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 훌륭한 시간이었다. 자랑하고 싶을 만큼. 손과 손이 포개진 순간, 몸짓과 소리와 촉감이 몸을 섞어 공기 중으로 달게 녹아들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설탕기 어린 공기가 살갑게 기도를 스쳤다. 그러다 조금은 쑥스러운 시선이 닿는 어느 한 사람 이외의 모든 세계가 소멸하기도 했다. (2015.10.15.)
--- p.16, 「시작할 때의 마음」 중에서
[지은] 당신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진짜 좋아 죽네, 죽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매번 세상을 시니컬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글 아니면 남을 웃기기 위한 각종 드립으로 난무하던 당신의 페이스북이 연애 이후 옅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무엇을 써도 꿀 바른 글이어서 내 친구들 사이에서 당신은 ‘환희버터칩’이라고 불리었다. 한 친구는 “너 혹시라도 나중에 헤어지면 환희 씨 나한테 넘겨”라며 부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반면에 당신 친구들은 180도 변한 당신 모습에 재미있어 하며 ‘뭐 잘못 먹었냐’고 놀렸다.
--- p.17, 「시작할 때의 마음」 중에서
[환희] 모든 것에 끝이 있듯이 결혼 생활에도 끝이 있다. 아내와 나의 결혼도 이혼이든 사별이든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끝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내 덕을 키워 하루라도 더 일찍 균형을 맞추고, 돌아보았을 때 후회가 최소화될 결혼 생활을 이어 가기로.
--- p.29, 「귀하게 대해 줄게요」 중에서
[지은]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카페에 값을 치르고 함께 문을 나서는데, ‘이대로 헤어지면 이 친구 성향상 다시는 고백 비슷한 말조차 내밀지 않겠지’ 싶었다. 슬며시 당신 손을 잡았다. 당신은 흠칫 놀라더니 가만히 손을 맡겼다. 이후 손끝으로 파르르 떨림이 느껴졌다. 오늘도 눈치 없는 나는 당신에게 “에? 추워요?”라고 물었다.
--- p.30, 「귀하게 대해 줄게요」 중에서
[환희] 이 넓은 세상에서 이렇게 잘 맞는 사람끼리 만나는 건, 흔한 말로 ‘기적’일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가 함께하는 건 봄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사계절을 비순차적으로 끊임없이 겪어 내는 것에 가까울 거야. 우리가 참 닮아 있기에 오히려 서로를 잘 안다고 방심하며 서로에게 무감각해질 여지도 클 테고, ‘또 하나의 내가 아닌 그저 타인에 불과했다’는 진실을 알아채는 순간마다 유독 실망할 수도 있겠지.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당신과 나는 함께하는 동안 서로를 쉼 없이 민감하게 살피면서 삶의 방식을 조율해 나가야 할 분리된 사람이라는 걸, 또 각자가 미숙하고 불완전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면서 나에게는 좀 더 엄격하고 당신에게는 좀 더 관대한 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2016.10.30.)
--- p.49, 「사랑이라는 화사한 마음」 중에서
[지은] 횡단보도만 건너면 내 자취방이 나오는 길 한가운데에서 당신이 나를 불러 세웠다. 왜 그러냐고 묻는 나의 양쪽 어깨를 살포시 잡더니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나게끔 살짝 밀었다. 그 자리에는 벚꽃나무 대신 분홍색 꽃이 핀 목련나무가 있었다. 어리둥절한 내게 가만히 있어 보라고 말하더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꽃다발과 갈색 케이스를 꺼냈다. 그제야 지금이 프러포즈하는 시간임을 알았다. 벚꽃 흐드러지게 핀 곳에서 반지를 주고 싶었는데 사람도 너무 많고 타이밍도 못 잡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속상해하는 당신이 너무 귀여웠다. 비록 아파트 단지 길 목련나무 앞이었지만 내게는 그 어느 장소보다 근사했다.
--- p.49, 「사랑이라는 화사한 마음」 중에서
[환희] 병원 생활이 너무너무 지겨워서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너무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아내와 고양이들과 좁은 침대에서 낮잠 자고 싶다. 아내와 드라마 보면서 밥 먹고 싶다. 거실에 이승환 무적 전설 라이브 틀어 놓고 따라 부르고 싶다. 이사 가기 전에 피규어 잘 포장해 두고 싶다. 맛있는 거 사 들고 회사에 놀러 가고 싶다. (2020.05.17.)
--- p.65, 「나에게 기대지 그랬어」 중에서
[지은] 그 기록 안에는 내가 모르고 살던 환희 씨 당신의 약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일이 밀릴 때면 남에게 폐가 되는 스스로가 미워서, 출근 시간인 아침 아홉 시가 오는 게 두려워서 변기 위에 앉아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만 아팠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던 나날 등. 당신은 시아빠에게 “아빠, 이건 어쩌면 내가 원했던 것일지도 몰라”라고 했다. 그 감정을 마음속에 담고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으면서도 정작 당신이 반드시 털어놓았어야 하는 나약함을 받아안아 주지 못했다. 나는 왜 당신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했을까. 당신은 왜 나를 힘들 때 기대도 되는 듬직한 존재로 느끼지 못했을까.
--- p.67, 「나에게 기대지 그랬어」 중에서
[환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부분을 부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라니, 다시 생각해도 너무 고마운 사람이라서.
--- p.74, 「너에게도 나는 고마운 기억일까」 중에서
[지은] 나도 당신에게 신청곡을 자주 청했다. 우리 결혼식 축가였던 이승환의 〈화려하지 않은 고백〉과 우리가 처음 사귀는 날을 떠올리게 하는 윤종신의 〈환생〉을 주로 요청했다. 당신은 내 신청곡을 거절한 적이 없었고, 매번 열창해 주었다. 심지어 꾸벅꾸벅 졸면서도 옆구리를 탁 치면 끊겼던 노래를 이어서 불렀다. 졸릴 때 건드리면 얼마나 짜증나는데, 그깟 노래 부르라고 깨웠는데도 당신은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 지금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해도 나는 당신과 만났을 것 같다. 당신에게 내가 고마운 기억이었던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거든.
--- p.77~78, 「너에게도 나는 고마운 기억일까」 중에서
[환희] 아내가 요양병원 이야기를 꺼낸다. 어제부터 힘겨워하는 아내를 느낀다. 서로를 위한 길이라면 선택해 보고 싶다.
--- p.102, 「서로를 위한 선택」 중에서
[지은]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우는 당신을 보고 너무 놀라서 “아, 어떡해. 미안해, 미안해”를 연발하며 함께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당신은 너무 아파서 옆구리를 제대로 펴고 앉지도 못하고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우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나 안 아파, 괜찮아”를 반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화장실에서 서로를 쓰다듬으며 한참 울었다.
--- p.104~105, 「서로를 위한 선택」 중에서
[환희] 인물도 시원찮고, 그렇다고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닌 것 같고, 어디 하나 특출하게 마음에 드는 데 없는 사람이랑 귀한 딸 결혼시켰는데, 가족이 되었는데도 그다지 살갑지도 않고,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중병에 걸려서 비실대고 있는 걸 보고 계실 그 속이 얼마나 답답하실지 짐작조차 안 가네요. 그래도 아프기 전까지 지은 씨랑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고, 사람은 누구나 약해지고 병드는 게 순리니까. 제가 얼른 건강해져서 행여나 지은 씨나 어머님이 병들고 약해질 때 잘 돌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씀 대신 돌봐 주셔서 참 감사하다는 말씀만 드릴게요. (2020.07.07.)
--- p.160, 「엄마의 파스 냄새」 중에서
[지은] 당신의 방사선치료와 항암 1차가 마무리되었을 때 비로소 엄마와의 첫 번째 동거를 끝마쳤다. 다 큰 딸이 주는 눈칫밥과 아픈 사위의 병간호로 고생한 엄마에게 홍삼 한 박스와 약간의 수고비, 당신이 직접 쓴 편지를 함께 전달했다. 그 선물들에 엄마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엄마 앞에서만큼은 절대 울지 않는 나는 울음을 꾹 참아 냈다. 엄마는 ‘엄마니까 한 당연한 일’이라 말했지만, 그 어떤 돌봄 노동도 당연하지 않음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p.163~164, 「엄마의 파스 냄새」 중에서
[환희]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저희 집 리아가 질병의 고통에 오래 시달리다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너무 자주 해서 민망하고 죄송합니다만, 리아가 다른 세상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잘 지낼 수 있게 빌어 주세요. (2020.09.06.)
--- p.234, 「두 개의 이별」 중에서
[지은] 당신과 함께 떠나간 리아를 위해 기도할 때 “리아야, 형아 얼른 다 낫게 네가 조금만 도와주라, 형아 병 좀 가져가 주라”라고 빌었다. 당신은 그 말을 듣자마자 “리아야, 더는 여기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아팠던 거, 힘들었던 거 다 잊고 너 편하게 지내”라고 기도를 정정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니 리아에게 그런 부탁을 한 내가 부끄러웠다. 리아가 지금 평안하다면 분명 당신 덕분이다.
--- p.236, 「두 개의 이별」 중에서
[환희] 가끔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내 일에 슬퍼해 주거나 분노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내가 희로애락에 대한 반응이 그리 크지 않은 사람이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신기하고 고맙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완전히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습관적인 말로 타인에 대한 이해를 쉽게 포기해 버리고는 했던 지난 시간들이 민망하다.
--- p.252, 「안녕, 내 사랑」 중에서
[지은] 때로는 당신이 너무 밉기도 하다. 어떻게 이렇게 가버릴 수가 있니. 그런데 그 생각을 하면 이내 죄책감이 밀려온다. 당신이 얼마나 살고 싶어 했는지 아니까. 업무에 복귀할 날을 꿈꾸며 새벽 네 시마다 일어나 책을 읽던 당신이니까. 암이 재발할까 봐 머리를 쓰는 게 무섭다던 당신이니까. 한번은 내게 “당신을 보면 살고 싶어져”라고 말했지. 나는 무리한 요구인 줄 알면서도 “그럼 살아 줘, 나와 웅이를 위해 힘내 줘”라고 대답했다. 그때 당신 마음이 얼마나 서글펐을까.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힘을 내라니.
--- p.254, 「안녕, 내 사랑」 중에서
[환희] 한 번도 크게 위태롭지 않았던 이의 사치일 수 있겠으나,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인간 역시 되고 싶지 않으며, 타인을 감동시키는 일에는 꽤 관심 있다. 오늘 하루도 괜히 쓸모 있는 사람으로 비치지 않게, 남에게 폐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일하도록 합니다. (2015.07.01.)
--- p.256, 「낯모르는 이들의 수많은 애도」 중에서
[지은] 당신은 흔히 말하는 표준 남성성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고, 스스로 남성 사이에서 “1.5등급 시민권을 부여받은 것 같다”고 느끼곤 했다. 즉 스스로가 비주류임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런 소수자 감성이 다른 소수자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켰던 게 아닌가 싶다. 당신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을 후원하고, 마지막으로 구매한 책이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였다. 많은 이들이 당신을 아까워하는 이유는, 자신의 결핍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결핍을 채워 주려 노력했던 당신의 마음을 발견했기 때문 아닐까.
--- p.259, 「낯모르는 이들의 수많은 애도」 중에서
[환희] 15년 전 아주 약간 도움이 되었던 친구의 말을 떠올려 본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때문인가. “같은 중병이라도 위암?대장암 같은 암보다 뇌종양은 약간의 로망이 느껴지는 단어 아니니.” 친구를 다시 만나면 지랄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평소 유서를 써야겠다는 생각 많이 하다가 귀찮아서 결국 안 써놨는데 이제라도 좀 써야겠다. 죽을 병 아니라고 해도 수술하다 까딱 뇌사 상태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읽는 사람 안 슬프게 드립도 치면서 담담하고 발랄하게 써야지. (2020.05.04)
--- p.296, 「그런 일을 겪고도 되게 밝으시네요」 중에서
[지은] 감정은 시시각각 널을 뛴다. 아무렇지 않게 남들과 만나 웃으며 밥 먹거나 통화하다가도 문득 귀에 꽂힌 노랫말 가사 하나에 마음이 무너진다. 나는 이제 우리가 자주 부르던 윤종신의 〈환생〉을 들으며 흐뭇해할 수 없다. 사랑의 시작과 설렘을 이야기하는 그 노래가 세상에서 가장 슬프다.
--- p.297~298, 「그런 일을 겪고도 되게 밝으시네요」 중에서
[환희] 수술 후 첫 밤은 중증 폐렴 환자들과 같이 보냈는데 중환자실에서 그들이 가래 뱉는 소리 때문에 잠을 엄청 설쳤다. 숨넘어갈 듯한 가래 소리는 죽음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오히려 저들이 나보다 건강하고 안 아픈 모습으로 병원을 나설 수도 있겠지 싶어 부럽기도 했다. (2020.05.09.)
--- p.309, 「살고 싶은 날」 중에서
[지은] 오랜만에 해를 받고 산책해서 그런가, 아니면 날씨가 포근해서 그런가. 이번에는 창을 활짝 열고 집안일을 하고 싶어졌다. 윤종신 음악 CD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행보 2011’을 틀었다. 곧 로봇 청소기를 작동시키고, 걸레질하고, 고양이 밥그릇과 물그릇을 닦고,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고구마 밥을 지어 점심을 챙겨 먹었다. 가벼운 피곤함이 몰려와 침대에 잠깐 누워 쉬는데, 웅이가 다가와 내 옆구리에 자리를 잡고 식빵을 굽기 시작했다. 웅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아마도 오늘은 살고 싶은 날인가 보구나.
--- p.311~312, 「살고 싶은 날」 중에서
[환희] 불행히도 종양이 재발했고 다시 건강히 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2020.09.21.)
--- p.327, 「도둑처럼 찾아드는 당신의 흔적」 중에서
[지은] “자, 우리 요리책 보면서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에 표시하는 거야. 먹고 싶은 음식 나오면 ‘스톱!’ 하고 외치는 겁니다. 알겠죠?” 당신은 곧바로 “네!” 하고 대답해 주었다. (…) 먹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보니 당신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스톱!”을 외쳤다. 미역국, 꽃게탕, 낙지연포탕, 갈치조림, 낙지볶음 등 평소에 좋아하는 재료가 들어간 음식에도 체크했지만 병어조림, 홍어회무침, 김치밥전 같은 좋아하지도 않고 먹어 본 적 없을 법한 음식들 앞에서도 무조건 스톱을 외쳤다. 그런 당신이 너무 귀여워서 “이렇게 하면 안 먹고 싶은 음식 체크하는 게 더 빠르겠다. 안 먹고 싶은 요리가 대체 뭐야” 물으며 웃었다. 그때 붙인 그 태그들이 당신이 여기 살아 있었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 p.330, 「도둑처럼 찾아드는 당신의 흔적」 중에서
[환희] 언어가 품고 있던 농밀함의 정도를 떠나, 아주 잠깐이나마 자기 삶의 일부를 내 생각에 할애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축하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그리고 그 순간들만큼은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2014.02.05.)
--- p.331,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생일」 중에서
[지은] 당신은 종종 “내가 행운의 남자라니까”라고 말했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였을 때, 줄서자마자 버스가 도착했을 때, 길을 걷는데 신호등이 딱딱 맞아떨어질 때마다 “이것 봐. 행운의 남자 맞지”라고 말했다. 그렇게 자잘한 것들에는 잘 적용되던 행운이 왜 이번에는 들어맞지 못했을까. 나는 이제 그 ‘행운’이라는 단어도, 당신의 생일마다 다가오는 ‘입춘’도, 기쁨과 즐거움을 뜻하는 ‘환희’라는 단어도 이전의 설렘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었다.
--- p.333~334,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생일」 중에서
[환희] 환자가 아닌 사람은 ‘아직’ 아프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여기서 ‘환자’ 자리에 ‘소수자’를 넣어도 무방하다. 김 교수의 말대로 우리 모두는 한국만 떠나도 소수자이며, 한 사회의 소수자는 마음이 아파 몸이 아프다. (2017.10.01.)
--- p.368, 「적확한 위로의 온기」 중에서
[지은] “왜 이렇게 사람들이 위로를 못 할까요.” 가만히 듣던 시아빠가 입을 열었다. “원래 그게 제일 힘든 거야.” 시아빠는 이제 위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으니까 더는 위로받으려 하지 말라고, 위로를 주려고 노력해 보라고 말했다. (…) 우리만 환희를 잃고 슬퍼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 다른 이들도 얼마나 슬퍼하는지 보라고 덧붙였다. (…) 그 말에 그간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적확한 위로들을 받기만 바라던 나날들, 남들의 위로에 점수를 매기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 p.370, 「적확한 위로의 온기」 중에서
당신 없는 1년을 이 책 덕분에 살아 냈다. 앞으로 남은 삶이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이 책을 읽고 곁에서 응원해 준 이들 덕분에 종종 슬프고 대체로 기쁠 것이다.
--- p.376,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