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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자를 쓴 여자

검은 모자를 쓴 여자

[ 양장 ] 새소설-09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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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294g | 127*195*16mm
ISBN13 9788954447553
ISBN10 8954447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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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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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민은 그날 보았던 검은 모자를 똑똑히 기억한다.
--- p.7

첫아이가 죽고 그 아이를 화장하여 수목장한 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으로 남편과 함께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오던 봄이 생각났다. 그날 이후 봄만 되면 민은 감기를 앓듯 우울해졌다. 지난 새벽 보았던 정체불명의 그림자도 어쩌면 그런 예민함이 만들어낸 환각일지도 모른다고 민은 애써 위로했다.
--- p.19

의사는 15일 치 처방전을 끊어주며 증세가 심해지면 다시 오라고 했다. 약국에 들러 약이 든 봉투를 받아 든 민은 이번에도 며칠 안 가 봉투를 쓰레기통에 처박을 것임을 예상했다. 아니, 그래야만 되었다. 자식을 잃는 일 같은 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비극이니까. 힘들어도 최대한 빨리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 pp.21~22

“저건 송장나비야. 발음해봐. 소옹장, 나아비.”
‘송장나비’라고 발음하는 순간 불길한 기운이 슥, 하고 민을 베고 지나갔다.
--- p.39

민은 지금도 사람에게는 저마다 운명의 궤도 같은 것이 있어서 발버둥 치려 해도 기어이 그 궤도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게 인생이라고 믿고 있다
--- p.56

그날 밤,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민은 인터넷을 검색해 고양이의 특성을 찾아보았다. 고양이에 대한 글은 넘쳤다. 간혹 이상한 행동을 경험했다는 블로거의 글이 올라와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귀엽고 앙증맞은 짓들이었다. 그 어디에도 주인의 머리카락을 수집하여 바닥에 깔고 자는 고양이는 없었다. 거실로 나온 민은 잠든 고양이를 어둠 속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직감적으로 민은 고양이가 자지 않고 자신을 살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p.68

“살아 있어. 살았는데 죽은 거나 다름없어. 아마 본인이 그런 마음일 거야. 살아도 송장처럼 살고 있는 게 보여. 제가 제 몸을 파먹고 있군. 가련해라!”
--- p.121

형체 없는 얼굴에 죽은 은수의 얼굴이 겹쳤다. 죽은 자의 얼굴 위에 수의가 놓이고 관이 놓이고 상여 소리가 지나갔다. 죽음이 저희끼리 다투며 반복해서 산 자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타다닥, 날갯짓 소리. 민은 눈을 크게 떴다. 나비 떼였다. 송장나비가 날갯짓하고 있었다. 민은 눈을 가리며 무릎을 꿇었다. 수천수만 마리의 흰나비들이 군무를 추듯 민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 p.172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돌이켜보면 남부러울 것 없이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런 가정을 일구는 게 소원이었고 마침내 그걸 이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반듯한 직장이 있었고 고대하던 자식도 낳았고 부모님은 오랜 고생 끝에 행복을 찾았으니까.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평화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부서졌다. 어항을 들고 조심조심 걸어가다가 부지불식간에 어항을 놓쳐 깨뜨려버린 것 같았다. 엄마, 마, 마……. 죽은 은수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민은 제 심장에 잘 드는 칼을 쑤셔 박고 싶은 고통을 느꼈다. 오랜 고통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운명은 선의 편도 악의 편도 아니라는 것. 그저 견디는 자들의 편이었다.
--- p.240

그녀도 나처럼 마음이 아팠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여자의 마음이 조금 이해될 것도 같았다. 함부로 꽃대를 꺾어버리는 위험천만한 행동만 하지 않았어도 말이다.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평화를 지켜보는 걸 분명 못 견뎌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삶에 균열이 생기기를 바랐을 것이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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