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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 윤범모
후원사 인사말 / 정의선 산소와 일산화이수소 / 이지회 유사가족 조각, 예술 공동체 / 양효실 멜랑콜리아의 환류: 양혜규의 공기와 물 / 이용우 전시 전경 침묵의 저장고 - 클릭된 속심 래커 회화 크로마키 벽체 통로 구각형 문열림 소리 나는 가물(家物) 소리 나는 접이식 건조대 디엠지 비행 솔 르윗 뒤집기 목우공방 - 108 나무 숟가락 소리 나는 동아줄 소리 나는 백설 어수선 불룩 중간 유형 오행비행 진정성 있는 복제 전시 도면 작가 및 필자 소개 전시 작품 목록 전시 연계 프로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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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공기 중 수증기가 찬 물병 표면에 물방울로 응결되어 맺히듯이, 대부분의 물질은 온도 등의 조건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물병 안의 질량은 변하지 않았고, 땀방울처럼 표면에 맺힌 물은 내부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다. 작가의 은유에서는 안의 물이 마치 물병을 뚫고 밖으로 나온 것과 같이 서로 ‘통했다.’ 양혜규는 물의 응결을 “조용하고 신중한 소통의 모델”로 여기며, 이를 은유 삼아 공동체적 관계 맺기의 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서로 다름을 인지하고 유지한다면, 눈물과 땀이 흐르더라도 함께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맥락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는 물질과 부유하는 의미, 그 은유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 p.13 소용돌이치는 태풍이 인간에게는 극복해야 할 재해이지만, 태풍의 입장에서는 단지 물과 공기의 움직임으로 배치를 바꾸는 일일 뿐이다. 무서운 속도로 인간을 숙주 삼아 영역을 뻗어가는 바이러스도 그 미생물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극도의 인간 주도 개발이 야기한 환경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작용으로 읽힐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은 그저 이 격동적인 물질의 역장 속 한 유형일 뿐이다. 와츠지 테츠로가 기후란 ‘우리가 누구인가’의 문제라 한 것을 다시 상기해본다면, 양혜규는 그 역장 속에서 ‘우리’라 여기며 연대할 수 있는 개체를 더 내밀하게 들여다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 p.26 3세계 여성 작가로서의 양혜규에게 서구 미술계가 ‘여성적인’(female and/or feminine) 작업을 기대하리라는 당연한/자연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과 탈식민주의, 페미니즘과 우파 보수주의, 코스모폴리타니즘과 디아스포라, 세계화와 지역주의가 어떻게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결국 공모하고 ‘거대 담론’에 투항하는지를 ‘눈이 많이 달린’ 작가가 안 봤을 리 만무하다. (…) ‘우리’의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들이 다시 도덕과 법을 공고하게 만들면서 우파 보수주의를 정당화할 때, “서사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서사의 교훈성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려는 작가의 ‘여성적인 것’은 나타나기보다는 사라지는 쪽으로, 재현보다는 ‘추상’으로 움직인다. 가령 작가가 “진정한 여성” 작가로 호명한 토이버아르프는 복수의 정체성을 수행하면서 여기저기 다 갔고, ‘인격들’의 미술사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환원적으로 여성성이나 여성적인 가치를 담지하지 않고, 천재성이나 균일하고 정제된 하나의 인격으로서의 정체성과 같은 보수적 미술사적 언어의 투망에 걸리지 않는 방식으로 온갖 범주를 넘나들었던 여성 조각가가 양혜규가 동일시하는 선대 여성 작가이다. --- p.35~36 양혜규는 자연재해와 팬데믹 패닉의 상황, 국경, 이상, 재난 등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형국, 세계정세가 빚어낸 사회 양극화의 상황, 기술의 진보로 표출되는 양가적 감정들 등 늘 맞닥뜨리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일상의 현상들을 병치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공기와 물이 O2와 H2O로 치환되는 것처럼, 동일한 것을 지칭하는 다른 언어적 표현의 이행기 동안 기실 다른 현상들이 일어났던 것일까를 반문하고, 우리가 지금 현재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알고 싶으며, 또 이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들, 즉 현실의 추상성에 대한 끊임없는 가정들을 전시장 안에 펼쳐놓고 있다. --- p.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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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온도차로 인해 발생하는 물의 응결은
조용하고 신중한 소통의 모델이다. 다름을 인지하고 유지한다면, 눈물과 땀이 흐르더라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양혜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양혜규의 개인전 ≪양혜규─O₂ & H₂O≫(2020)는 과학적 사실과 지식이 구성하는 현실과 그 현실을 오롯이 인지할 수 없는 우리의 경험과 감각계를 은유적으로 함의하는 전시였다. 공기와 물이라는 일상의 언어가, 훨씬 더 정교하고 과학적인 언어라고 하는 화학 기호로 대치될 때 역설적으로 현실의 추상성은 배가된다. 하지만 바로 이런 ‘추상성’ 때문에 O₂와 H₂O는 물질과 상징, 에너지와 기술, 기후와 사회적 양극화, 재해와 국경 등 우리의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다. 전시 ≪양혜규─O₂ & H₂O≫는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 같은 현실 혹은 문명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담아낸 예술적 결과물이다. 전시 도록 『양혜규─O₂ & H₂O』는 전시 개막에 맞춰 먼저 출간된 비평 선집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 모음 2001~2020』과 짝을 이루는 출판 성과물이다. 선집 『공기와 물』이 국내외에서 생산된 수많은 비평 텍스트 중에서 엄선한 앤솔러지로서 양혜규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면, 전시 도록 『양혜규─O₂ & H₂O』는 무엇보다도 전시 경험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지 생산 단계에서부터 관람 동선에 따른 전시 광경이 꼼꼼하게 산정되어 촬영되었고, 세심하게 조율된 디자인적 배치 덕택에 오히려 현장에서는 지각되기 어려운 전시장의 건축적 구조까지도 명확한 전시 경험으로 포괄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개별 작품들의 이미지가 작품에 관한 설명 텍스트와 함께 충실하게 수록되어 있다. 또한 도록에는 꽤 긴 호흡의 에세이 세 편이 수록되어 있다. 큐레이터 이지회의 큐레토리얼 에세이 「산소와 일산화이수소」를 비롯해서, 미술평론가이자 미학자인 양효실의 「유사가족 조각, 예술 공동체」, 그리고 미디어 역사문화연구자인 이용우의 에세이 「멜랑콜리아의 환류: 양혜규의 공기와 물」이 전시와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