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의 어려움은 한국의 빠른, 어쩌면 너무나도 빠른 발전에 기인한 점이 많습니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권위주의 정치를 경험한 세대와 ‘선진국’에서 태어난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회의 기존 권력은 이른바 ‘86세대’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개 젊은 세대의 바람이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우리 때는” “우리를 봐라” 하고 말할 뿐입니다. 또는 자신들이 절실히 여겼던 ‘역사의식’을 전혀 다른 상황에서 성장해 다른 생각을 가진 세대에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합니다.
오늘날 MZ세대가 당면한 심각한 현실의 문제는 세대 간에 고착된 불평등의 문제입니다. 이른바 86세대가 정치적 지위나 조직, 연대를 통해 사회에서 확고한 지위와 역할을 확보하면서 여기에 따라오는 이득을 향유하고 있는 반면, 새로운 세대는 이들이 누리던 혜택에 대한 미래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처지입니다.
---「1장 새로운 세대에게서 새로운 것을」중에서
공천이 인맥으로 좌우되는 것은 권력이 몇몇 정치인에게 쏠리기 때문이었죠. 그것은 시민이 정당에 대해 상시적인 영향력을 미칠 방법이 없어서였습니다. 그것은 또 정당 안에서 당원들의, 또는 일반 국민의 생활정치가 안 되기 때문인데, 이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고 너무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필연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접어놓고 봐도 공정한 경쟁은 사실 그리 공정하지 않기에 청년들에게 불리했죠. 정치적 경쟁에 돈과 배경이 요구되면 요구될수록 점점 더 가난해지는 청년세대는 정치적 힘마저 잃는 것이었습니다. 곧 과노동 사회와 사회안전망의 부재 그리고 빈부격차야말로 정당에서 청년 정치인이 나오지 않게 하는, 그 이전에 청년 정치 자체를 취약하게 만드는 핵심 원인입니다.
---「2장 청년을 위한 정당은 없다」중에서
돌아보면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세대교체는 상승하고자 하는 세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기득권세력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비민주적 방식을 통한 권력 연장은 결국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정치적 부패를 낳았고, 이에 반발한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력 또한 군부와 소수 재벌 기업에게만 재원을 분배해 이에 저항하는 민주화세력을 키우게 된 것이죠.
이 민주화세력 또는 586세대는 건재한 조직력을 갖춘 기득권으로 발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이 세력의 진정성에 조금씩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한번 잡은 권력은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란 점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는데요. 과연 586세대는 전 세대와 달리 자신의 기득권을 평화적으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을까요? 만약 가능하다면 이를 물려받는 혹은 쟁취
하는 세대는 누구일까요?
---「3장 청년세대는 준비되어 있는가」중에서
한국 사회에는 이런 ‘무리’가 ‘군중’보다 많습니다. 그럼에도 정치계와 언론은 특정 파에 지지를 보내는 군중 간 갈등적 대치 상황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사람들이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합니다. 립튼과 베어맨에 따르면, 양극적 구도를 강조하는 것은 언론 조작과 관계가 깊습니다. 곧 양극성은 실제 사회현상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특정 권력의 필요에 따라 현상을 왜곡시킨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누구 편인가를 묻는 여론조사도 사회를 양극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양쪽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를 고려한다면 이 부분에 속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어디에 투표하느냐에 따라 정치 지형이 달라지곤 했습니다. 정치가에게 제왕이 아닌 집사의 직분을 부여하는 근거가 바로 이런 다수를 이루는 집단의 지성입니다. 지난 한국 역사는 ‘정치가가 망친 나라를 국민이 구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는 권력의 부패와 무능에도 불구하고 온시민이 들고일어나 합심했기 때문에 이룩한 성과입니다.
---「4장 젊은 대통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중에서
16대 총선을 살펴보면 선거자금의 54퍼센트가 개인 재산으로 충당되었습니다. 17대 총선 후보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 자료도 비슷한 결과입니다. 선거자금의 50.7퍼센트가 개인에게서 나왔다는 평가입니다. 개인 재산 의존도는 현직 후보보다 예비 후보, 여당보다는 야당 후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보다는 낮은 후보가 더 높았던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자금은 정치 지망생들에게 높은 장애물입니다. 19대 대선을 분석한 연구를 봐도 그렇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전체 수입의 57.4퍼센트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48.8퍼센트를 차입금으로 충당했습니다. 유력 대통령 후보조차 자금 압박을 심하게 받는 상황에서 비당원이나 정치 신인의 선거자금 마련이 얼마나 큰 고난일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5장 젊은 정치인의 등장을 막아서는 것들」중에서
청년의 높은 참여율 못지않게 주목할 것은 이들이 주변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19년 총선에서 34세의 여성 총리가 선출되었는데, 이 시기에 연립정당을 구성한 4개 정당의 대표 중 3명이 30대 여성이었습니다. 이들의 공통 특징은 20대 중반부터 기초의원을 역임하며 경력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곧 청년에게 지방의원, 국회의원, 단체장, 정당 대표 등의 경력 지속성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능한 정치인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정당의 체계적인 인재육성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청년위원회 활동을 거쳐 기초의원 등 지방의원으로 일하게 한 뒤 중앙 정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정당이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이죠.
---「6장 캠프정치, 팬덤정치 그리고 룸펜 정치인」중에서
청년 정치인의 등장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은 무척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 이들의 정치권 진입을 위축시킵니다. 그중 하나가 지역주의에 따른 공천 카르텔입니다. 한 연구는 지역주의 정서가 만연한 곳일수록 정치부패 현상이 더 심하다고 보고합니다. 공천이나 후보 지명 과정, 이후 선거에 이르기까지 지역주의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결정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공천되기만 하면 당선되는 현실을 잘 아는 후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천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부패와 비리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죠.
한때 ‘오당사락’(50억 쓰면 당선되고 40억 쓰면 낙선한다)이라는 씁쓸한 농담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특히 영호남 지역일수록 당 지도부나 당대표의 의사가 지배적으로 작용하기에 자연히 공천이 투명하지 못했습니다. 지역주의 정치가 정당의 정책 개발기능을 퇴화시키기도 하지만, 정치 신인의 도전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장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7장 정치의 고령화와 청년 정치의 활성화」중에서
서구 사회는 사회적 인지도를 등에 업고 정계에 진출하는 셀러브리티보다 이른 나이부터 정치에 뜻을 둔 젊은이에게 많은 기대를 겁니다. 주요 정치인은 대개 청소년 시기에 교내 학생자치회에서 활동하며 정치적 경험을 쌓곤 합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는 지역당 또는 시민단체에 들어가 차근차근 정치인으로서 전문성을 갖춰나가고요.
이렇게 정계에 입문한 이들은 투명하고 공개적인 경쟁 속에서 능력을 평가받습니다. 아래에서부터 차츰 영향력 있는 자리로 올라가는 상향식 선발을 거치면서 더 큰 책임을 가진 위치로 전진합니다. 이것은 한국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그러므로 ‘청년 정치’라는 주제에서는 서구 사회의 모습을 보고 커다란 고민을 갖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째서 그들에게는 저런 것이 가능할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도 저들처럼 전문성을 갖춘 청년 정치인을 육성할 수 있을까요?
---「8장 해외에서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