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의 도우미에서 인간의 감시자로, 다시 인간의 대체자로 진화하는 로봇을 전개하는 이 3인칭 소설은 조지 오웰 식의 디스토피아를 공상하는 우울한 SF다. 기억의 삭제 및 이전을 통해 언맨드(인간의 無化)를 추진하는 인텔리전스 유니언(IU)이 이 소설의 빅브라더이거니와, 작품 끝에서야 최후의 인간 3인(영기?하정?정석)이 겨우 점지된바, 그야말로 길은 시작되었는데 여행은 끝난 셈이다. 이미 인간-기계 잡종 시대에 성큼 들어선 우리들의 시대에 자칫 21세기판 러다이트운동이 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독한 인간중심주의의 임계점에 대한 사유를 촉구하는 이 소설은 SF를 빌려 SF를 부정하는 탈경계의 텍스트로서 벌써 종요롭다.
- 최원식 (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인간처럼 되려는 로봇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되묻고 있다. 로봇과 휴머니즘은 많이 다루어져온 소재지만 윤리적 질문을 파고들어 새로운 실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킨 점이 돋보인다. 공감도 높은 문제적 인물, 다듬어진 문장과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 방식, 특히 권력과 욕망의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설득력 있다. ‘기억이 우리의 미래’라는 명제 또한 여운을 남긴다.
- 은희경 (소설가)
작가는 스마트한 검객이다. 로봇이라는 양날의 검(劍)을 다루면서 한 치의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확하고 절제된 문장과 탄탄하게 설계된 스토리로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읽을수록 예상과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은 끝까지 긴장을 멈출 수 없게 한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결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진화는 어디까지인가. 진화한 로봇은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며 인간의 사랑을 욕망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명제를 고민하고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주인을 떠나거나 스스로 작동을 멈춘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 스스로 데이터를 초기화시키며 인간의 기억을 이식받아 인간의 이름으로 태어나려는 로봇들. 인간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사람이 곧 바이러스고, 인간이 잉여로 전락할 가까운 미래가 두렵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내가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 권지예 (소설가)
소설은 이야기이면서 사유의 모험이기도 하다. 『언맨드』에서 이야기와 사유는 잘 설계된 구도를 따라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부드럽게 나아가고 상승한다. 본격 궤도에 오른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욕망과 기억이라는 오래된 테마는 인간에 대한 질문과 재정의의 흥미롭고 신선한 소설적 질료가 된다. 여러 지점에서 시작된 다층적 이야기의 선들을 모아내면서도 밀도와 공감의 힘을 잃지 않은 작가의 능력에 신뢰를 보낸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
『언맨드』 속 로봇에게 ‘정교함’이란 얼마나 인간화되느냐이고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두려운 건 바로 인간화된 로봇들이다. 오아시스의 〈Cigarettes & Alcohol〉을 들으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로봇의 모습은 숨 막힐 듯 아름답다. 로봇은 예술을 향유하고 창작 활동에 참가할 뿐 아니라 불평등에 반기를 들고 죄의식을 느낀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인류가 인류를 파괴해온 그 방식 그대로 자신의 종족을 잔혹하게 파괴한다. 작가는 섣부르게 희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무인의 시대,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라질지라도 인간의 본능은 그대로 남아 인류가 답습해온 시행착오들이 여전히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을 묵시록처럼 보여준다. 인간성에 대한 희망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하게 되는 그 장면은 너무도 익숙하고 그렇기에 두렵다.
- 하성란 (소설가)
근미래의 어느 날, 당신은 차를 운전해 고속도로를 지나며 로봇 판매용 광고판을 본다. 어떤 로봇을 구입할까, 집을 나가는 로봇도 있다는데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해! 당신은 한껏 기대에 부푼다. 이미 사람들은 어시스턴트 로봇이 주는 정신적 충만감에 빠져 있다. 로봇의 소유 여부가 사회적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신분이나 자산 규모에 더해져 새로운 계급화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게다가 로봇은 인간만의 고유한 예술적 창조 표현 영역을 포함해 대학 등 의 지식산업 세계를 점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영역을 대체할 로봇의 세상, 그 세상의 풍경과 인간이 『언맨드』에 있다.
- 강영숙 (소설가)
인간이 로봇을 바꿀 수 있다면 로봇도 인간을 바꿀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수많은 편의를 얻는 동시에 숱한 편의 위에서 재구축된 새로운 인간성을 규정해야 하는 불편과 혼란에 직면할 것이다. 이 혼란은 미래의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이자 현재의 인간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다. 누구도 절박하거나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이 이름뿐인 숙제가 되어버렸지만. 『언맨드』를 읽기 전까지 나도 이 골치 아픈 숙제 앞에서 늑장 부렸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외면하고 싶었다. 더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언맨드』의 가치는 충분하다. 로봇의 가능성과 인간의 불가능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폭발하는 철학적 질문들은 로봇이라는 다른 존재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을 적시하고 있다. 『언맨드』는 아직도 숙제를 시작하지 않은 우리에게 도착한 최후의 데드라인이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