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11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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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16쪽 | 354g | 135*193*17mm |
ISBN13 | 9788960907003 |
ISBN10 | 8960907006 |
[예스24X마음산책] 1권 ↑ 코너 책갈피 2종 / 2권 ↑ 시 드로잉북 2종 (각 택1, 포인트 차감, 한정수량)
발행일 | 2021년 11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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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16쪽 | 354g | 135*193*17mm |
ISBN13 | 9788960907003 |
ISBN10 | 8960907006 |
MD 한마디
[낯설고 감각적인, 여기 너머의 이야기] 소설가 김초엽이 '산뜻한 이야기의 마을'에서 수집해온 열네 편의 이야기. 미래로 우주로 떠나 그가 펼쳐놓는 상상들이 기분 좋게 감각을 깨우고, 오늘의 사람들이 대면한 현실의 고민은 이 낯선 세계에서 새로운 목소리로 다시 말을 건넨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우리 이렇게 함께하면 어때요. -소설MD 박형욱
작가의 말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 선인장 끌어안기 - #cyborg_positive -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 - 행성어 서점 - 소망 채집가 - 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 - 포착되지 않는 풍경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 늪지의 소년 - 시몬을 떠나며 - 우리 집 코코 - 오염 구역 -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 가장자리 너머 |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그냥 이렇게 물으면 막연할 것 같아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해를 구했다. 왜 이런 질문이 나왔을까를 알고 나면 이야기가 더 궁금해질 거라 기대하며.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궁금하긴 한데 별로, 라는 허무한 답변. 괜찮은 책이 있다고 알리면 읽고 싶다는 반응를 기대하는데 내 마음 같지 않은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내가 생각하는 세계와 다른 이들의 세계는 달라도 너무 다르고 그들의 생각을 내 생각에 맞추는 일은 불가능함을 다시 깨닫는 기회가 된다.
이 책 <행성어 서점>을 읽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넌지시 던진 미끼가 통하지 않았던 것. 미끼라고 해봐야 책을 읽게 하겠다는 건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부하면 조금 허탈해진다. 미끼처럼 던진 말,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는 이 책 '선인장 끌어안기' 편에 나오는 말로, 이 책을 미리보기만 보고 사게 된 결정적인 문장이다. 이런 주제를 다룬 이야기가 있을 거란 기대가 이 책을 구입하게 했다. 내가 그랬듯이 다른 이도 그럴 거라 기대했던 건데, 순전히 내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타인의 현실의 결에 완전히 접속하지 못할 거야.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갖고 있지. 만약 그렇게, 우리가 가진 현실의 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57쪽)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라 해도, 깊이 사랑하는 관계라 해도 서로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각자 다른 몸을 살면서 다른 것을 감각하며 살아온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건, 내 생각에 동의를 구하려는 건 불가능한 일을 해보겠다는 시도가 아닐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란 말은 사회성을 키워온 사람들의 입바른 말이 아닐런지. 그래서 좋은 관계는 상대의 생각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말 성숙한 사람일텐데, 그게 쉽지 않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람조차 완전히 멈추었고, 정적 사이에 사각사각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는 소리만이 끼어들었다. 리키는 가만히 그 소리를 들으며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을, 언젠가는 결국 사라지고 말 순간을 지켜 보았다. (106쪽)
삶에 의미를 담기 위해 순간을 살라고 자주 나를 다그친다. 순간을 살아낸다는 건 순간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살겠다는 의미다. 그게 가능하려면 매순간 내가 감각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어떻게 내게 받아들여지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감각만으로 세상을 경험할 수밖에 운명이라면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것보다 과거에 박제된 느낌, 미래의 막연한 생각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허비할 때가 많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 최대한 주의집중할 때, 내가 가진 지식과 지혜가 빛을 서서히 찾는다. 삶을 예민하게 더듬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래야 새로이 접하는 누군가의 생각과 경험에도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 편견을 벗어나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소설 읽기는 나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다. 낯선 세계일 수밖에 없음에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이유는, 그 세계에서 내가 가진 편견을 벗고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낯선 이야기가 친근하게 바뀔 때 더 깊이 새롭게 각인되는 것들이 있다.
개별적 개체성, 그게 인간일 때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어.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했지.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일부라는 건 모순이 아니야. 아니면, 전체라는 건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118-119쪽)
읽고 생각하는 세상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싫어하는 줄 알면서 주위 동료들에게 가끔 미끼를 던진다. 누구나 우선하는 일이 다를테니 강요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일과 중 독서가 아무런 비중도 차지 하지 않는 건 조금 안타깝다.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인데도, 각자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인데도 약간의 영향을 주고 싶은 욕심이다. 읽고 싶은 책, 좋아하는 책이 있다고 하면 무척 반갑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가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욕심인 줄 알면서 미끼 던지기는 계속 된다.
지금까지 김초엽 소설 두권 봤다. 이번에 본 《행성어 서점》은 세번째다. 여기에는 짧은 소설 열네편이 실렸다. 열네편이지만 뒤쪽에 나오는 몇편은 이어졌다. 뒤쪽 소설 보기 전에 우연히 김초엽이 읽은 책 이야기를 쓴 글을 봤다. 그 책은 《작은 것들이 만든 커다란 세계》(멀린 셸드레이크)로 균사체 이야기가 담겼다. 그걸 읽고 여기 담긴 소설을 썼나 잠시 생각했다. 균사체는 서로 이어지고 서로 도왔다. 나무 뿌리에도 그런 곰팡이가 산다고 한 것 같은데. 지구에 외계 식물체가 침입했을 때는 사람이 미치기도 했는데, 어떤 지역에 사는 사람은 괜찮았다(<오염 구역>). 그 사람들 몸에는 버섯이 났다. 사람 몸에 버섯이 나다니. 그런 거 만화에서 본 적 있다. 만화에서는 독버섯 같은 걸 먹었더니 머리에 버섯이 났다. 버섯 먹고 죽지 않아 다행이구나.
한사람 소설을 여러 권 보다보면 예전에 본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지금 생각났는데 김초엽 소설에서 가장 처음 본 건 단편으로 《원통 안 소녀》였다. 젊은작가상 받은 게 처음이다 했는데. ‘원통 안 소녀’에 나온 사람은 그곳 공기에 부작용이 있었고 클론도 나왔다. 모든 사람이 어떤 것에 다 적응하는 건 아니다. 백신도 부작용이 큰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도 생각해야 하는데 세상은 그러지 않는다. 모두가 같아야 하고 같은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면 안 될 텐데. <행성어 서점>에서 파는 책도 마찬가지구나. 그건 말이 사라지는 걸 떠오르게 했다. 사람이 쓰는 말도 그걸 쓰는 사람이 없으면 사라진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사라지는 말이 있겠지. 그런데도 오래전 글자는 알려고도 하는구나. 그건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 그런다.
사랑은 고통을 주지 않는 건지, 고통을 견디는 건지 생각하게 하는 건 <선인장 끌어안기>다. 누군가와 닿으면 아주 아픈 사람 실제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런 사람 이야기 본 것 같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접촉증후군이라 한다. 그런 사람이어도 누군가와 닿고 싶은 마음 있지 않을까 싶다. 서로 고통을 주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지만. 그걸 선인장 끌어안기에 비유했구나. 선인장은 가시투성이여서 끌어안기 어렵다. 가시가 많은 고슴도치는 함께 있지 않던가. 고슴도치는 서로를 찌르지 않고 닿는 방법을 아는 건지도. 사람과 사람은 서로한테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사랑이겠지. 이렇게 생각하지만 난 상처받고 싶지 않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보다 상처받아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를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 더 많겠다.
어딘가에 가거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는데, <표착되지 않는 풍경>에서는 사진을 찍어도 그게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이런 일은 소설에만 있는 건 아니다. 멋진 풍경이나 소중한 기억은 그대로 담지 못한다. 그런 건 눈에 마음에 담아야 한다. 별안개 소문을 듣고 그걸 보러 간 곳에는 그 모습을 그리거나 글로 적는 사람도 있었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구나. <시몬을 떠나며>에는 가면을 쓴 사람이 나온다. 시몬이라는 행성에 사는 사람은 모두 가면을 썼다. 그 가면은 그곳에 찾아온 외계 기생생물이었다. 처음 기생생물이 얼굴을 가렸을 때는 절망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은 거기에 익숙해졌다. 외계 기생생물이 가면이 되고는 억지웃음을 웃지 않아도 되고 더 다정해졌다고 한다. 사람과 다르다 해도 없애거나 쫓아내지 않고 함께 사는구나.
자신이 다른 세계에 산다면 더 낫기를 바랄 것 같은데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는 그렇지 않았다. 멜론을 잘 팔지 못하는 자신뿐 아니라 바이올린 연주자로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자신도 괜찮다고 여겼다. 같으면서도 다른 두 사람이구나. 정말 평행세계는 어딘가에 있을까.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어떤 만화에서는 사람이 결정할 때마다 그런 세계가 늘어간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평행세계는 아주 많겠다. 나면서 내가 아닌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
지구엔 외계인이 섞여 산다는 이야기는 벌써 나오기는 했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에서는 외계인은 미각이 다르다고 했다.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왔으니 다르겠구나. 이것도 재미있는 상상이다. 아니 어쩌면 진짜 지구에는 외계에서 온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희선
SF물을 좋아하면서도 더러 버거울 때가 있다. 내 깜냥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상력의 스캐일과 지적인 정교함 앞에 막막하고 허무해져서 무너져버린 경우도 있는 것이다. 장편 SF를 한번에 휘리릭 읽어본 기억이 없다. 쩔쩔매며 어찌어찌 다 읽고 난 다음 스토리 라인을 가다듬으며 재독을 해야 하는 난감한 사태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번 김초엽의 짧은 얘기들을 읽는 데 그런 걱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단순히 분량이 짧다는 것에 안심했던 것은 아니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자신에게 좋은 이야기를 쓰자며 어깨에 힘을 빼고 가벼이 써낸 이야기들의 모드와 코드가 부담 없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소설로 옮겨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던 아이디어들이 이상하게도 '짧은' 소설이라는 제약을 걸어주면 스르륵 문장이 되어 풀려나온다.
"이렇게 짧은데 완벽한 이야기를 쓸 수는 없을 테니까, 그냥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쓰자." 그렇게 어깨에 힘 빼고 출발해야 도달할 수 있는, 산뜻한 이야기의 마을이 있는 것 같다. (중략) 홀가분히 가벼운 짐만 꾸려 떠난 휴가처럼 이 책을 즐겨주시기를.(6~7쪽)
이렇게 작가 자신에게 좋은 얘기들에 나까지 서서히 물들어 간 것 같다. 겸손하고 온화한 위로가 무장해제하게 만들었다. 이야기들은 현란하고 난해한 과학적 원리에 기대고 있지 않았다. 진입장벽을 느끼지 않고 문턱을 쉬 넘을 수 있었다. 외계 행성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현혹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건 우리별 얘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인류와 지구 생태계의 변주로 읽혔다. 우리별이 처한 엄혹한 실상과 시급한 과제에 대한 시사점을 넌지시 던져주고 있었다.
여러 빼어난 얘기들로 빼곡하지만 내겐 특히 '포착되지 않는 풍경'이 각별하게 다가왔다. 셀카와 인증샷이 생활양식으로 굳어진 우리에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을 이미지 파일에 담아 간직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아스라한 기억들을 디지털 기기로도 포착하지 못하고 애틋한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을 그 별에선 과연 어떻게 타개할는지.
허공에서 안개 입자 하나하나가 빛으로 부서지듯 반짝였고, 두 개의 태양이 기울며 시간마다 다른 색의 빛줄기를 그 위에 더했다. 부유하는 금속 미생물들이 대기 중의 황화수소와 반응하여 약 세 달간 지속되는, 뮬리온-846N에서도 극히 드물게 발생하는 별안개라는 현상이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행성 여행자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들이 절벽 끝의 난간에 매달려 반짝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드론으로 영상을 촬영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보였다. 하지만 그 시각 데이터들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모두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러니까 저 별안개의 미세한 입자들이 가진 패턴이 데이터 오류를 일으킨다는 거죠?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서 다른 데이터까지 집어삼키고요."
"맞아요. 은하 표준 시각 데이터 형식을 사용하는 모든 데이터가 저 별안개의 패턴에 손상되고 있어요. 소리를 녹음한다든지 하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절대로 포착될 수 없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기록은 표준 형식으로 통일되어 있으니까요. 우리는 당신이 무슨 특별한 촬영 방법을 알아낸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군요." (98~102쪽)
여행자들은 다같이 숨을 죽이고 바람 소리, 연필이 긁히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눈앞의 별안개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빛과 그림자가 변화하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람조차 완전히 멈추었고, 정적 사이에 사각사각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는 소리만이 끼어들었다. 리키는 가만히 그 소리를 들으며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을, 언젠가는 결국 사라지고 말 순간을 지켜보았다. (106쪽)
작가는 포착되지 않는 순간을 담고 남기기 위해 인류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최첨단 디지털 기기와 혁신 기술을 제시하지 않았다. 눈에 담고 손으로 그리고 마음에 새기는 인간 본연의 방식을 포착되지 않는 풍경을 간직하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따뜻하고 아련한 얘기들 앞에 마음이 절로 놓였다. 변화무쌍한 얘기들을 따라가며 스토리 라인과 플롯을 파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긴장하고 집중하며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안전하고 온화한 짧은 이야기들에 위로받고 평화로워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