으려고 하자, 개구리도 펄쩍 뛰어 도망가고 말았죠. (...) 첫장면. 여자아이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숲을 향해 걸어옵니다. 아이는 혼자 들판으로 놀러를 나왔나 봅니다. 메뚜기를 발견한 아이는 '나하고 놀래?'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메뚜기는 톡톡 튀어 달아나 버리지요. 개구리에게도 다가가고, 다람쥐에게도 달려가 보지만, 모두들 아이를 피해 도망을 가고 말아요. 아이는 아무도, 아무도, 놀아주려 하지 않자 민들레 줄기를 뽑아, 입김으로 '후우`'하고 씨를 날려보내지요. 그리곤 연못가에서 샐쭉하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아이를 피해 달아났던 동물들이 하나 둘, 소녀 곁으로 다가옵니다. 메뚜기도, 개구리도, 그리고 느림보 거북도 통나무 위로 기어 올라왔지요. 그리곤 마침내 아기사슴 한마리가 덤불 속에 살며시 고개를 내밀더니, 천천히 다가와 아이의 뺨을 핥았습니다. '나는 숨을 죽였습니다. 아기 사슴은 천천히 다가왔죠. 어찌나 바짝 다가붙던지 쓰다듬어 주어도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아기 사슴이 곁에 와서 내 뺨을 핥았죠. 아이, 좋아라. 정말 행복해! 모두들, 모두들, 나하고 놀아 주니까.(p.27~31)' ![]() 애써 손 내밀어 다가가 보지만 모두에게 거절당했던 아이가, 숲과 함께 동화되면서 저절로 동물들과 친구가 된다는 아주 예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고독과 정막감이라는, 어찌 보면 아이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아련한 정서가 그림책 가득 묻어납니다. 작가는 노란 밑바탕에 회색 콘테로 지극히 제한된 색상만으로도, 따스한 봄볕과 아이의 풍요로운 정서를 밀도있게 그려냈습니다. 두고 두고 보아도 물리지 않는,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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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자 풀잎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나는 들판으로 놀러나갔죠. 메뚜기 한 마리가 들풀 이파리에 붙어 있었습니다. 아침밥으로 이파리를 먹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말했죠. '메뚜기야, 나하고 놀래?' 내가 메뚜기를 붙잡으려고 하자, 메두기는 톡톡 튀어 달아나 버렸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뛰기를 멈추더니 연못가에 앉았습니다. 개구리는 모기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것 같았어요. 내가 말을 건넸습니다. '개구리야, 나하고 놀자.' 내가 개구리를 붙잡으려고 하자, 개구리도 펄쩍 뛰어 도망가고 말았죠. 거북 한 마리가 통나무 귀퉁이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거북은 꼼짝 않고 햇볕을 쬐고 있었죠. 내가 말했습니다. '거북아, 나하고 놀자.' 거북은 내 손이 제 몸에 닿기도 전에 물 속으로 풍덩 들어가 버렸습니다. 다람쥐 한 마리가 떡갈나무 아래 있었죠. 날카롭게 생긴 작은 이빨로 도토리 껍질을 벗기고 있었습니다. 내가 말했죠. '다람쥐야, 나하고 놀자.' 하지만 내가 가까이 달려가자, 다람쥐는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어요. --- p.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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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무도 나랑 놀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민들레 줄기를 뽑아 입김으로 후우 하고 씨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연못가로 가서 바위 위에 앉았어요. 벌레 한 마리가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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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한 마리가 들풀 이파리에 붙어 있었습니다. 아침밥으로 이파리를 먹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말했죠. '메뚜기야, 나하고 놀래?' 내가 메뚜기를 붙잡으려고 하자, 메뚜기는 톡톡 튀어 달아나 버렸습니다. 나는 줄곧 잠자코 앉아 있었습니다. (이젠, 아무도 겁을 먹고 달아나지 않았죠.) 아기 사슴 한 마리가 덤불 속에 숨어 있다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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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56년에 국제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고, 다섯 번이나 칼데콧 상 차점작에 올랐다. 어린이 그림책답지 않게 지나치리만큼 수수하지만, 작가가 보여 주는 따뜻하고 고즈넉한 세계에 빠지면 몇 번이고 다시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나는 그림책이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들판을 배경으로 한 노란 그림이 커다란 변화 없이 펼쳐지지만, 책장을 엎고 나면 어느 새 갓난아기의 가느다란 솜털이 살짝 볼을 간지럽히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에츠에게 숲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떼놓을 수 없는 각별한 공간이다. 그녀는 어릴 때 집 근처의 노스우드 숲에서 혼자서 뛰어놀곤 했다. 주근깨투성이 오빠들의 심술궂은 장난을 피해 에츠가 곧잘 숨어드는 은신처가 바로 숲이다. 이 책에 나오는 들판은 바로 그 옛날에 에츠가 뛰놀았던 노스우드 숲이다. 책장을 열면 쪼끄만 여자애가 아장대며 혼자서 들판으로 놀러 나온다. 하얀 태양이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꼬마를 뒤쫓아와 나무 뒤에 숨어서 엿본다. 이 태양은 아이를 놀이터에 혼자 내보내고 뒤따라다니며 지켜보는 어느 어른의 얼굴 같아서, 혼자 노는 어린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 보는 독자에게 안도감을 준다. 이 책은 쪼끄만 여자애가 들판에서 동물 친구를 찾아 함께 놀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지극히 사실적인 수법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어린이의 즐거운 놀이보다는 어린이의 내면 세계를 묘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크림빛 여백과 구분된 노란색 공간은 현실 세계와 확연하게 금이 그어진 내면 세계이다. 누구랑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외톨이 꼬마의 내면세계는, 제아무리 햇볕이 담뿍 내리쬐도 어쩔 수 없이 애잔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쓸쓸함은 어른으로 상징되는 태양으로 풀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꼬마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눈이 아니라 나와 마음맞춰 즐겁게 뛰놀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다. 외톨이 꼬마가 동물 친구들을 얻고 나서 '아이 좋아라!'하고 소리치며 강렬한 햇빛 아래서 춤추는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가슴 졸였던 마음이 눈녹듯이 풀리고 빛나는 환희를 체험하게 해 준다. 에츠는 어린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극히 제한된 색상만을 사용했다. 노란 밑바탕에 회색 콘테로 지극히 필요한 형태만 그린 나무나 풀, 그리고 이렇다 할 꾸밈이 전혀 없는 그림에서도 따스한 봄볕이 느껴지고, 보드라운 아기 솜털이 느껴질 것만 같다. 에츠는 극도로 색을 아끼는 작가로, "흑백만큼 풍요로운 색은 없다"는 주장을 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흑백으로만 된 그림이 많고, 색깔이 있더라도 서너 가지밖에 없다. 에츠는 색깔에 무척 까다로워 직접 인쇄 과정을 감독해 가면서까지 자기가 원하는 색깔을 찾아 내어 그림책을 완성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