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없는 밤. 벌써 사흘째나 이어지는 중이다. 잠이 쉽게 들지만, 한 시간 후쯤, 마치 머리를 잘못된 구멍에 갖다 뉜 것처럼 잠이 깨버린다. (…) 이제부터 대략 새벽 5시까지, 밤새도록, 비록 잠이 든다 해도 너무나 강력한 꿈에 사로잡힌 나머지 동시에 의식이 깨어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가 계속된다. 형식적으로야 내 육신과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동안 꿈으로 나 자신을 쉴 새 없이 두들겨대야만 하는 것이다. 5시 무렵, 최후의 잠 한 조각까지도 모두 소진되어 버리고 나면, 그때부터는 오직 꿈을 꿀 뿐이다. 그것은 깨어 있는 것보다 더욱 힘들다. 나는 밤새도록, 건강한 사람이라면 잠들기 직전에 잠시 느끼는 그런 혼몽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잠에서 깨어나면 모든 꿈들이 내 주변에 모여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꿈들을 기억해내지 않으려 애쓴다.
--- 「일기」 중에서
문학적으로 보자면 내 생은 지극히 단순하다. 꿈과 같은 내면의 삶을 묘사하는 일이 운명이자 의미이고, 나머지는 전부 주변적인 사건이 되었다. 삶은 무서울 정도로 위축되었고, 점점 더 계속해서 위축되어간다. 그 어떤 일에서도 이처럼 큰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
--- 「일기」 중에서
매우 늦은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이제 잠자리에 들겠지만, 잠을 자지는 못할 겁니다.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단지 꿈을 꾸게 되겠지요. 예를 들자면 어젯밤처럼, 어젯밤 꿈에서 어느 다리를, 혹은 부둣가 난간을 향해 달려갔듯이 말이죠. 거기 우연히 난간 위에 놓여 있던 두 개의 전화 수화기를 집어 양쪽 귀에 갖다 대고는, ‘폰투스’로부터의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줄곧 오직 그 하나만을 간절히 소망했지만, 전화기로부터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구슬프면서도 힘찬, 무언의 노래와 바다의 파도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죠. 그제야 나는 알아차립니다, 인간의 목소리는 이런 소리를 뚫고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았고, 자리를 뜨지도 않았습니다.
--- 「펠리체 바우어에게」 중에서
당신이 우리의 베를린 생활에 대해서 써 보내자마자, 나는 그에 관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주 많은 꿈을 꾸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기억에 남는 것은 없습니다. 꿈은 이제 단지 슬픔과 행복감이 뒤섞인 그런 감정으로 변하여 내 안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 「펠리체 바우어에게」 중에서
어제 잠들기 직전 처음으로 눈앞에 흰말이 나타났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벽을 향해 누운 내 머리에서 달려 나왔고, 내 몸을 넘어 침대에서 뛰어내린 후,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는 인상을 받는다.
--- 「일기」 중에서
전율스러운 꿈이 하루 종일 기분에 영향을 미쳤는데, 기묘하게도 그 꿈 자체는 전율스러운 요소를 전혀 포함하지 않았고, 단지 거리에서 몇몇 지인들과 일상적으로 마주친 것이 전부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신이 거기 없었다는 것만은 분명해요. 전율스러웠다고 말한 것은 내가 마주친 지인 한 명에게서 느꼈던 감정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꿈은 아마도 아직 한 번도 꾼 적이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막스 브로트에게」 중에서
오늘 아침, 잠에서 깨기 직전, 사실상 그건 잠든 직후이기도 한데, 나는 너무도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공포스럽다고까지는 할 수 없는(다행히도 꿈의 인상은 빠르게 휘발되어 버리니까요), 즉 오직 기분 나쁠 뿐인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약간이라도 잠을 잔 것은, 사실 그 꿈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그런 꿈에서 깨어나려면 일단은 꿈이 끝까지 진행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 전에는 안간힘을 써도 도중에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꿈은 혀끝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니까요.
--- 「밀레나 예젠스카에게」 중에서
발작적인 짧은 잠 속에서의 짧은 꿈. 발작적으로 나를 붙잡고, 엄청난 행복감을 선사했다. 수많은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꿈의 내용. 1000개의 내용이 동시에 펼쳐지는데, 모든 것이 단번에 선명하게 이해된다. 꿈속에서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남동생이 뭔가 범죄를 저질렀다. 아마도 살인인 듯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 몇몇도 범죄에 가담했다. 먼 곳에서 처벌, 취소, 구원이 다가온다. 그들은 점점 더 거대해진다. 그들이 멈추지 않고 다가오고 있음을, 많은 징후들로부터 알아차릴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여동생이 매번 이 징후를 알리는 입장이고, 나는 그때마다 환희에 찬 탄성으로 화답한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내 황홀감은 점점 더 상승한다.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내 감탄의 탄성은, 너무도 두드러지는 성질의 것이기에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거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단 한 문장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그냥 감탄의 소리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말을 한다는 것이 몹시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어휘라도 입 밖으로 말하려면, 우선 두 뺨을 불룩하게 부풀린 상태에서 치통이라도 앓는 것처럼 입을 비틀어야만 했다. 처벌이 도래했기에 나는 행복했다. 자유롭게, 기쁘게 동의하면서, 나는 처벌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신들도 감동했음이 분명한 순간이었다. 온몸으로 신들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나는,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 「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