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분노 폭발의 시기는 항상 뭔가, 엄마인 내가 정해놓은 스케줄을 감당하기 버거울 때마다 나타났다. 그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던 딸을 보며 ‘와~ 씨! 얘는 왜 벌써 사춘기가 와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나….’ 싶었다. 어떻게든 딸의 고집을 꺾어 이겨보겠다고 미친 듯 딸을 혼냈고, 딸은 그런 나에게 절대 질 수 없다며 심하게 대들었기 때문에 서로를 보며 미친 듯 싸울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 p.14
딸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먼저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어른의 기준에 맞춰 비교하고 가르치려 드는, 후진 어른, 한마디로 꼰대 같은 ‘어른질’을 하고 있었다는 걸 자각하고는 바로 반성 모드에 몰입했던 날도 있었다. ‘어른이라고 무조건 아이보다 나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아이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따라주는 어른이 되어야 존중받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 p.38
생각해보면 육아처럼 시간과 수고를 들인 만큼 결과가 바로바로 나타나지 않는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떨 때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지치고 힘들 땐 무너져버리기도 한다. 언젠가는 오래 전 뿌렸던 씨앗이 싹을 틔우며 아이에게서 조금씩 자라고 있었음을 발견하는 순간은 분명 온다고 나는 믿는다. 오늘도 나는 참을 인忍 자를 이마에 새겼다. --- p.65
내 욕심으로 만들어놓은 기준에 맞춰 따라가다 보면 그게 딸의 멘탈이든 건강이든 꼭 탈이 났기 때문에 사실 나는 좀 일찍부터 많은 걸 내려놓았다. 공부에 대한 내 욕심을 말이다. 내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에 맞춰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에 대해 너무 일찍 내려놓은 건 아닌지 엄마로서 너무 안주하는 건 아닌지 아이의 그릇 크기 자체를 키워줘야 하는 건 아닌지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고 확신이 들지 않는다. --- p.91
아이를 키우는 데 정답은 없다. 하지만 아이가 어떤 길을 가고자 할 때, 혹은 아이를 어떤 길로 인도하고자 할 때, 그 길을 가기 위한 여러 결정들이나 선택을 해야 할 때에는 다른 이들의 조언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게 뭐든, 내 아이 하나만 바라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그 결정을 하는 데에는 아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아이와 함께 결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학원 선생님도 아니고 친구 엄마도 아니고 바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 --- p.150
회사를 다닐 때에는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 주지 못해 미안했고, 육아 맘이 된 후에는 아이랑 하루 종일 붙어 지내며 늘어가는 나의 욕심 때문에 자꾸 싸우게 되는 것만 같아 미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같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날도 많았지만, 동시에 ‘아이에게 엄마란, 존재 자체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구나. 나는 엄마로 잘하고 있었구나. 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p.230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처럼 ‘엄마의 행복은 아이의 행복에서 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딸아이의 행복에만 집중하고, 내가 딸아이를 행복하게 해줘야만 나도 딸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행복을 다시 일깨워준 건 다름 아닌 딸아이였다. ‘행복이란 꼭 누군가 일방적인 노력을 통해 얻게 되는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 매일매일의 어떤 작고 소소한 기쁨을 찾는 게 행복이라는 것을, 그날의 내가 딸과의 사소한 대화를 통해 되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 p.248
나는 여전히 무엇이 육아의 정답인지 알 수 없다. 아마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무엇이 아이를 위한 최선인지 생각할 뿐이다. 아이마다 가진 저마다의 기질과 장점을 빛내줄 최선의 방법은 엄마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불안하지만, 나는 내가 아는 우리 딸의 기질과 장점을 최대한 존중해주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사랑하는 내 딸의 ‘중학교 3년 스토리’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길 응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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