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가족이 되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 그 값이 너무 비싼 나머지 가족 없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치열한 가족 구조조정의 그 결과,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해졌을까? 가족으로서 주어진 과도한 부담을 피하고자 가족구성원을 줄여나간 결과 우리는 함께 사는 사람과 일상을 나누는 행복,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도와줄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포기하게 되었다. 가족 구조조정으로 위험은 줄일 수 있었지만 ‘돌봄 공백’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1부 ‘외로운 대한민국’」중에서
대한민국의 외로움은 이미 끓어 넘치고 있다. 국민들이 외로워져야만 굴러가는 이 사회를 똑바로 직시하지 않으니 이를 해결할 창의적인 방안도 찾지 않는다. 혈연가족과 살거나 결혼하는 게 답이 아닌 사람들에게 혼자 사는 게 최종적인 해결책일까? 우리는 같이 사는 사람으로부터만 찾을 수 있는 안전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불안과 외로움은 결혼을 포기하고, 부모와 살지 않은 죗값일까?
---「1부 ‘외로운 대한민국’」중에서
생활동반자법을 기반으로 함께 사는 가구가 늘어나면 일단 정부는 돈을 아낄 수 있다. 가령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상 2019년 최저 생계비용의 기준을 1인 가구 51만2102원, 2인 가구 87만1958원으로 잡고 있다. 단순 계산해 수입이 전혀 없는 두 명에게 생계급여를 지급할 때, 혼자 사는 두 명에게는 102만4204원을, 둘이 같이 살면 87만1958원을 지원해야 하므로 재정을 약 17%가량 절약할 수 있다. 게다가 둘이 같이 살면 최저 생계비용 이상의 소득을 가질 가능성이 커지므로 실제로 더 많은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
---「1부 ‘외로운 대한민국’」중에서
혼자는 힘들다.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은 이유는 다양하다. 정서적 충만, 경제적 안정, 장애 활동보조 등 이성애적 사랑에 비해 작은 이유라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지는 개인적·사회적 이유로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너무 익숙해서 그렇지, 사실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지를 국가가 굳이 따져 묻는다는 것이 더 어색한 일일 수도 있다.
---「2부 ‘서로 돌보며 함께 살지만’」중에서
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립 생활의 방식이 다양할수록 자립을 결심하기가 더 쉬워진다. 장애인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 권리라는 큰 틀 안에서 혈연·혼인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도 더불어 논의되어야 한다. 두 권리는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함께 이뤄나갈 수 있는 것이다. (2부 ‘서로 돌보며 함께 살지만’」중에서
‘결혼’외에 가족을 구성할 방법이 없는 건 섹스하지 않는 사람과는 애초에 가족을 만들 법적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가족 구성을 위해 ‘성애적 관계’를 반드시 전제하는 것은 차별이다.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함께 사는데 성적 관계가 필수일까? 신뢰를 담당하는 중추가 성기에 달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2부 ‘서로 돌보며 함께 살지만’」중에서
원하는 사람과 같이 삶을 꾸릴 자유가 헌법적 권리라면, 그 틀이 꼭 혼인이어야만 할까? 혼인제도는 하나의 선택에 불과해지고 있다. 개인의 가치관, 경제적 상황, 삶의 단계 등에 따라 결혼을 안 하거나 못 할 수 있다. 행복추구권이 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자기운명결정권을 포함하고 있는데, 내 운명 중에 혼인만 유독 자신의 의지로 바꾸지 못하는 상수일 수는 없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나 우리 사회의 공익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면 혼인만이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길은 아니다.
---「3부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중에서
생활동반자법은 누군가와 같이 사는 문제를 좀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가져온다. 혼인이 배우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와 맺는 계약이라면, 생활동반자는 둘의 동거에만 초점을 맞춘 계약이다. 그렇기에 생활동반자 관계의 해소는 이혼과 다르다. 생활동반자 해소는 어디까지나 사생활의 문제이며, 나의 사회적 신분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돈도 감정도 둘 사이에 잘 정리하면 된다.
---「3부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