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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시 「야생의 기억」 첫 발자국 : 저 낮은 곳에 새들이 날고 있다 시 「내가 잡은 메뚜기를 날려 보낸 여자에게」 풍문 : 무엇이 세계인가 시 「겨울 막북」 영감 : 바람의 사전 시 「나그네 새」 순례 : 자연 속에 내장된 상형문자들을 찾아서 시 「차바퀴에 부서지는 별빛」 창작노트 : 『조드』를 쓰기까지 시 「팔백 개의 고원」 좌담 : 『조드』가 남긴 것 시 「자무카의 노래」 에필로그 시 「내 머리통 속에서」 |
Kim Hyeong-soo,金炯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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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존재 어딘가에 자신이 아직 닿지 못한 장소를 남겨두고 있다. 그 미지의 장소에는 한 번도 실체를 본 적이 없는 각자의 영혼이 살며 ‘영감’이라 부름직한, 인간에게 신비한 능력을 주는 정신적 유성流星이 흘러 다닌다. 여행이란 어쩌면 그곳을 찾아가는 일인지 모른다.
--- p.8 살갗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고 무언가 수런대는 자연의 말뜻을 전해 듣지는 못해도 그것의 은유를 알 것만 같았다. 풀꽃 위를 떠다니는 바람의 음악도, 땅바닥을 더듬어 별빛을 읽어내는 벌레의 촉수에 사는 시도, 한 자리에서 무한히 피고 지고 나고 죽고를 반복하는 생물의 저 기나긴 여정에 깃들어 있는 존재의 신화도. --- p.24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하게 되어 있다. 물이 바뀌면 배탈이 나고 음식이 달라지면 체형이 변한다. 그리고 기존 정체성은 몸이나 정신에서 그 변화의 양이 늘어난 만큼 농도가 묽어지며 묽어진 만큼의 보충을 필요로 한다. 가장 정직한 정체성은 인문학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것이다. --- p.48 초원을 여행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은 대지의 아름다움이다. 드높은 하늘, 무한한 지평선,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녹아내린 산들, 고원의 대지는 각이 서 있지 않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충돌하는 빛의 춤은 언제나 유혹적이다. 모든 것이 인간화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은 인간이 미지와 싸우던 시절의 건강을 돌려준다. 인간의 일부가 21세기에도 여전히 대지(생태계)의 일원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감동의 증표들이다. --- p.113 5시 40분. 바양올솜에 닿았다. 소재지가 아직 보이지 않는 등성이에서 차량 두 대가 기다리다가 여러 사람이 마중을 나와서 우리를 반겼다. 악수가 끝나자 한 분이 대표로 나서서 설명을 시작하는데 『몽골비사』에 대한 해설을 복사한 유인물을 전한 후 『몽골비사』 113조를 짚으며 조목조목 읽어 내려갔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테무진이 타타르와 전투했던 장소였다. --- p.131 그날은 아침부터 언어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여진과 거란, 또 한글의 특수성이 거론되고 유난히 몽골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제주도 사투리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를 이루었다. 가령 우리가 찾아갈 보배 산을‘에르덴오올’이라 하는데 제주도의 ‘오름’이 몽골어 차용이며 몽골어로 산 앞은 ‘어루’ 산 뒤편은 ‘아루’라 한다니 나는 속으로 ‘그럼 어루만지다의 어루도 그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글의 원리인 천지인의 탁월한 착상에 소미야바타르 선생님은 경탄했는데 그것은 사실 내가 소설의 바탕에 두고자 하는 몽골 초원의 유목민 사상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유목민들은 술을 마실 때 반드시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로 고수레를 하는데 그것은 칭기스칸의 행동 양식에도 언제나 전일적으로 체계화되어서 드러난다. --- p.144 암각화의 언어들은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 몽골의 암각화는 조형 언어의 방법적 측면에서 매우 각별한 느낌을 준다. 피사체의 형상은 대개 선으로 되어 있는데 점이나 면의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회화가 언제부터 면을 그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고대 기법의 하나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에서 오는 각별한 느낌을 상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초원을 여행하다가 해 질 녘에 등성이를 바라보는 인상 깊은 기억을 되돌려놓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 p.160 |
역사가 기록으로부터 배제한 잃어버린 제국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던 10년의 이야기.
대지의 한복판 몽골에서 존재의 진실을 듣고 우리의 삶과 생을 깊이 들여다본다. 세기의 정복자 칭기스칸과 몽골 제국의 대서사는 『몽골비사』가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 문명에 의해 야만적이라 폄하된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400년 동안 확장한 만큼의 영토를 25년 만에 차지한 칭기스칸의 역사는 유라시아 대륙의 팍스 몽골리카를 이룩함으로써 동서양 문화, 종교, 경제의 시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잃어버린 기록을 복원해 장엄한 서사로 만든 것이 바로 김형수 장편소설 『조드-가난한 성자들』이다. 이 책 『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은 저자가 『조드-가난한 성자들』을 쓰기까지 10년 넘게 몽골 고원 구석구석을 직접 답사했던 여정과 기록을 담은 에세이다. 『조드-가난한 성자들』을 역대 칭기스칸 소설 중 가장 살아 숨 쉬는 작품이라는 평에 버금가게 이 에세이에도 대륙의 토테미즘과 몽골인의 피안이 녹아 특별한 깊이가 느껴진다. 고요와 적막 속에서 귀는 언제나 비어 있고 눈은 항시 지평선으로 열려 있는 몽골인의 생태. 막막무제의 초원에서 각자 자신을 엄격하게 규율하고 다스리는 그들의 정신. 저자는 이런 몽골에서 존재적 본질, ‘나’라는 존재를 조각한 자연의 진실을 통해 우리가 사는 지금의 모습을 빗대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들여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