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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를 쓰는 밤 |오보
1장 첫 번째 기록 |내 최고의 스펙 2장 두 번째 기록|어떤 하루 3장 세 번째 기록 |삽질의 기억 4장 네 번째 기록 |인연 또는 악연 5장 다섯 번째 기록 | 경력과 경험 사이 6장 여섯 번째 기록 | 일의 변곡점 7장 일곱 번째 기록 | 내 일의 키워드 8장 여덟 번째 기록|나의 연대기 일하는 사람|루후나 나를 구성해온 일들의 기록|줌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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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제가 일했던 곳이 어린이집이에요. 중증장애 어린이들이 시설에서 나와 동네에서 엄마랑 같이 지내게 해주는 어린이집이었는데 제가 맡은 아이가 찬호였어요. 그 아이는 말도 잘 못 알아듣고 뭐든 서툰데 딱 하나, 제가 이름을 부르면 “네~.”하고 대답을 해요. 그 아이에게 3년 동안 “네.” 하나만 가르쳤어요. 언제나 너무 예쁜 목소리로 대답해요. 언제 어디서나 청명한 목소리로. 그것 때문에 거기서 3년을 버텼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그 아이의 “네.” 하는 소리가 잊히질 않아요.
--- p.128 이렇게 세상이 단순했는데 그 이후의 삶은 단순하지 않았어요. 너무 복잡하고 뭔가 중층적으로 너무 많은 게 내 안에 있고 항상 정리가 안 되는 것 같고요. 넓은 세상에 내가 무방비 상태로 펼쳐져 있는 느낌? 그래서 위험한 상황에 늘 노출된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순간순간 기쁨들도 많이 있었지만 작은 점 같은 만족감은 그때 이후로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 p.132 이걸 정리하면서 든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생활적인 부분에서 좀 힘든 게 있어서 그 고민을 안고 여기 왔어요. 그런데 어제오늘 다시 ‘인연’으로 정리를 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활적인 것은 진짜 내 고민이 아니었구나.’ 갑자기 눈물이…제 마음의 병들어 있던 부분을 치유하고, 좀 건강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 --- p.152 하루는 소풍을 갔는데, 머리가 이미 허연, 육십 된 지적장애 할아버지의 노모께서 소풍 도시락을 싸오셨어요. 아들 소풍이라고 팔십 노모가 도시락을 싸와서 공원 잔디밭에 앉아 같이 먹고 있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봤어요. 그 장면이 생각나요.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봄이었어요. --- p.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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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일 기록 연대기
이 책은 우리가 하는 일, 여자와 일에 관한 질문과 대답들을 어떻게 풀어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서 시작되었다. 여성주의 문화기획 집단 ‘줌마네’는 약 3년 전부터 ‘나를 구성해온 일들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대안 이력서 쓰기, 사회적 스펙이 아닌 경험과 개인의 서사에 중심을 둔 연대기 쓰기, 자신의 스토리텔링, 자기 서사 만들기 등의 캠프와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2017년 홍성에서 열린 캠프를 시작으로 사오십 대, 이삼십 대 여성들과 매년 소규모 워크숍을 진행하였고 지역 여성단체들, 모임들과 함께 광주, 정선, 익산, 거창에서 대안 이력서 쓰기 작업을 하였다. 다양한 일 경험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작업해왔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모인 질문과 답변들을 기록한 책이다. 사소한 일은 사소하지 않다 당신 안에 숨어 있던 이야기를 꺼내는 질문, 당신 안에 잠들어 있던 가능성을 깨우는 질문 이 책은 달라지고 있는 일자리 환경과 비대면 n잡러 시대에 일의 새로운 의미를 묻고, 경력이 되지 못한 경험들에서 맥락을 찾고, 그 일들에 이름을 붙여 사회적 쓸모를 발견해 가는 자신의 스토리텔링 워크북이다. 우리 이력서의 한 줄과 한 줄 사이에는 무수한 행간이 존재한다. 때론 경력 한 줄로 만들지 못한 삽질의 시간이기도 하고 여자들의 ‘임금화’되지 못한 그림자 노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간들도 경력 한 줄만큼 우리를 만들어온 일이자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노동이다. 이 책은 그 노동을 재발견하고 이름 붙여 사회적 쓸모를 찾아가기 위한 작은 프로젝트이다. 우리들의 일하는 마음 두 살 된 아이를 데리고 우유 값 수금을 갔던 어느 겨울 아침, 주연 배우 대신 동선 체크를 하고 세트 뒤에 앉아 쬐던 따뜻한 햇살, 결혼을 앞두고 처음으로 아버지와 김발 작업을 갔던 새벽 밤바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버스 뒤에서 먹던 모카맛 초콜릿, 일을 그만두고 조카를 돌보던 시간의 위로, 땀 냄새를 씻어내던 지하철 화장실 세면대, 타국에서 식당 일을 마치고 숙소에서 마시던 맥주 한 잔, 막막한 시절에 사무실 아래층 분식점에서 먹던 라면, 도서관 구석에서 몰래 숨어 보던 박완서의 소설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나의 그 어떤 하루에 대한 기억이자 타인의 어떤 하루에 대한 공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