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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밖에 없는 사람 방 밖에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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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135*216mm
ISBN13 9791190999083
ISBN10 1190999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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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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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마음의 성채이자 마음의 들판. 우리는 그곳의 왕이자 유일한 백성이다. 방을 갖는 일은 온전한 자신만의 세계를 갖는 것. 나는 나만의 우주가 아주 마음에 든다.
--- p.10

식물은 이층 창가에서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점점 잎사귀 끝이 마르고 색이 바래더니 시들어 죽고 말았다. 나는 또 그에게 일어난 이 기묘한 일을 헤아릴 수 없었다. 형광등 빛만으로 살아온 질긴 생명에게 갑자기 쏟아진 햇볕은 독이었을까. 지금도 이따금 그 식물 생각이 난다. 오래 외출하지 않고 있다 보면, 내가 꼭 한자리에 붙박여 한 뼘 볕과 한 줌 물만으로 사는 식물같이 느껴진다.
--- p.15

삶이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살고 싶다. 무엇이든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편하다. 삶도 마찬가지. 안달복달 삶에 매이기 싫다. 배곯지 않고, 따듯하게 잠들 수 있으면 족하다. 혹 이런 게 현실도피나 패배주의는 아닌지 돌아보아도, 내게는 딱히 이루고 싶은 것도 생활에 보태고 싶은 것도 없다. 지금 내 방에는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방에서 나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 p.23

내 방의 주인은 어둠이다. 그는 방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간살이와 내가 있는 공간을 빼고 남은 전부가 그의 것이다. 방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속내까지 그가 깃들지 않은 데는 없다.
--- p.36

사람 간의 접촉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대개의 것들이 타인과의 만남에서 온다. 다툼, 오해, 불신, 배신, 갈등, 시기, 질투 따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깃든다. 저 부정적인 감정들은 오롯이 혼자인 사람에게 파고들지 못한다.
--- p.82

방이 나의 낚시터라면, 낚싯대는 시선이고 눈빛은 찌다. 낚싯바늘에는 기억이 미끼로 달려 있다. 나는 힘차게 낚싯대를 던진다. 그다음은 그대로 기다릴 따름이다. 한 마리 감정, 한 마리 생각, 한 마리 느낌, 한 마리 고독이 미끼를 채갈 때까지.
--- p.90

고양이의 몸놀림은 꼭 붓놀림 같다. 고양이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다 보면 마치 어떤 거대한 존재가 방이라는 도화지에 그들을 붓끝 삼아 무언가를 그리는 듯하다. 고양이가 살그머니 움직일 때 그 운필은 몹시 신중하고, 우다다 뛸 때는 일필휘지다. 방 한곳에 움츠리고 있는 고양이는 마침표 따위의 문장부호이거나 화룡점정이다.
--- p.96

책을 보다 울컥할 때 우리는 작가의 슬픔을 엿본 것이 아니다. 주인공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도 아니다. 원래 우리 안에 있던 슬픔이 깨어났을 뿐. 책은 우리를 슬프게 할 수 없다. 몸속을 돌던 피가 작은 상처에도 배어 나오듯 책의 한 구절에 찔려 구멍 난 마음 밖으로 슬픔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미 슬펐던 마음만이 책을 읽고 슬퍼할 수 있다. 책은 슬픔을 모른다. 슬픈 책은 없다. 슬픈 것은 우리다.
--- p.110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는 사람만이 타인에게서 초라함을 본다. 나는 초라한 저 개를 견딜 수 없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향한 저 맹목. 개의 눈동자는 틀림없이 나와 닮았다. 나는 방 밖에 개를 남겨둔 채 방문을 닫는다. 그렇게 나는 방 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
--- p.149

“네가 뭘 안다고 그래!”라는 외침은 그래서 정당하다. 몇 번을 죽었다 깨도 나는 너의, 너는 나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경험의 특수성을 보편화하려는 시도의 끝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다. 우리는 오해를 통해서만 서로를 이해한다. 우리는 오해의 운동장에서 만나 어울려 놀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다. 나는 아무도 오해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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