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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완벽하지 않아도, 씩씩하지 않아도 천천히 걸어간다
여성이 비로소 사람이 되었을 때 x 심미섭(페미당당 활동가) 가장 약한 마음을 가장 강한 용기로 사랑하라 - 가스라이팅 그 이후 x 우지안(예술 노동자) ‘괴물’앞에 선 여성들 - 사이코패스와 묻지마 범죄에 대해 물어야 할 것들 x 김민정(젠더기반폭력 연구자) 페미니스트 분들 계시는 자리에 케이팝 틀어도 되나요 - 케이팝, 내가 사랑한 슬픔 x 복길(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당신의 성별을 증명하시오 x 박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나라님 맘대로 낳고 말고 해야 한답니까 x 이은진(젠더법학 연구활동가) 과학이 페미니즘을 만나 더 나은 과학이 되기를 x 하미나(논픽션 작가) 우리가 하는 일은 이전에는 없던 길을 만들어가는 것 x 최현희(마중물 선생님) 우리의 일상은 당신들의 포르노가 아니다 x 하예나(디지털 성폭력 활동가, DSO 대표) |
HA M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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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함께 우는 것이 연대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느끼는 슬픔이 자기 자리에서 느끼는 슬픔과 도저히 같을 수 없음을 안다. 더 복잡한 연대와 사랑을 생각해본다. 같음만큼이나 다름이 반가워지는 연대. 차이가 동력이 되는 연대. 내 마음이 곧 너 마음 같아서가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없으므로 하는 사랑.
싸워서 바꾸어 나갈 것을 생각하면 때로는 가슴이 터져 버릴 만큼 설레고, 때로는 너무도 무섭다. 여전히 불특정 다수에 의해 판단당할 것이 두렵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렵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내가 아닌 삶을 선택할 수는 없다. 도저히. --- 「머리말」 중에서 결국 페미니즘 정치의 특별함은 바로 이 일상에서의 투쟁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끼는 것들 안에, 사랑하는 사람 속에 여성혐오는 존재한다. 차별과 혐오는 시대에 만연해 있고, 누구든 그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나도 그럴 것이 다. 어디든 내재되어 있는 일상 속 폭력을 직시하고 투쟁 하는 일은 힘들다. 어느 선에서 포기하고 타협하는 선택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들은 어쨌든 이렇게 계속 살아간다. 뒤돌아갈 길이 없고, 역사가 우리를 따라올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 「여성이 비로소 사람이 되었을 때」 중에서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느끼는 것을 부정하고, 당연한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 나의 자존을 무너뜨리고 인식 체계를 약화시키는 것. 스스로를 점점 의심하게 되는 것.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란 가스라이팅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 가해자들은 친구, 애인, 가족과 같은 가까운 관계일수도, 직장 상사, 선생님처럼 권위 있는 인물일 수도 있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사회 전체가 우리를 가스라이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가장 약한 마음을 가장 강한 용기로 사랑하라〉 중에서 그럼에도 사실 난 여전히 그가 두렵다. 지금쯤 형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그가 적절한 보호자 없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고, 내가 그와 골목길에서 마주친다는 상상을 하면 너무도 무섭다. 그에게 직접 폭력을 당한 적이 없지만, 내가 가지는 두려움은 실재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사이코패스와 같이 나쁜 인간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가 웬만한 여성들보다 물리적 힘이 센 남성이라서 두려운 것이 아니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여성의 몸을 이용해도 된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도 남자가 된다는 점을 깨우치게 된 것, 남성중심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학습하게 된 것, 이것이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막막함의 핵심이다. --- 「'괴물' 앞에 선 여성들」 중에서 ‘성인이 된다’는 의미는 뭐였을까? 박진영이 만들고 박지윤이 부른 〈성인식〉에 따르면 나는 투표권도 발언권도 없고 인격으로 존재하지 않는 소녀일지라도, (섹스할) 준비가 됐으니, (섹스를) 허락한다는 마음을 가질 때면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 아니, 10대 때 겪고 보았던 숱한 더러움들을 떠올리면 이런 ‘성인식’ 정도면 꽤 괜찮은 편이라 말해도 좋았다. 어쨌든 소녀가 직접 ‘허락’을 하지 않나? 이것도 아마 어떤 남자의 망상이겠지만. 나는 그때부터 궁금한 게 많아졌다. 여자 가수들이 대부분 자신의 성적 욕망에 대해 말했고 어떤 판타지의 대상이 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무대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랐다. 모든 것을 맥락 밖에서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여자가 이루고 싶은 수많은 욕망들 중에서 ‘대상화가 되고 싶은 욕망’만이 늘 앞서 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 수상했다. --- 「페미니스트 분들 계시는 자리에 케이팝 틀어도 되나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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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곳에 있다
정치, 범죄, 대중문화, 법, 여성학, 교육,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9인의 여성들의 목소리 이 책은 정치, 범죄, 대중문화, 법, 여성학, 교육,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9인의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논픽션 작가이자 과학사를 공부한 하미나 작가는 여성 과학자가 소외되는 현실에 대해 칼럼을 쓴 다음 어느 날 한통의 메일을 받는다. 여성 과학자가 차별받는 ‘객관적인 근거’를 요청하는 한 남성 과학도의 ‘정중한’ 메일이었다. 하미나 작가는 그 메일에 답변을 보내는 마음으로 이 책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기반한 과학사의 오랜 여성 차별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다. 마중물 선생님으로 알려진 페미니스트 교사 최현희 선생님은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목도하면서 페미니즘 교육이 교육 이전에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음을 말하고, 젠더기반 폭력을 연구하는 김민정 연구자는 범죄가 왜 일어나는지 궁금해서 범죄심리학을 공부하다보니 여성학까지 오게 되었다고 웃지 못할 농담을 이야기한다. 페미당당의 심미섭 활동가의 글에는 어느 늦은 밤, 집 앞까지 따라온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남자가 자신을, 그리고 어떤 남성들은 여성을 동등한 한 인간이 아니라 마땅히 얻을 수 있는 보상물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 밤의 경험과 예술노동자인 우지안 작가의 가스라이팅 경험담은 글을 읽는 많은 여성들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대한민국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인 박한희 변호사가 쓴 고정된 성별 관념에 던지는 긴 질문과 같은 글, 디지털 성폭력 활동가인 하예나 씨의 활동 과정과 피해와 가해로 이분법해서 성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글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성소수자와 디지털 성폭력이라는 사안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모습의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책 『걸어간다,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까지』는 젊은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이루어진 그룹 ‘페미당당’의 세미나에서 출발했다. 젠더기반 범죄, 섹슈얼리티, 성폭력, 낙태죄, 교육 등 여성문제와 관련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질 때마다 혼란을 겪다가 스스로 공부하고 알아보기 위해 기획한 세미나였다. ‘어쩌다 페미니스트가 되었는데, 혹은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이 주제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하지?’ 가 처음 세미나를 기획한 마음이었고, 비슷한 질문을 품은 동시대 여성들에게 그 세미나에게 얻은 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출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더는 외롭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이 책은 결과적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벽을 부수어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 벽은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너무 익숙해서 인지하지 못했던 세계이기도 하며, 또 어떨 때는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까지 걸어간다. 걸어가며 매번 새로운 곳에 도착할 때마다 과거를 다시 발견할 것이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바꾸어가며 미래로 갈 것이다.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모습의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서문의 마지막 말처럼, 이 책은 그렇게 어제의 나와 세상을 넘어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세계를 확장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