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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 없는 神 앞에

神 없는 神 앞에

: 토기장이가 빚은 질그릇

오승재 문집-2 단편이동
오승재 | 북랩 | 2021년 06월 1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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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86쪽 | 428g | 153*224*14mm
ISBN13 9791165398422
ISBN10 1165398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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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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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하고, 크리스마스 보너스가 나오는 날 아침이었다. 갑자기 식모가 자진해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의외의 반가운 소식이었다.
“왜 갑자기 그만두려고 그러세요.”
아내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나 명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엊저녁 밤에 예수님이 나타나서 나보고 북쪽으로 가라고 하등만요.”
“북쪽이요?”
“내가 양을 먹이는디 풀이 갑자기 노랗게 죽어버리는 것이 아닝게라우. 그래서 근심했더니 걱정 말고 북쪽으로 가라고 하드랑게요.”
“그래서 북쪽 어디로 갈려구요?”
곽 선생이 호기심이 생겨 물어보았다.
--- p.31, 「식모」

전등을 확 켜자 잠결에도 눈이 부셨는지 왼편으로 돌아누우며 이 양은 오른발로 이불을 휘감아 안았다. 핑크빛 파자마 사이로 희멀건 허벅지가 탐스럽게 드러났다. 얄밉게도 흰 살결에 오뚝한 콧날, 우묵한 눈자위가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퍽 요염하게 비쳤다. 탐욕스럽게 그녀를 쳐다보는 손님들은 그녀를 이 양이라고 부르는 대신 마 양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꼭 서양 마네킹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미국 GI와 한국 여인 사이에 태어난 가련한 고아라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아마 공부를 시키고 기능만 길렀더라면 그녀는 다방에만 묻혀있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정혜란은 그녀의 궁둥이를 철석 갈겼다. 그리고 부스스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 양아, 오늘은 네가 밥 좀 해. 식모(가사도우미)가 집에 가고 없지 않니?”
그리고는 또 계속했다.
--- p.63, 「신 없는 신 앞에」

“형님, 너무 도도하게 굴지 마십시오.”
“무슨 소리요? 내가 잘못 들었소?”
그들은 교대로 거침없이 물어댔다.
“형님, 도대체 삭발한 이유가 뭐요? 이유나 들어봅시다.”
또 삭발 수난이 시작되는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정말 오해는 말아줘. 난 삭발이 내 개성에 맞는 조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된 거요.”
“그거 좀 이유치고는 치사하고 비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이요.”
“그럼 한 가지 더 물어봅시다. 형은 요즘 사태에 대해 전혀 울분을 느끼지 않습니까?”
“요즘 사태라뇨?”
“꼭 말을 해야 합니까? 형사들이 학원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 서울에서지만 교수나 동료 학생들이 구속된 일 등등 말입니다.”
--- p.131, 「무료한 승부」

그녀 쪽으로 돌아눕지 못하고 꼼짝할 수 없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늘 사랑해 온 긴 머리칼이 내 팔 위에 놓여 있었다. 팔뚝의 맥박이 크게 뛰어 그녀의 머리에 방망이질을 하는 것 같았다.
“왼손 좀 줘 봐요. 손금 봐 줄게요.”
“뭐야, 또 수상도 보시나?”
나는 왼손을 펴 보였다.
“어머, 성공 줄이 기세 좋게 뻗었는데.”
“성공하려나 보지?” 나는 또 물었다. “오래 살겠나 봐 줘요.”
“팔십까지는 살겠는데요. 초년고생이 많군요.”
“돗자리 깔아도 되겠는데. 마누라 복도 있는지 봐 줘요.”
“응, 복이 많겠어. 그런데 서른두 살 때쯤에 결혼하겠는데요.”
“뭐라구? 노총각이 되어서? 그럼 마누라 복이 없잖아.”
--- p.160, 「액자 속의 인생」

“강춘석 집사.”
드디어 호명이 시작되었다.
“삼십 만 원이요.”
모두들 엄숙한 얼굴이 되었다. 시작이 이렇게 되고 보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다음 곽상수 집사.”
“십만 원이요.”
좀 기가 죽은 목소리였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호명이 있을 때마다 북채로 가슴을 쾅쾅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나는 얼마로 정해야 할 것인가?
--- p.181, 「건축헌금」

“잘들 논다. 누가 주인이야?”
“나요.”
경희는 손을 번쩍 들며 앞으로 나갔다. 사나이는 놀란 듯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칼을 한번 휘둘렀다.
“거기 서 있어. 누가 상 줄라고 부른 줄 알아?”
그러더니 담요를 나머지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라고 말하며 담요 위로 머리통을 밟았다.
“돈 내놓아. 시간 없어.”
“우리는 돈 놓고 쓰지 않아요. 개인 수표를 써 드릴까요?”
경희는 딸 슬기를 꼭 껴안고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한때 개인 수표(personal check)가 유행할 때였다.
“뭐야? 누가 지금 장난하자고 그랬어?”
“정말이에요. 보여 드릴게요.”
그녀는 농 서랍 문을 열어 서랍을 빼 보여주었다.
--- p.234, 「왜 그렇게 되었어」

6.25 때 그가 떠난 뒤 행여 집으로 들어올까 해서 문도 잠그지 않고 놋그릇에 밥을 담아 털실로 짜서 만든 그릇 덮개로 씌우고 아랫목 이불 속에 넣어놓고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그 아들은 성질이 급해서 싸움을 잘하고 그럴 때면 늘 제 아버지께 매를 맞고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었다. 그럼 고개 하나를 넘으면 있던 큰댁에 피해 있었는데 그녀는 아들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남편의 독특한 처벌 방법 때문에 아들을 데리러 가지도 못했다. 남편의 분노가 가라앉기까지 기다리면서 반찬과 국물을 남겨 놓고 가서 달래어 데려온 뒤 따뜻한 밥을 하고 국을 데워서 따로 차려주곤 했었다. 남편은 칠 남매 중에서 왜 그 애만 그렇게 미워했던 것일까? 아마 그가 자기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6.25가 되자 그는 집을 뛰쳐나가 버렸다. 똑같이 사랑했지만 제일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던 아들이 이렇게 멀리 떠나 버린 것이다. 임봉녀 할머니는 어떻게 하면 그에게 자기의 한결같은 사랑을 전해 줄 수 있을까 하고 늘 안타까워했었다.
--- p.257, 「내 손으로 밥 지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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