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언제 다시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지 기약은 없지만 이 책에 담긴 나의 여행이 그대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일상의 경계에 작은 점을 뚫는 돌파구가 되길 바란다. --- p.7~8, 「프롤로그」 중에서
* 지금은 이곳의 추천 메뉴인 밀크 타르트를 먹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바삭. 타르트 한 입. 끄적. 한 글자. 할짝. 크림 한 입. 슥슥. 한 문장 더. 밀크 타르트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했으며, 달달하면서 우유 향 가득한 필링이 들어 있었다. --- p.140, 「요하네스버그 안전합니다」 중에서
* ‘베네치아에서는 모든 게 비현실적이구나. 물 위에 떠 있는 집, 거미줄처럼 이어진 거리, 곳곳에 숨어 있는 레스토랑,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 청량한 하늘과 쫄깃한 젤라토까지. 이곳에서라면 토끼가 보름달 속에서 방아를 찧는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아.’ --- p.196, 「베네치아 팔레트」 중에서
* 비상구에 붙어 있는 작은 창문으로 개기월식을 지켜봤다. 이렇게 가까이서 월식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비행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 사건과 맞닥뜨리는데 그중 제일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현상이다. --- p.196, 「베네치아 팔레트」 중에서
* 아, 배지도 하나 샀다. 개성 넘치는 맨체스터와 어울리는 프리다 칼로의 명언이 적혀 있다. “나는 나만의 뮤즈다(I’m my own muse).” --- p.210, 「UTC+0」 중에서
* 밤을 넘어 새벽 비행을 할 때면 해와 달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한쪽에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를 때 다른 한쪽에선 뿌연 어둠 속 달이 공존하는 순간. 고요한 밤 비행이었다. 그럴 때면 신비로운 힘이 나를 지배하는 듯 착륙 후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 p.235, 「밤 비행이 좋은 이유」 중에서
* 승무원으로서 매일같이 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며 항상 궁금했다. ‘과연 저 사람들도 밤 비행을 좋아할까?’ 혹시 그동안 밤 비행기를 피했다면 일부러라도 타보길 바란다. 육체가 정신을 따라가는 진귀한 경험을 해볼 수 있을 테니. --- p.236, 「밤 비행이 좋은 이유」 중에서
* 내 여행엔 테마가 필요했다. 여행 잡지에서 본 사진 한 장에 반해 여행지를 정했고,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또 영화 속 장소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열망에 취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 p.240, 「여행 대신 경험을 수집합니다」 중에서
* 파리에서 크루아상을 구워보고, 발리에 가서 요가 수업을 받고, 교토에서 기모노 차림으로 신사를 구경하고, 또 밀라노에서는 바리스타 체험을 해보자. 자신의 여행 취향이 보일 것이다. 이것은 내 피부색이 웜톤인지 쿨톤인지 파악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나에게 맞는 여행을 찾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누군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 p.245, 「여행 대신 경험을 수집합니다」 중에서
* 이제는 안다. 에펠탑 근처에 살았다고 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는 것이 아님을. 하지만 오랫동안 목표한 바를 이뤘다는 감동, 그동안 내린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기쁨,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 p.259, 「이것은 실제 에펠탑 뷰입니다」 중에서
* 오늘 아침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서며 지난여름 프랑스에서 사온 그 선크림을 발랐다. 은은한 선크림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갑자기 니스의 쪽빛 바다가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선크림 냄새 덕분에 겨울보다 더 삭막한 3월 한국 땅에서 니스를 봤다. --- p.292, 「여행의 향기가 느껴진 거야」 중에서
* 향기와 결합한 여행은 언제나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헬싱키에서 시벨리우스 공원을 찾아가던 길. 첫 끼로 커다란 시나몬롤을 끝장낸 후 자전거를 타고 공원 안 카페 레가타에 도착하기까지 여정은 세상에 시나몬 향이 존재하는 한 뚜렷하게 기억될 것이다. 또 라벤더 에센스오일 한 방울 떨어뜨린 디퓨저를 틀어놓을 때면 남프랑스 아비뇽의 작은 마을들과 가이드의 얼굴이 떠오른다.
--- p.293, 「여행의 향기가 느껴진 거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