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6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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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0쪽 | 412g | 133*200*23mm |
ISBN13 | 9788954672214 |
ISBN10 | 8954672213 |
발행일 | 2020년 06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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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0쪽 | 412g | 133*200*23mm |
ISBN13 | 9788954672214 |
ISBN10 | 8954672213 |
MD 한마디
[곧고 깊으면서도 따스한 시선, 정세랑 소설] 일생 단 한 번의 제사를 위해 하와이를 찾은 어느 가족의 이야기. 이것은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녹록하지 않은 시대를 먼저 살아낸 선배의 이야기, 늘 인간으로 예술가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야 했을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세랑의 새 소설이다.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한가. -소설MD 박형욱
시선으로부터, 작가의 말 |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 소설은 독자를 사로잡는다. 글의 다양함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삶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법. 정세랑이 바라보는 시선이 좋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 다른 하나의 세계로 투지를 불태우게 된다.
정세랑 작가의 신작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이라는 여성을 통해 그로부터 파생되는 딸과 손녀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심시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시선(視線)들을 마주할 수 있다. 20세기를 살아온 여성으로서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 그가 경험한 세계에서 어떻에 살아야 했는지,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 모든 것들을 묻는다.
심시선은 한국전쟁때 하와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화가 마티아스 마우어를 만나 공부시켜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독일로 건너갔다. 뒤셀도르프에서 첫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그림을 포기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심시선은 세상을 앞서 살았다. 심시선의 딸들과 아들, 그리고 손자들로 이어지는 모계 사회는 자못 유쾌하다.
소설의 시작은 자신이 죽은 뒤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선의 10주기때 그의 큰 딸 명혜는 가족들에게 엄마의 제사를 지내기로 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하와이에서. 하와이에서의 시선의 제사는 남다르다.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겠다는 게 아니다.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오기로 하는데,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이나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다'라고 했다. 이것은 시선이 잠시 머물렀던 도시에서 시선을 기억하는 과정과도 같다. 시선과 함께했던 기억들을 수집하고, 자신이 살아온 날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미래의 삶을 기약하는 시간이다.
엄마의 3주기가 곧 돌아온다. 우리는 엄마의 제사를 특별히 지내지 않는다. 각자 지내고 싶은 사람이 지내면 된다고 했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엄마 산소에 가서 술 한 잔 올리면 되는 거고. 심시선의 딸들이 제사지내는 걸 보며 우리와 조금은 닮았다 여겼다. 모이면 엄마에게 받았던 소중한 것들을 말하고 때로는 엄마 흉도 보며 울고 웃는 게 그렇다.
큰 딸 명혜는 언어의 춤인 훌라를 배우고, 명은은 레후아꽃과 등산화 밑창에 끼여 있는 작은 화산석을 올렸고, 명준은 해양쓰레기로 만든 재생 플라스틱 블록을, 명준의 아내 난정은 레이 목걸이과 하와이 배경 소설을 올렸다. 각자가 생각하는 기념할 수 있는 물건들을 올려 시선을 기억하고자 했다. 명혜의 남편 태호나 난정의 남편 명준은 시선으로부터 나온 생각들답게 남자가 우위에 서 있다는 인식보다는 오히려 남녀평등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히려 현재의 모습, 모계 사회라고 일컬었던 명혜의 말처럼 그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을 씩씩한 여성들이었다. 자식이 자기가 원하는 길로 가지 않는다고 서글퍼하지도 않고, 전공을 바꾸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섣부른 결정이었을지언정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라야 가능한 것이므로. 애정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향하여 더 노력할 것이었다.
그러니 여러분, 앞으로의 이십 년을 버텨내세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모퉁이가 찾아오면 과감히 회전하세요. 매일 그리되 관절을 아끼세요. 아, 지금 그 말에 웃는 사람이 있고 심각해지는 사람도 있군요. 벌써 관절이 시큰거리는 사람도 많지요? 관절은 타고나는 부분이 커서 막 써도 평생 쓰는 경우가 있고 아껴 써도 남아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불공평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면에서 닳아 없어지지 마십시오. (229페이지)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러려던 건 아닌데, 공중으로 흩어지는 말들보다는 글로 고착시키는 걸 하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계속 시키는 바람에. 물론 중간쯤부터는 떨지 않고 떠드는 것이 내 역할인가보다, 받아들이긴 했습니다마는 ......, 말하는 여자는 미움 받으니까, 뭐 기왕 미움받고 있는 내가 해버리자, 그런 마음도 있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말이란 건 그렇습니다. 일관성이 없어요. 앞뒤가 안 맞고, 그때의 기분에 따라 흥, 또다른 날에는 칫, 그런 것이니까 그저 고고하게 말없이 지낼 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도 합니다. (325~326페이지)
소설이 깊어졌다. 그가 가지고 있는 시선의 깊이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 전의 작품의 깊이가 얕았다는 건 아니다. 시간을 건너온 할머니의 삶을, 젊은 할머니의 시선에서 젊은 소녀들, 딸들의 시선에서 깊이있게 바라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발췌 문장에서처럼 공중으로 흩어지는 말들을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말을 많이 했을 때의 그 허함을 알기 때문이다. 가는 길이 옳다 여겨 계속 가다가 모퉁이를 만나면 과감하게 회전하는 삶이 필요할 듯도 하다. 이십 년쯤 버텨보면 알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문학동네 #시선 #책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책리뷰
제목 <시선으로부터>가 중의적으로 쓰였다.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심시선이다. 당연히 이야기는 심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가계도를 그려보아야 가족관계가 정리되는 조금 복잡한 자녀들이 엄마에 향해 가진 다양한 시선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어머니가 자랐던 하와이를 찾고, 자기의 시선에서 심시선 여사와 관련된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돌아보는 독특한 방식으로 심시선 여사를 추모한다.
주인공 심시선 여사는 파란만장한 20세기 역사를 살아온 신여성이다. 한국전쟁 때 하와이로 건너가 화가인 마티어스 마우어를 만났고, 공부시켜주겠다는 말을 믿고 독일로 건너갔다. 뒤셀도르프에서 요세프 리라는 사람을 만나 첫번째 결혼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그림 그리기 대신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쓴 많은 글들이 그녀의 삶을 회고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홍낙환과 두번째 결혼을 하지만 남편은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다. 신여성으로 남들보다 세상을 앞서 살았던 심시선 여사의 모계중심 가족 이야기가 다양한 관점에서 유쾌한 필치로 전개된다.
이 소설에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심시선 여사라는 인물, 죽은 뒤 10년이 된 시점에서 지내는 제사라는 모티프, 하와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두고 경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심시선 여사와의 개별적 경험을 가졌고 성격도 독특한 자녀와 손자들의 시선에 비친 심시선 여사의 삶의 다양한 측면, 여성으로서 전통적인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의미, 제사라는 전통의식을 유쾌하게 뒤집어버리는 아이디어, 판타지의 섬 하와이라는 조합이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가족들의 심시선 10주기 제사는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녀가 잠시 살았던 도시 하와이를 찾아 시선이 함께 했던 다양한 기억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이 살아온 삶들을 돌아보며 앞날을 기약해 보는 그들만의 추모방식의 제사라는 아이디어를 만든 작가의 시선도 재미있다. 전작 <피프티 피플>에서도 50여명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다양한 시선들을 공유할 수 있게 했던 작가의 삶을 보는 시각이 아닐까 싶다.
인생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파란만장했던 20세기 현대사를 살아온 주인공 심시선 여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오면서 느꼈을 삶의 무게들, 심시선 여사를 둘러싼 모계중심의 가족 이야기, 고인을 기리는 재미있는 제사 이야기, 이런 것들이 버무려져 있는 이 작품은 작가의 말처럼 '힘든 20세기를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여성예술가에 바치는 21세기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