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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 먹는 기분

기내식 먹는 기분

정은 | 사계절 | 2022년 11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7 리뷰 15건 | 판매지수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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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 먹는 기분 (큰글자도서)
[도서] 기내식 먹는 기분 (큰글자도서)
정은 저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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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 먹는 기분 (큰글자도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404g | 140*220*13mm
ISBN13 9791160949810
ISBN10 1160949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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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지상에서 먹는 기내식의 맛, 여행의 맛
박형욱 (kaeti@yes24.com)
여행은 좋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이 좋음을 다른 이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생각과 문장과 상상력과 말솜씨가 필요할 것이다. 듣는 입장에서도 엄청난 인내와 공감과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을 기꺼이 포기할 줄도 아는 넓은 마음이 필요할 테다. 어쩌면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은 그나마 그 여행의 좋음을 (훗날의 나를 포함해서) 상대가 납득할 수 있게 보여줄 만한 것은 사진 뿐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니까 각자의 이 기분을 딱 알맞게 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은데, ‘기내식 먹는 기분’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될 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 먹는 기내식은 음식의 종류만 다른 것이 아니라 ‘맛’이 다르다. 떠날 때의 기내식이 여행의 첫 식사로 들뜬 맛이라면, 돌아올 때의 기내식은 거기에서 설렘이 빠진 조금은 무거워진 맛. 여행이 남긴 것들을 꼭꼭 씹어 삼키면 그렇게 여행이 마무리 되는 듯하다. 그곳과 이곳 사이에서 먹는 식사는 소화가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집에 돌아오고 일을 하고 걷고 읽고 쓰는 동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소화되어 내 안의 곳곳으로 퍼진다.

『기내식 먹는 기분』은 그 과정을 그리게 한다. 여행을 맛보고 소화시켜본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다가올 여행을 기대하게 한다. 작가는 ‘여행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정확한 내가 되도록 한다.’고 말한다. 여행을 통해 내가 아닌 부분들을 나에게서 하나 둘 덜어낸다는 것이다. 사는 일이 그런 것처럼.
여기 한 여행자가 산티아고에서, 인도에서, 미국의 피츠버그에서, 한국에서 살아낸 시간들이, 삶의 조각들이 따뜻한 네모 그릇 안에 빼곡히 담겨있다.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사진도 한번 찍고 하나하나 집어 들어 맛을 본다. 어떤 것은 입에 꼭 맞을 테고 어떤 것은 영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또 좋다. 지상에서 맛보는 기내식은, 여행은 그 자체로 무척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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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은 ‘기내식 먹는 기분’으로 먹는다. ‘기내식 먹는 기분’의 맛은 땅 위의 어느 식당도 재현할 수가 없다. 이게 마지막 식사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그 맛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중에서

이 비행기가 멈추면 내 삶도 멈춘다는 간결한 사실이 마음에 든다. 아무런 변명도 없이, 말끔하게 사라질 수 있다.
---「프롤로그」중에서

매번의 여행에서 나는 내가 아닌 것들을 조금씩 덜어낸 뒤 돌아왔고, 세공하듯이 점점 나인 것만 남았다. 여행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정확한 내가 되도록 한다.
---「프롤로그」중에서

사람이 거의 방문한 적 없는 곳의 자연들은 민낯이다.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 없이 스스로의 아름다움에만 취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자연들. 맨살을 찢으면서 걸어간다는 느낌으로 그런 곳을 걷고 있으면 자연은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을 슬며시 보여준다.
---「길의 뒷모습」중에서

“객창감이란 건 아마도 타국에서 혼자 머무는 방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어스름한 달빛 같은 게 아닐까요.”
---「객창감」중에서

그에겐 어떤 위태로움이 있었다. 그런 종류의 사람을 종종 스칠 때가 있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슬아슬해지는, 가서 붙잡아줘야만 할 것 같은 사람들.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저 사람을 사랑하면 결국 내 마음이 부서지겠구나 미리부터 알게 되는 사람들.
---「빛의 도시」중에서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사랑과 신도 존중할 수 있게 됩니다. 존중한다는 건 믿을 수 있다는 얘기고 믿을 수 있다면 느낄 수 있죠. 그러니까 모든 것들이 가능해집니다. 신이 된 것처럼.”
---「타블라」중에서

담요를 걷고 밤을 마주 보고 앉아 옥상들 사이사이에 말없이 스며 있을 골목에 대해 생각했다. 한낮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던 선한 소들이 한꺼번에 자리에 주저앉는, 바라나시의 밤이 살짝 내려앉는 순간에 대해. 그 순간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의 적요로울 심장 박동에 대해.
---「바라나시의 밤」중에서

지구도 늘 거울을 들고 있다. 전파망원경은 지구가 힘겹게 들고 있는 거울이다. 도달하기까지 아주아주 오래 걸리는 먼 곳에 있는 누군가를 위해 들고 있는 작고 외롭고 쓸쓸한 거울이다.
---「지구의 거울」중에서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볼 때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잘 알게 된 두 사람이 마주 선 몸을 돌려 나란히 앞을 보고 각각이 하나의 눈인 듯 두 개의 관점을 가진 한 생명체처럼 움직일 때 더 큰 힘을 갖는다. 그걸 배우기까지 참 많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연인들」중에서

비바람 속에 나뭇가지들이 서로 문지르며 소리를 낼 때 인간은 서로의 감정을 할퀴어서 상처를 내는 데 몰두한다. 굳은살이 새겨진 감정을 획득한 자만이 평화롭게 눈 감는다. 평생 뒤집어진 안팎을 다시 뒤집으려고 노력하다가 땅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마는 존재, 그게 바로 인간이 아닐까.
---「뒤집혀진 인간」중에서

커피 한 잔의 맛은 그 모든 것의 합이다. 내가 나인 것을 잊고 그 맛을 온전히 느끼고 있을 때, 그 순간 자체가 나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이 말의 뜻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한때 같은 ‘나’인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합정동 359-33번지」중에서

하지만 평소 가던 길과는 다른 방향을 처음 선택한 건 나 자신이다. 내가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은 그런 의미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스스로를 믿고 한 발 내딛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에필로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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