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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쓰는 밤

마음 쓰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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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382g | 125*200*20mm
ISBN13 9791191248739
ISBN10 1191248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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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말들에 휘둘리지 말고 깊이 대신 목소리를 찾을 것. 당장 최고가 되려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할 것. 그렇게 버티는 시간은 조금 오래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창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지난한 시간을 지나며 단단해지고 다듬어진다. 나다운 걸 찾아낸다. 날카롭고 유려하게 벼려서 단 하나의 점을 꿰뚫을 순 없겠지만. 뭐랄까. 내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좀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런 어떤 것. 당신만이 만들 수 있다.
--- p.42

그럴 때마다 나이 든 작가들의 삶과 글을 찾아 읽는다. 박완서, 오정희,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토니 모리슨……. 아이를 키우고 생활을 지키며 글 쓰던 작가들은 더딘 걸음을 어떻게 걸어갔을까. 그들의 글을 읽으며 글 쓰는 엄마로, 여자로, 나이 드는 일을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들처럼 대단한 필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쓰는 삶을 살아가는 마음이나 태도 같은 것들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작가들이 말한다. 지금은 서두르는 대신에 정성을 다해야 할 때, 너무 일찍 작가인 척하지 말고 충분히 자라라고, 천천히 영글어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라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부끄러운 내 글을 날마다 버리며 바란다. 자라라. 충분히 자라라.
--- p.82

마음을 쓸수록 닮은 마음들이 나에게 온다. 어울리는 독자를 잘 찾아간 마음이 다시 나를 찾아 돌아온다. 작고 조용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나에게 돌아와 마음을 다해 쓰라고 다시 붙잡아준다. 책뿐 아니라 마음에도 귀소본능이 있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나는 계속 쓰면서 실감한다. 돌아온 마음들에게 한 번쯤 전해주고 싶었다. 내가 만드는 책의 페이지에, 모든 이름을 불러주고픈 고마운 마음을 담아 답장하고 싶었다. “계속 읽어주기에 계속 쓸 수 있어요. 언제 어디서든 잘 지내요. 우리 기쁘게 다시 만나요.”
--- p.95

사람, 삶, 대화라는 화두는 평범하고 진부하고 때론 감성적이라며, 뻔하고 하찮게 여기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적 있는지.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 고민해본 적 있는지. 사려 깊은 말 한마디를 건네본 적 있는지. 오가는 그런 말들에 마음이 움직인 적 있는지. 그런 순간들은 정말이지 뻔하지 않다. 하찮지 않다. 매일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마음으로 살아본다. 사람이 잘 자라주어 기특하다. 이상하고 신기한 삶이 아름답다. 내가 고르고 고른 한 마디가 힘이 된다면 흐뭇한 일이다. 어느새 나는, 내가 나라는 게 더는 지긋지긋하지 않다. 잘 살아보고 싶어진다. 사람과 삶이 아름다운 것 같아서.
--- p.157

모든 글쓰기 수업은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기다린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리는 만난다. 웃는다. 이름을 묻고 이름을 기억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대단할 것 없는 태연한 만남 같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문밖에서 열 번의 주저함과 열한 번의 용기가 오고 갔다는 걸 안다. 실은 몹시 힘내어 문을 열고 들어왔음을 알기에 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나에게도 애쓰는 마음이 필요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기 때문에. 지금 눈을 마주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나는 알게 될 것이다. 여러 차례 만나는 동안에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속 깊게 관여하게 될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싶다.
--- p.182

글쓰기는 매듭짓기가 아니라 매듭 엮기다. 내 이야기에 내 방식대로 매듭을 묶어보고 다른 이야기로 연결해서 쓰고 묶는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 연결된 삶이라 생각해본다면, 나는 그것들을 내 방식대로 묶고 엮고 다시 이어갈 수 있다. 여러 번 실패할 테지만, 여러 번 다른 결말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그사이 나도 모르게 깊어진 사유와 새로운 희망 같은 걸 품고서, 깨끗하고 홀가분하게 내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다.
--- p.210

글쓰기 안내자가 되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끌고 이어주는 사람. 단순히 글쓰기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로 나의 이야기를 찾고 나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고 싶어서 ‘강사’가 아닌 ‘안내자’라고 스스로 이름 붙였다. 열 살 어린이부터 희수 노인에 이르기까지 성별, 연령, 직업 모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글쓰기를 안내했다. 어떤 이는 꾸준히 써서 책을 내고 작가가 되었다. 어떤 이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찾고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또 어떤 이는 사무친 이야기를 훌훌 털어내고 홀가분하게 살아갔다. 분명 글쓰기에는 힘이 있었다.
--- p.267

깨달았다. 나는 읽고 쓰고 가르치고 돌보는 내 일을 아주 사랑한다는 걸. 단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라는 사람이 나무나 바다처럼 자연스러운 존재 같다. 삶과 일의 분명한 경계를 생각해본 적 없다. 삶에도 글이 스미고 글에도 삶이 스미고, 삶은 삶끼리 스민다.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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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내 맘대로 올해의 책]
'나도 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따스하고 특별한 글쓰기 수업 이야기입니다.
- 김지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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