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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240g | 130*200*10mm
ISBN13 9791197826108
ISBN10 119782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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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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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의 엄마가 되는 동안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비이성적인 죄책감은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 있으며, 열등감을 극복한다는 것과 열등감을 부정하는 것은 한 끗 차이일 수 있다는 것. 가면을 사용해 살아온 사람은 그나마 그 가면을 사용했기에 그때까지 죽지 않을 수 있었고, 자기를 손상시키든 자기를 고양시키든 따질 거 없이 뭐라도 붙들고 살아봐야 하는 시간이 세상에는 존재하더라는 것을 말이다.
--- p.6

아이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많은 걸 순식간에 다 잃어버렸는데도 여전히 한 생명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 목숨의 질김이 너무 이상하고 무서웠다.
--- p.18

나는 내가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았고, 내가 살고 있어야 할 어떤 세계에서 쫓겨난 것 같았다. 수치심. 그것은 지독히 단단하여 깨지지도 않는 거울이었다.
--- p.32

나의 삶을 아주 가까이에서 쭉 지켜본 이들이 아니라면, 언제라도 내 쪽에서 한번은 입을 열어야 했다. 그들과 다시 눈을 마주치려면, 그들과 다시 밥을 먹고 같은 얘기에 함께 웃으려면, 나는 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내게 이토록 커다란 일이 있으니 나를 좀 위로해달라거나, 내 당황스러움에 공감해달라거나, 제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네가 설명을 좀 해달라거나 하는 이유였을까?
--- p.46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몇 개의 시간을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몸으로 겪어내는 시간이 있고, 비로소 머리로 뒤늦게 이해하는 시간이 있으며, 가슴으로 느끼는 시간은 또 따로인 것 같았다.
--- p.49

나를 나로서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 나를 응원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그 어렴풋한 느낌이, 어느 한 토막의 시간을 완전히 베어내고 그때와 단절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조금은 바꾸었을까. 그렇게 도망치지 않아도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노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희망에 관한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 p.56

어쩌면 나는 아이의 시력이 상실됐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예전처럼 다시 앞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뇌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팔을 조금 더 움직일 수 있게 될 거란 이야기가 희망으로 들릴 것 같지 않았다. 무엇도 나를 여기서 조금도 빼내 줄 수 없을 거라 확신했고, 무엇에도 별로 애쓰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이어졌다.
--- p.57

아이가 보고 만지고 일어서고 움직였던 모든 흔적이 있는 곳에서, 이제 아이는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서는 하루 종일 힘주고 있다. 아무리 사과를 소리 내 잘라봐도,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엄마 이제 세탁기 돌린다” 다정하게 외쳐보지만, 슬쩍 돌아보면 아이는 누워 있다.
--- p.92

아이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아이를 관찰하고 들여다보며 몸을 재빨리 움직여대던 지난 시간들이 모두 나의 모성애일 거라 확신했지만, 실은 그러고 있는 나 자신을 사랑했던 지독한 자기애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떠올랐다. 아이를 통해 나의 인격과 나의 사랑을, 나의 그릇과 나의 인생을 증명해내려던 것이 아니라고 완전히 부정할 수가 없어서, 그리고 아마 그게 맞을 것 같아서, 슬프고 비참했다.
--- p.130

그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장애가 있는 이 아이를 우리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이 아이를 얼마나 미워해도 되는지에 대한 허락 같은 건 아니었을지 생각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나를 울게만 만든 아이를 미워하고 원망해도 된다고. 사랑이란 어차피 시간 위에 쌓이는 것이니 지금은 당황하고 서툴러도 된다고.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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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읽기보다 듣기에 가까울 것이다. 마주 앉아 들어도 좋겠지만 나란히 서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들으면 더 좋겠다. 다 듣고 나서 통찰력을 담뿍 담아 대답할 자신은 없다. 다만 타인의 이야기에 내 설움을 함부로 비비는 어줍잖음은 경계할 것이다. 들려준 이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는 마음으로 책을 한번 쓰다듬고 품에 안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 이제 다 잃고 없는데도 자기연민 하나 없이, 우리에게 그럴 시간이란 없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 페이지에 무한한 경의를 담아 아끼는 책갈피를 끼워둘 것이다.
- 이주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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