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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8
입문 시리즈에 대해 11 역자의 말 13 서론 17 1.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의 인본주의적 뿌리 25 1.1 인간상과 교육 26 1.2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30 1.3 육체와 정신 34 1.4 해방사상의 요약 38 1부 트랜스휴머니즘 40 2. 트랜스휴머니즘의 계보학과 첫 번째 주창자 45 3. 트랜스휴머니즘의 주제와 동기 53 3.1 극단적 생명연장과 불멸 54 3.2 냉동보존 60 3.3 인간 향상 62 3.4 트랜스휴먼과 사이보그 69 3.5 가상성과 우주공간 73 4. 트랜스휴머니즘의 입장과 이론 77 4.1 생명확장론 79 4.2 사회정치적 트랜스휴머니즘 82 4.3 탄소 기반 트랜스휴머니즘과 87 규소 기반 트랜스휴머니즘 5. 트랜스휴머니즘 사유의 비판 91 5.1 인간의 통제-과잉단순화 92 5.2 트랜스휴먼의 통제-수동화 96 5.3 포스트휴먼의 통제-범주오류 100 2부 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 104 6. 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의 계보학과 첫 번째 주창자 109 7. 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주제와 동기 115 7.1 마음 업로딩과 가상적 불멸 116 7.2 특이점 123 7.3 인공적 초지능 129 8. 특이점주의-기술적 휴머니즘의 중심흐름 137 9. 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사유 비판 141 9.1 육체의 통제-소외 142 9.2 정신의 통제-환원 146 3부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150 10.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의 계보학, 선행자와 첫 번째 대변자 155 11.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주제와 동기 161 11.1 인본주의와의 대결 162 11.2 인간중심주의의 극복 167 11.3 본질주의 및 (철학적) 인간학에 대한 문제제기 172 11.4 지식문화의 비판 176 1.5 요구적 태도 또는 윤리적이고 사회정치적 함의 182 12. 포스트휴머니즘 사유 내에서 인접한 입장들 189 12.1 반동적 포스트휴머니즘 190 12.2 분석적 포스트휴머니즘 194 12.3 포스트휴머니즘적 인본주의 196 12.4 사변적 포스트휴머니즘 198 12.5 메타휴머니즘 199 13.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사유 비판 203 결론적인 고찰-“‘인간’에 대한 향수는 없다” 207 역자 해제 211 미주 228 참고문헌 231 색인 263 |
Janina L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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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관점은 언제나 인간 자신만을 향해 있다. 이 점에서 철학 일반은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인간학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묻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이 물음은 항상 다음 물음과 연결된다. 인간은 인간 아닌 것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인간학은 언제나 철학의 중심 물음이었다. 혹독한 자연과 맞설 때 인간은 애써 자연, 특히 동물과 자기 자신의 차이점을 드러내면서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했다. 신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엔 신과 자신의 차이점에 만족해야만 했다. 신이 있어야 인간은 인간다운 존재일 수 있었다. 하지만 신이 세상의 주관자였으나 세상에는 온갖 폭력이 가득했다. 그래서 인간은 악한 세상을 창조한 선한 신을 변호하려 했다. 대신 인간은 우주의 중심자리를 꿰찼고 신이 이를 보증했다. 르네상스 이후 자연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되면서 지구가 한갓 우주 속 먼지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의 자리를 빼앗긴 이후 인간은 우주의 중심자리를 상실해버렸다. 인간은 더 이상 신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서기에 나서야 했다. 곧 ‘나는 생각한다’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또 다른 중심을 발견했다. 이는 유명한 역사철학으로 이어져 인간을 세계의 주관자로 드높였다. 하지만 인간이 세계의 주관자로 되자마자 세상의 모든 폭력은 이제 더 이상 신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의 몫이 되었다. 인간의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과거에 신을 변호했던 것처럼 인간을 변호하는 시도가 있으며, 이 관점은 여전히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 대표 주자 중 하나가 실존주의로, 이는 전통적인 인간 개념을 비판하고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오직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세상에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인간을 이성이 아니라 탈이성적 존재로 규정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성의 해체 시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을 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 하지만 인간학은 근본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인간에 대한 이해만으로는 세상에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더 이상 세상의 주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의 이면에는 바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놓여 있다. 19세기부터 철학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산업혁명 이후에야 이 발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초기 기술철학은 여전히 인간학의 관점에서 구상되었다. 하지만 기술철학의 발전을 통해 인간은 기술이 인간의 통제 바깥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구도는 기술을 여전히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진영과 할 수 없다고 믿는 진영으로 나뉘게 된다.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진영은 기술을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이에 반해 다른 진영은 인간이 오히려 기술의 수단이 된다고 믿는다. 기술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은 이미 100년이란 시간을 뒤로 하고 있다. 이 논쟁은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의 개념은 이러한 논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현재적인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철학적 인간학도 아니며, 다윈의 진화론에 대항해 나온 철학의 한 분과로서의 철학적 인간학도 아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인간학은 과거의 철학적 인간학을 기술에 대한 반성과 접목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