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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홍합

: 제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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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26g | 150*210*15mm
ISBN13 9791160406313
ISBN10 1160406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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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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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몸에서 뿔뿔이 뿜어져 나와 바닷물을 타고 흐르다가 아무 데고 저 몸 닿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몸을 피웠다가 양식 줄에 촘촘히 묶여 살을 키운 홍합은 현장에서 솥에 푹 삶겨 뜨거운 맛을 보고는 벌러덩 벌어져 흐물흐물 고물고물하다가 껍데기와 떨어져 이렇듯 차가운 맛을 보게 된 것이다. 하루 종일 삶기고 씻긴 저것들은 밤새 꽁꽁 얼었다가 다음 날 낱개로 떨어져 박스 포장이 된 다음 다시 냉장실로 옮겨지고는 훗날 컨테이너에 실려 멀리 유럽으로 갈 터였다. 이름만 들어본 먼 외국으로 가는 것도 그렇지만 새끼 두셋 낳아 반평생 뒷바라지로 허덕이는 인간들에 비하면 어쩌면 저 알아서 흘러가고 저 알아서 크는 이것은 훨씬 더 고급스러운 생물일지도 몰랐다.
--- p.19-20

밤바다는 아름다웠다. 멀리 돌산대교 불빛은 수면을 타고 바로 눈앞까지 미끄러져 와 있다. 저 작은 불빛은 어둠을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모두 그 컴컴한 어둠 속에 묻히고 나서야 제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항만에 묶여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은 하루 동안의 노동을 끝낸 놈이나 여러 날째 마냥 쉬고 있는 놈이나 사이좋게 옆구리를 대고 잔물결에 출렁거리고 있다.
--- p.76

국동패같이 공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짐 지고 칼 드는 일을 젓가락 휘두르듯 하면서도 안 풀리는 집안 때문에 늘 인상을 찌푸리고, 신풍패같이 밭매고 집안일에 청춘을 바친 이들은 시부모 등불 아래 밥 짓고 빨래하는 봉건주의 생활 방식 덕에, 살다 보면 시엄씨 죽는 날 있겠지 하며 한숨 쉬며 사는데 근태네 얼굴에는 그게 없었다. 어떻게 보면 표정이 전혀 없는, 자질구레한 일상 따위는 초탈한 듯한 얼굴이었고 또 어떻게 보면 너무 삶에 지쳐 한시도 쉬지 않고 쓰린 표정을 짓고 있는 듯도 했다. 얼굴이 검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주변의 잔 기운에 섭쓸리지도 않는 행동거지가 그대로 올라가 붙은 형상이었다. 농담이 흔치 않아 입이 무거웠는데 그 입이 움직일 때가 바로 노래할 때와 먹을 때였다.
--- p.128-129

이 동네에서 일 못하는 여자 없고 술 못하는 남자 없지만 근태네만큼 일만 하는 여인도 없고 근태 아빠처럼 술만 하는 이 또한 없었다.
--- p.129

시간 일 하는 여자들은 몸뻬와 퍼머머리로 모두 닮았다면 할머니들은 머릿수건과 두툼하고 구부러진 손마디가 닮았다. 가늘고 윤기 흐르던 손마디가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거쳐갔는지 그건 당사자만이 알 거였다. 끊임없이 일을 찾아 써왔던 손 덕분에 시부모 편안하고 남편 든든하고 자식들 쑥쑥 컸을 터라 이제는 쉴 만한 나이인데도 모여들어 그 손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확인하고 있었다.
--- p.139

젖 떼고 해오던 게 일, 일, 일뿐이었는데 시집을 와 본들 장소만 바뀌었지 하나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공장 일이었다. 돈벌이라서 시어머니도 반대 못 하고 며느리 대신 억지로 꼬무락거렸으나 오래가지 못해 일 끝나고 가보면 시어머니 손맛을 구경하기는 어려웠다.
--- p.182

그것도 사랑이라면,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저도 모르게 저이랑 손잡고 사람 없는 바닷가 모래밭쯤을 걸어보기라도 한다면, 싶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붉어지고, 고개가 돌려지고,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그러다가 억지로 손에 일을 잡는 것도 사랑이라면, 글쎄 사랑이었다.
--- p.184-185

집에 가자마자 부엌과 텃밭에서 다시 몸을 구부려야 하는 그녀는 아예 몸뻬 차림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네 결혼식이 여수나 순천에 있어야 외출복이란 걸 입어볼 수 있었다. 여자 나이 서른셋. 일과 세월 속에만 묻혀 있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였다.
--- p.189-190

“내일부터 공장에 못 가고 농약 친단다. 씨발것, 독사야 내 발 물어라.”
--- p.198

한 달 동안 고생해서 받은 돈이 집으로 들어가 고기 근을 끊든지 아이들 용돈으로 가든지 아무도 몰래 친정 쪽으로 날개를 달든지 금반지 곗돈으로 나가든지 이도 저도 아닌, 장롱 깊숙한 곳에서 겨울잠을 자든지 하여간 주인의 요량대로 풀풀 날아가든지 숨든지 할 것이다. 여인네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월급날은 발걸음도 다른 날보다 빨랐다.
--- p.203

“그래도 좋은 세상 한번 봐야지. 일만 하다가 멜치 새끼처럼 말라보타 죽어불믄 억울해서 어떡해.”
--- p.206

“홍합아 잘 가거라. 이쁜 너를 불에다 삶고 얼음에다 꽁꽁 얼리고 해서 영 미안하다야.”
--- p.208

“똑같은 합자로 태어나도 누구는 깨깟하게 포장되고 외국 말 찍 해서 외국 나가고 누구는 낯바닥에 에이비시 한번 박아보기는 내비두고 땡볕에 땀내 난 거 물도 못 해 쉰내나 풍기고 있으니, 참 팔자도 여러 가지다 니미.”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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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소설을 읽는 맛은 냉동식품이나 방부 처리된 포장 식품만 먹다가 싱싱한 자연산 푸성귀를 먹는 맛과 같다고나 할까. 도시적인 감수성을 여유 있게 비껴가면서도 재미가 여간 아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이렇게 정면으로, 능청스럽고도 건강하게 그릴 수 있다는 건 그의 작가적 역량도 역량이지만 남다른 체험의 소산일 듯싶다.
- 박완서 (소설가)
공장이되 홍합공장이며, 노동자이되 중년 여인들이며, 삶의 현장이되 건강미 넘치는 곳, 우리를 즐겁게 하는 장소로서의 작품이다.
- 김윤식 (문학평론가)
이 작품은 변화의 물결에 노출된 농어촌의 삶을 그 밑바닥에서 건강하게 떠받치고 있는 토착적 생명력을 옹글게 포착해낸 문체가 돋보인다. 이러한 능력은 노동의 고통과 남성적 폭력을 웃음의 미학으로 극복해가는 아낙네들의 생활의 지혜를 그려내는 대목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 황광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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