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1년 08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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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406g | 135*205*20mm |
ISBN13 | 9788967359393 |
ISBN10 | 896735939X |
출간일 | 2021년 08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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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406g | 135*205*20mm |
ISBN13 | 9788967359393 |
ISBN10 | 896735939X |
MD 한마디
나의 노동으로 번 월급을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떼간다면 기분이 어떨까? 대한민국에서 30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간접 고용 형태다. 이 책은 100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인터뷰하여 경비, 청소, 사무 보조 등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는 간접 고용의 부당함을 폭로한다. - 손민규 사회정치 MD
346만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떼인 돈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사악한 착취 구조를 가장 디테일하고도 광대하게 담아낸 이 시대의 아픈 벽화 같은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중간착취의 지옥도』다. 이 책은 한국일보 마이너리티 팀이 100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인터뷰하여 그 실상을 담아낸 기록이다. 이 책의 출발은 다음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당신은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피·땀·눈물의 대가로 월급을 받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중 수십, 혹은 수백만 원을 늘 떼간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 고질적인 문제를 포착한 기자들은 노동시장의 최하부에 위치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중간착취’에 대해 묻고, 그 지옥도地獄圖를 펼쳐보기로 했다. |
머리말 1부 합법적인 착취, 용역 1. 지선씨를 인터뷰한 날 2. 지선씨도 용균씨도 3. 불법이 아니라고요? 4. 최저임금 인상의 기쁨과 슬픔 5. 휴식 시간에 하는 ‘봉사’ 6. 월급을 여쭤봐도 될까요 7. ‘관리비’라는 거짓말 8. 부고와 해고 9. 도처에 거머리가 10. 어느 은행 경비원의 절규 노동의 대가를 도둑맞은 100명의 이야기 2부 떼인 돈이 흘러가는 곳 1. 용역업체 정규직과 계약직 2. 월급 줬다 빼앗기 3. 건강, 안전보다 중요한 것 4. ‘이중 착취’ 기술 5. 있는 줄도 몰랐던 연차수당 5. ‘유령’이 떠도는 곳 7. 노동자를 위한 판결의 딜레마 8. 사장들의 억대 연봉, 어디서 왔나 9. 하청업체 대표, 그들은 누구인가 10. 원청의 과욕 11. 원청이 간접고용을 원하는 이유 12. 을이 을을 착취하는 야만사회 3부 진화하는 착취 1. 2020년의 서연씨는 1998년의 ‘미스 김’이 부럽다 2. 이름값 못 하는 파견법의 탄생 3. “당신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다” 4. 우리 회사가 갑자기 사라졌다 5. ‘진짜’ 사장님은 누구일까 6. 간접고용 노동자는 어디에나 있다 7. 착취는 더 낮은 곳으로 흐른다 8. 이상한 플랫폼 속 선희씨와 기순씨 9. 요금의 절반을 가져간다고요? 4부 법을 바꾸는 여정 1. 메일이 가리키는 곳 2. 실패의 역사 3. 잔인한 말, 검토 4. 고용노동부와 경총 5. 그럼에도 불구하고 |
노동자 100명 인터뷰하기. 누군가에게 고용돼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이야 지천에 널렸으나 막상 이들을 취재하려 들면 어렵다. 혹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 누가 되진 않을지를 염려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거나, 사실을 언급했다가 해고 등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며 인터뷰를 거절하는 사례도 꽤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참신한(?) 시도 또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IMF 이전에는 정규직, 직접 고용이 전형적인 고용의 형태였다면 이젠 비정규직, 파악조차 어려운 형태의 고용이 전자를 앞선 지 꽤 됐지만, 이들이야말로 언제든 노동 시장 밖으로 밀려날 위험에 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사는 사회에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혹 이번에는 진정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커졌지만 아직 상황은 그리 좋지만 못한 듯하다. 갑갑함은 기사가 쓰여지던 시점에 고착된 일이 결코 아니었다.
법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많은 제도와 마찬가지로 법 또한 완벽할 수가 없다. 자신이 직접 고용한 이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게끔 만드는 것도 쉽지가 않았거늘, 하물며 오늘날처럼 이게 고용이 맞나 의심스러운 형태가 부지기수인 상황에서는 이의 파악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책에서 다룬 사례는 간접 고용이었다. A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실상 그들의 소속은 A 회사가 아니다. 예를 들자면 B 건물의 경비, 청소 분야 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한데, A 회사에서 필요한 인력을 직접 고용치 않고 C 회사에 해당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실제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D)은 C 회사 소속이다. A 회사에서는 C 회사가 경비와 청소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여기에는 D의 몫도 포함돼 있다. 이미 복잡한 듯한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A가 마음에 드는 수준의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D에게 직접 지시를 하는 게 가장 깔끔하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는 ‘파견’이 성립돼 A는 일정 기간이 도래한 후 D를 직접 고용해야만 한다. D에게 A 회사 소속 직원에 버금가는 임금 지급 등도 당연히 해야 한다. 이를 피하려면 철저히 ‘용역’ 관계에 머물러야만 한다. A는 결코 D를 직접 지위해선 안 된다. D가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로 하는 유니폼이라든가 각종 청소 도구 역시 A가 제공하는 건 금물이다. A의 역할은 C에 금액을 떨궈 주는 것으로 국한된다. A가 D의 인건비로 식대와 건강검진 비용 등을 산출해 C에 주었어도, C가 이를 D에게 지급하는 건 C 마음이다. 적어도 제도 상으로는 불법이 아니기에 C는 D에게 최저임금에 준한 금액만을 주고 A로부터 받은 나머지 금액은 본인의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야말로 합법적인 착복이다.
적잖은 노동자들이 떼인 돈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혹 인지하더라도 문제 제기를 하기가 힘들었다. 원청에서 얼마를 받는지를 알아야 제 몫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데이터는 요구하는 족족 경영상의 비밀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다수의 외부자가 존재하는 점도 노동자들의 행동을 가로막았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이 많다”는 말 한 마디가 부당해도 꾹 참고 일해야 적으나마 생활비를 손에 쥘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었다. 이 단어가 이럴 때 쓰라고 존재하는 건 아닌 듯하나 사측은 나날이 ‘진화’했다. 노동자들이 문제 제기를 하면 개개인을 해고하고, 더 나아가 아예 용역 계약을 종료시켜버렸다. 일종의 위장 폐업을 단행한 후 새로운 명의의 회사를 차려 같은 용역에 참여하는 일도 잦았다. 아예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짧게는 몇 개월에 한 번씩, 길어도 2년을 못 넘기고 용역 업체가 바뀌니 자신의 소속을 알기란 쉽지 않았다. 하물며 원청에 대한 이해는 기대해선 안 됐다.
저자들은 기사에 머물지 않고 입법을 제안하는 움직임에도 뛰어들었다. 기자였음에도 의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고, 혹 만남이 성사되더라도 원하는 답변에 도달하는 과정은 지난했다. 취지에는 공감하나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며 뒤로 물러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검토해보겠다는 말 이후론 묵묵부답인 경우도 상당했다. 사용자의 언어를 고스란히 답습한 고용노동부의 태도 또한 저자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며 말을 아끼는 편보다는 차라리 제 성향을 여실 없이 드러낸 고용노동부의 모습이 낫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확실히 과거보단 나아졌다. 경제를 나타내는 수많은 수치를 들추면 이는 얼마든지 증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수치는 수치일 뿐, 개개인의 삶까지 대변해주진 못한다. 어떠한 통계로도 잡히지 않는 다수의 신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이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야말로 외면해서는 안 되는 과제지 싶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레토릭으로 애용되는 문구 중 하나다(요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오징어게임>도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표방한다). 복지제도로 대변되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와 심각한 수준으로 위계화된 노동시장. 더 이상 교실에 수면시간을 줄이고 공부하면 배우자의 얼굴이 바뀐다는 야만적인 문구가 공공연하게 게시되지 않지만 학력/학벌에 따른 불평등과 차별은 오히려 그 시절에 비해 심화되었다는 증거들이 존재한다. 학력/학벌이 고용시장에서 일종의 자본으로 작동한다. 고졸과 대졸, 중소기업과 대기업,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돼 재산 차이로 확대재생산된다. 한 번 정규직은 직종이나 직장을 옮기더라도 계속 정규직으로 근무하게 될 확률이 높고, 한 번 비정규직은 근속연수가 쌓이고 성과를 많이 내더라도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한다. 대기업/공기업의 정규직 같은 '좋은 일자리'에 진입하느냐 못하느냐 여부에 따라 평생의 당락이 크게 결정되는 불평등 사회. 대기업 정규직-대기업 비정규직-대기업 제1하청 정규직-대기업 제1하청 비정규직-중소기업 정규직-중소기업 비정규직 식으로 촘촘히 피라미드식으로 위계화된 사회. 최근 불평등, 공정, 부동산 관련 이슈에 안테나를 기울인 채로 고병권 선생님의 자본 해설서를 읽고 있었더니 한 권의 책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동안 뉴스로 숱하게 접해왔으나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한국일보에 연재된 기획기사가 열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결과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졌고, 간접고용(하청) 노동자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했던 故김용균의 죽음을 '사회적 참사'로 인식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변화에 힘을 실어온 김훈 소설가(기자 시절 한국일보에서 재직했다)가 추천사를 썼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했던 소설가가 어느덧 원로의 반열에 들어선 시점에서 도저히 지겨움으로 형언할 수 없는 참혹한 밥벌이의 현장을 보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김훈의 글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가 인간을 동물, 그러니까 피와 살, 뼈로 이뤄진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 강하다고 알고 있다. 육체와 물질의 관점(때로 힘의 관점)에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기에 육체노동(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자신의 육체를 이용한 노동으로 제 밥벌이를 해내고, 제 '새끼'들을 기르는 땀의 숭고함을 깊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성실하고 정직한 노동을 하는 이들이 외주화된 위험을 도맡아 일터에서 목숨을 잃게 만드는 사회를 더 이상 유지시켜선 안 된다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동료 시민이자 어른으로서 책임지기로 결심한 순간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책의 저자인 한국일보의 마이너리티 팀의 젊은 기자들(남보라, 박주희, 전혼잎)은 어떤 마음으로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취재를 결심하게 된 것일까. 책에서 밝힌 취재의도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출발은 다음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당신은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피·땀·눈물의 대가로 월급을 받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중 수십, 혹은 수백만 원을 늘 떼간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 고질적인 문제를 포착한 기자들은 노동시장의 최하부에 위치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중간착취’에 대해 묻고, 그 지옥도地獄圖를 펼쳐보기로 했다." 평소에 잘 보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고, 잘 보이지 않아서 잘 안 보게 되는 지점이 있다. 사각지대라고도 불리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일 확률이 높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을 확률이 높고, 이들의 정치적 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창구가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오늘의 역사가'로 불리기도 하는 기자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동시대의 사건과 현상을 기록하는 일을 한다.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문제를 발견해 알리기도 하고(의제화/공론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문제를 심층적으로 탐사해 새로운 논의의 장을 창출하기도 한다. 혹자는 일시적인 분노로, 혹자는 해묵은 체념으로 지나쳤을 질문을 정면으로 파고든 결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 팀은 "사람 장사의 정갈한 구조" "거대한 착취 구조의 지도"(김경영)를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시대의 마이러니티가 누구인지, 이 부정의한 마이너리티의 구조에서 누가 이익을 거두는지 정확하게 문제화를 하고, 100명의 목소리를 조합해 만들어낸 착취의 지도를 무기 삼아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낼 수 있는) 부분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기획-취재-보도-법제화를 위한 노력-출간의 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을지 행간을 상상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힘에 대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해 그에게 정당하지 않은 몫을 지불한다고 배웠다. 자본주의적 노동 자체의 착취에 더해 오로지 '사람장사'를 통한 이익의 편취, 착취만 일삼는 합법적 시스템을 '지옥' 말고 뭐라 부를 수 있을지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노동을 유연화해 고용을 창출한다는 명목으로 비정규직이 도입되었다고 알고 있다(IMF 금융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가파르게 심화되었다고 한다). 법을 새로 제정하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법을 폐기하거나 개정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말이 있듯 비정규직 제도는 도입 당시 우려되었던 문제점들이 점차 심화돼 중대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 같은 국가에서는 비정규직에게 고용의 불안정성을 대신해 임금을 좀 더 지불한다고 한다. 이를 보면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노동자가 노동자로서(혹은 자신의 노동에 근거해) 정당한 대우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잘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일의 가치를 동등하게 대하고, 더 나아가 고용형태에 따른 불이익과 어려움을 보완해준다는 점에서 노동존중 기조가 느껴진다. 반대로 한국사회에서는 고용의 불안정성이 족쇄가 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에 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법, 그리고 정치가 노동자의 편에 서 있지 않아서다. 비판과 비난의 화살은 자본의 이익과 효율성을 목적으로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양산한 당사자인 국가와 기업에게로 향하기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획득하는 경쟁에서 탈락한 개인에게로 향한다. 지옥은 타인을 착취해 자기이익을 도모하려는 장사꾼들의 열정과 대항할 수단을 지니지 못한 채 생존투쟁에 지친 당사자들의 무기력으로 생명력을 이어간다.
이렇게 자본친화적 정치지형 속에서 제도의 빈틈을 노린 '사람장사'의 기술이 간접고용이라 불리는 중간착취인 것이다. 간접고용은 종래의 사용자-노동자의 계약에 고용주(용역, 파견업체)가 끼어든 '삼각 고용' 구조다. 원청(사용자)이 용역업체(고용주)와 맺는 도급계약, 용억업체가 노동자와 맺는 '근로계약', 이 두 계약 사이의 빈틈으로 인해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급여가 유난히 적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차이 때문이다.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람과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해 있다는 것, 그게 이들을 비정규직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다."(54)
여기에 더해 용역과 파견 개념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용역은 원청과 용역업체가 ‘특정 업무를 완성하겠다’는 도급계약을 맺는 것으로, 원청은 용역업체에 일을 통째로 맡긴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업무를 직접 시킬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원청은 노동자에 대해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반면 파견은 원청이 파견업체를 통해 노동자를 공급받은 후 필요한 일을 노동자에게 직접 지시한다. (...) 원청이 파견직에게 사실상 자신의 직원인 것처럼 일을 시키기 때문에 원청은 파견직에 대한 법적 책임도 진다." (60-61) 대부분의 도급계약은 원청에서 직접 노동자에게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불법 파견'이라고 한다. 파견이 아닌 용역계약을 맺으면 원청은 노동자에 대한 책임("노동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일도 없고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다 해도 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용역업체 또한 노동자들로부터 관리비 명목으로 돈만 떼갈 뿐 노동자를 지원하거나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중간착취라는 문제의 근원은 간접고용에 있다. 그렇다면 왜 기업들은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고 간접고용하는 것일까. 재계의 입장에서 이를 노동 유연화라 설명할 것이다. 이말인즉슨 '손쉬운 해고'를 의미한다. 손쉽게 해고를 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인 노동자는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정치적 결사체를 결성하기 어렵다. 중간착취의 기술자들은 이런 처지(약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협박에 능하다. 당신이 아니더라도 일할 사람 많다고. 당신은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부품이나 마찬가지니 쫓겨나기 싫으면 조용히 말 잘 들어야 한다고. 이렇게 편하게, 또 싼 값에 노동력을 이용하면서 노동자에게 정당한 몫을 지불하지 않은 만큼 자본의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비용 절감과 노사 분쟁의 선제적 예방 같은 경영 차원의 '성과'는 누군가의 생존이 위태로워진 만큼, 누군가의 존엄성이 침해된 만큼 얻어진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은행경비원 임성훈 씨의 편지]
은행원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비슷한 대우도 바라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관리’ 명목으로 은행 경비원의 노동 대가를 중간착취 당하지 않고 온전히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는 아니더라도 매년 반복되는 재계약과 언제 마주할지 모르는 지점 통폐합에 따른 계약 해지의 불안감에서 벗어나 일하고 싶습니다. 저는 안정된 고용 환경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78-79)
담담한 어조로 얘기하고 있지만 절절한 진심이 느껴지는 편지에서 이 시대에 최소한으로 지켜져야 할 상식의 선이 어디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중간착취의 문제를 관찰하며 근본적으로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보상을 받는 사회가 가능할지 궁금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이익에 따른 보상이란 셈법 이외에도 공동체적 가치, 돌봄적 가치, 생태적 가치와 같이 사람과 사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의 가치를 측정하고 보상하는 셈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현생 인류, 현재 삶을 영위하고 있는 지구세계시민들은 미래 세대의 삶을 착취하지 않겠다는 합의 아래 자신이 누려왔던 편의와 효용을 포기할 수 있을까. 4차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산업구조와 노동의 변화 속에서 모두가 노동자가 될 수 없다고 했을 때, 일할 권리/기회가 소수의 특권이 된다고 했을 때 인간은 노동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노동/일과 자아를 잘 구분해서 일을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대하고, 번 만큼 일한다는 정신이 쿨하고 현명한 태도로 여기지는 요즘이지만 일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기여한다는 성취감, 일터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와 같은 기능을 다른 무언가가 성공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대학생 시절 조금은 먼 얘기 같이 느껴졌던 노동문제가 내 생존과 직결된 현실임을 점점 체감하게 된다. 아니 냉정하게 얘기하면 생존이란 단어의 급박함과 무게를 고려했을 때 생존 자체가 위협되는 상황에 놓일 확률은 적을 거라 예상된다. 집안 재정이 빠듯한 편이긴 하지만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며 고등교육을 이수한 학력이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자리를 보장해줄지 최대치는 알 수 없지만 최소치는 상상해볼 수 있어서다. 똑같이 임금을 월 2백만원 선에서 받더라도 중간에서 장사꾼들이 반절씩 착취해가는 사업장과 내 노동의 몫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사업장에서 삶의 질은 확연한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니 이 사회의 맨 밑바닥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여 변화를 이끌어냈으면 좋겠다. 고작 책을 읽고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알맹이 없는 리뷰를 남기고 있는 형국이지만 앞으로도 한 권의 책을 읽고 잠시나마 사회적 이슈 - 타인의 고통,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 에 대해 고민하고 분노하고 슬퍼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일하는 사람의 어깨가 축 처지는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노동의 가치가 최대한 정당하게 인정받고 노동자-인간으로서 충분히 존중받아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않아 당당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