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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 드로잉에 담은 도시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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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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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680g | 166*230*20mm
ISBN13 9788958078791
ISBN10 8958078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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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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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형 한옥은 이른바 ‘집장사집’으로서, 전통 한옥의 특징을 갖추면서도 도시환경에 맞게 개량되어 당시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늘날 서촌에 남아 있는 대다수 한옥은 그 당시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서촌의 고풍스러운 풍경이 도시형 한옥에 의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오늘날 특별할 것 없는 대다수 집장사집들 역시 언젠가 재평가받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 p.89

낡은 콘크리트 계단을 밟고 ‘김수근의 공중 가로’ 위에 올라와봤다. 세운상가 일대의 험하고 괄괄한 경관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이런 곳에 이런 무지막지한 건물이 들어선 것도 놀라운 일이었고, 이 무지막지한 곳을 완전히 뒤집어엎을 생각을 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서울시의 미래다. 다만 소심하게 믿어볼 뿐이다. 미시적으론 좌충우돌,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더라도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 p.127

해방을 맞이하고 전쟁을 겪고 난 이후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존이었다. 계단을 딛고 높이 올라가야 쓰러져가는 판잣집이라도 얻어 지친 몸을 누일 수 있었다. 먹고사는 일이 좀 나아지면서 이번엔 주거환경의 질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계단의 한가운데에는 화단이 조성되고, 나무가 심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하면서 계단에는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되었다. 이렇듯 녹록하지 않던 시대적 가치에 의해 주물된 108하늘계단 앞에 서면 왠지 숙연한 마음이 든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계단에는 점차 인간적인 가치가 덧씌워지는 듯하다. 앞으로 또 어떠한 가치가 이 계단을 변화시킬지 오래오래 지켜볼 일이다.
--- p.151

해방촌에서 벗어나 녹사평대로에서 다시 해방촌 구릉지를 바라본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동시에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유기적인 형상을 띠고 있다. 저 거대한 생명체의 주름 하나하나에는 해방촌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마치 레코드판의 소리골처럼 꼼꼼하게 기록, 저장되어 있을 것이리라. 어떤 동네는 도시재생, 그리고 어떤 동네는 대규모 재개발이라는 각기 다른 운명의 길을 걷고 있다. 아마도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나의 스케치 중 몇몇은 도통 어느 동네의 풍경을 그린 것인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워질 것이다.
--- p.161

건축물에도 인격이 있다면 성요셉아파트의 인격은 겸손이겠다. 겸손의 미덕은 평면에서도 발견된다. 남쪽으로 완만하게 굽은 도로의 형상을 따라 아파트도 동일하게 마디를 굽히고 있다. 건물이 땅의 형상을 따르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경사지에 들어서는 요즘 아파트들이 대지를 반듯하게 짓누르고 굽은 도로를 똑바르게 펴낸 땅 위에 거만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떠올리면 나의 의견에 수긍이 갈 것이다.
--- p.175

좁다란 골목길에서 건축물의 온전한 얼굴을 바라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 굽은 길 그리고 경사진 길에선 각도를 달리하며 드러나는 건축물의 얼굴을 비교적 쉽게 바라볼 수 있다. 얼굴을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가 더욱 긴밀해지는 것처럼, 건축물의 얼굴, 입면이 잘 보이는 길일수록 걷기가 흥미롭고 공간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서둘러 지나치게 되는 다른 통과 길과 달리 환일길에서 나의 걸음걸이가 진중해짐은 이 때문일 것이다. 도시 속에서 나는 좀 진중하게 걷고 싶다.
--- p.193

4월 흐드러지게 핀 벚꽃 동산을 걷고 있노라면 용산선의 수난과 역경의 기나긴 여정을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하다. 도심 한복판에 이토록 아름다운 벚꽃길이 조성될 수 있었던 배경과 과정을 놓고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일제가 강요한 제국주의의 흔적은 비록 좌충우돌할지라도 대한민국 국민에 의해 조금씩 바로잡히고 있다. 그래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의 향연 속에서도, 숲길 옆에 들어선 술집과 카페에서의 한바탕 흥겨운 시간 속에서도, 이 비워져 있는 공간에 담긴 역사를 되짚어봄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소소한 일상조차 거저 얻어진 것은 없으니 말이다.
--- p.246

오늘 다시금 와우교에 올라서니 다리 양옆으로 길게 이어진 푸른 숲이 낯설다. 사라진 철길뿐만 아니라, 철길로부터 등을 돌렸던 건물들이 언제 그런 적 있었냐는 듯이 공원을 향해 독특한 외관과 인테리어를 뽐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거리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곳이 이렇게 쾌적한 공간이 될 수 있었고, 이렇게 활기 넘치는 곳이 될 수 있었던가 새삼 놀랍다. 그러고 보면 도시의 빈 공간(void)은 역시 사람으로 채워져야 비로소 찬란하게 빛나게 됨을 다시금 확인한다.
--- p.251

신촌의 도시형 한옥은 하루빨리 철거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자, 금싸라기 땅을 생으로 놀리고 있는 천덕꾸러기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그 많던 도시형 한옥들은 대부분 철거되었으며 지금은 극히 일부만이 남아 있다. 도시형 한옥이 비교적 잘 보존된 인사동과 삼청동, 북촌, 서촌, 익선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지난 십수 년간의 유행만 놓고 본다면, 결과적으로 신촌은 지역색이 살아 있는 상권으로 재조명받을 기회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생각하면, 신촌은 애초부터 비물질적 가치나 여유 따위는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치열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현장으로 계획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p.258

와우아파트가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해방촌, 아현동과 같은 구릉지에도 수많은 시민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섰거나, 세운상가나 청계고가도로를 능가하는 또 다른 도시 흉물이 서울 곳곳에 기념비처럼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김 시장의 임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 모든 것들을 깔끔하게 철거하고 또 다른 토건 신화를 이어갔을 수도 있다. 분명히 지금의 서울과는 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고, 모르긴 몰라도 도시학자와 건축가들에겐 더 많은 숙제가 주어졌을 것이다.
--- p.286

건축가들이 서교365에 대해 논할 때 유독 기억이란 개념에 천착하는 이유는 뭘까. 이 낡아빠진 건물군에서 건축의 3요소인 기능, 구조, 미를 모두 제거한 후에도 콘크리트, 철, 유리, 나무의 표면과 틈 사이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 무엇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적인 에피소드부터 사회, 집단적인 사건과 역사까지, 이 모두를 아우르는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될 수 있겠다. 기억은 구상적이고 물질적인 건축물에 시간이란 추상적 관념을 연결시키는 매개체와 같다. 비록 서교365를 살린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정작 살인적인 임대료 때문에 이 건물을 떠나야 했던 또 한 번의 아이러니가 있긴 하지만, 서교365는 그러한 시간까지 물질적인 형상으로 품게 되었다. 과연 이 기억의 집합체는 홍대의 어느 시간까지 품게 될 것인지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다.
--- p.297~298

서울화력발전소의 역사는 앞서 둘러봤던 동네들의 역사와 일맥상통한다. 일제강점기 처음 들어선 발전소는 해방 후 우리 손에 넘어왔다. 개발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일제가 지정해준 위치에 별다른 고민 없이 발전소를 확장하였고 이내 새로운 시대의 서울에는 적합하지 못한 장소였음을 깨달았다. 2000년대 들어서 서울시는 발전소 처리에 대해 고민했다. 재개발 방식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동안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젠트리피케이션도 발생하였다. 어쨌거나 발전소는 서울시와 공존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서울화력발전소에 새롭게 씌워질 다른 역사의 한 켜가 발전소 주변 동네, 나아가 서울시의 오래된 미래를 제시할 하나의 이정표가 되길 말이다.
--- p.311

도처에 흥미롭고 주위를 끄는 것들이 너무 많은 오늘날, 도시 그리고 동네의 역사에 도통 관심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무작정 걸어볼 것을 추천한다. 비교적 가볍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도시 걷기 덕분에 장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생길 것이고, 그러한 애정은 장소의 역사로까지 확장될 것이다. 이렇게 장소의 역사를 알게 됨으로써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며, 다시 그러한 경험은 개인의 심상지리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다.
--- p.3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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