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가 지나면 아버지는 체육사 건너편 제과점에서 500원짜리 햄버거와 바나나우유를 사 왔다. 1984년도 9살 시골 소년에게 햄버거는 경외 그 자체였다. 고작 케첩에 싸구려 패티와 쓴맛이 나는 양배추가 버무려진 햄버거였지만 좋았다. 하지만 사실 더 좋은 건 아버지와 야구를 보는 것이었다. 당시 나의 라이언 킹은 아버지였다.
--- p.19~20, 「나의 라이언 킹」 중에서
장미여관의 노래를 들으며 나와 같은 직장인이었던 아빠 냄새를 떠올려 봤다. 그 냄새는 선지해장국 냄새였다.
아버지는 힘든 날이면 선지해장국에 소주를 마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는 다짐했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 회사 다니느라 힘든 우리 아버지께 선지해장국에 비싼 수육까지 꼭 사드려야지라고.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쉬운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 p.39~40, 「나는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먹고 자랐다」 중에서
나는 20년 넘는 회사 생활이 고되긴 했지만, 주말이나 휴가 때는 쉬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들은 남편과 자식들이 쉬는 휴일에도 끼니를 준비했다. 분명 엄마의 끼니가 통장에 잔고로 남지는 않았지만, 자식들에게 사랑으로 누적되었을 것이다. 사장님이 모든 직원을 돌볼 수 없어 법인카드를 만들었고, 신이 모든 인간을 돌볼 수 없어 대지에 어머니를 내리셨다고 한다. 엄마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좋게 들리진 않지만, 살아보니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된다. 엄마의 청춘과 맞바꾼 끼니가 없었다면 나의 청춘은 참으로 곤궁했으리라.
--- p.47, 「엄마의 끼니」 중에서
곶감과 자전거로 대표되는 나의 옹산은 인구 십만의 소도시다. 어린 시절에는 그놈의 곶감 때문에 과자를 먹을 기회를 박탈당하기 일쑤였다. 엄마에게 백 원만을 외치면 ‘곶감 있잖아’라는 대답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샤브레나 맛동산을 사 먹는 도시 아이들이 부러웠고, 곶감이 그렇게 지겨웠다.
(중략) 그때는 그랬다. 자전거 대신 자동차를 타고 싶었고, 곶감 대신 과자를 먹고 싶었으며, 감나무 대신 가로수가 즐비한 길을 걷고 싶었다. 한마디로 이곳을 떠나기만을 갈망했다.
--- p.56~57, 「당신의 옹산은 어디인가요」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이승환에, 내 친구 욱제는 신승훈에 열광했다. 욱제를 이승환 음악에 입덕시키기 위한 나의 노력은 눈물겨웠고, 녀석의 지조는 쓸데없이 드높았다. 그런 욱제를 무너트린 곡은 바로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이었다. 그때는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는지, 나중에는 CD가 아니라 테이프인데도 불구하고 오직 손끝 감각으로 노래의 정확한 시작점으로 찾을 수 있었다.
--- p.68~69, 「내 인생의 가요톱텐」 중에서
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코비. 그의 죽음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그와의 이별이 나의 과거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진 듯한 느낌,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했던 것과의 이별에 의연해지는 순간, 나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 p.81, 「Dear my Basketball」 중에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속도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동안 속도에만 포커스를 맞추다 이 꼴이 났다. 이제는 조금은 느리게 나아가려고 한다. 물론 세상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르게 돌아가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 p.155, 「스트레스 지수, 제 점수는요?」 중에서
인생이 이렇다. 포기만 안 하면 된다. 왜 야구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도 야구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건 이 책을 읽는 독자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하는 주문이기도 하다. 지지 마라.
--- p.164, 「토익 260점이 살아가는 법」 중에서
한때 대형서점의 한 코너가 ‘퇴사’에 관한 책들로만 채워진 적이 있었다. 책 제목만 봐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짜릿한 제목들. 물론 현실은 책 제목들처럼 녹녹하지가 않다. 퇴사 이야기는 ‘공주와 왕자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의 결말과 비슷하다. 이렇게 퇴사 후의 삶이 근사해질 확률이 희박함을 이미 알기에,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나마 대리만족을 느끼려 했던 건 아닐까?
--- p.185, 「나는 퇴근 후 녹음실로 간다」 중에서
모든 일정은 끝이 났다. 다시 집에 갈 것을 생각하니 묘한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정신만은 아주 튼튼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별거 없던 절에서의 일정이 이런 큰 위로를 선물할 줄은 몰랐다. 비록 이 모든 긍정 파워가 월요일 출근과 동시에 연기처럼 사라질지라도, 이런 작은 휴식들과 재충전이 모여 올해의 나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짧게나마 정들었던 사람들과 인사하고 절을 내려가니, 저 멀리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올 한 해도 우리 가족 잘 부탁한다, 김 차장!
--- p.195~196, 「템플스테이, 속세 탈출 넘버 원」 중에서
막상 20년 만에 친구들에게 글로 마음을 전하려고 하니 손발이 저렸다. 맘 같지 않은 손을 움직여 항상 해피 바이러스를 뿜어내는 그에게는 탈모 탈출, 발모의 기적을! 프랜차이즈 사업에 첫발을 들인 이에게는 백종원의 신화를, 골프광 친구에게는 프로골퍼 테스트 통과의 기적을 빌어주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그 녀석에게는 로또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 p.214~215, 「40대 소년들의 송년회」 중에서
온종일 BTS 노래를 들은 그날, 퇴근하고 동갑내기 아내에게도 다이너마이트를 들려주었다. 며칠 후 출근길에 아내가 메시지 하나를 보내왔다.
“BTS 빌보드 핫 100 1위, 팝의 역사를 새로 쓰다.”
코로나에, 장마에, 태풍에, 폭염에, 미세먼지에! 지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여성호르몬이 용솟음치는 나이에 걸맞게 버스 안에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또한, 아재답게 IMF 시절 맨발의 박세리와 하이킥 박찬호의 분투를 통해 위로받던 시절을 떠올렸다.
--- p.218~219, 「코로나의 중심에서 BTS를 외치다」 중에서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살기를 욕망하면서 남들이 가는 길만 따라간다. 니체는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본캐는 남들이 가는 길만 따라가다 선택 당했지만, 부캐는 내가 만들 수 있다.
이제는 머리로 상상만 하고, 가슴속 깊숙이 숨겨두었던 부캐를 꺼낼 시간이다.
--- p.231, 「김 차장의 부캐는 작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