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동차 산업이 제조업에서 모빌리티 서비스업으로 전환되는 현재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전통적인 규칙과 기존의 경쟁 구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실제로 모빌리티 부문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새로운 기술과 혁신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은 기존 완성차 업체가 아니라 테크 기업들이며, 이들은 이미 완성차 업체들의 사업 영역을 상당 부분 잠식하고 있다. (중략) 물론 이에 대한 완성차 업체들의 저항과 반격도 거세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는 한편, 적과의 동침을 마다하지 않고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미래 모빌리티 경쟁에서 뒤처지면 10년 안에 시장에서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p.7~8
더욱이 중국 기업들은 뛰어난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을 앞세워 이제는 자국 내수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가려 하고 있다. 배터리, 모터에서부터 인포테인먼트까지 어느 국가보다 전기차 제조 생태계가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고, 규모의 경제로 가격 경쟁력마저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태국, 러시아 등 신흥국 시장에서는 중국 브랜드가 약진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 등의 자동차 선진국에서도 중국 모빌리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의 모빌리티 산업은 과거 스마트폰 산업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율주행 기술과 운영체제를 표준화한 선도 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미국과 양자 대결 구도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p.13~14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빌리티 혁신이 어떤 속도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인지에 관해 살펴보기 위해서다. 나아가 중국의 변화가 국내 주력 산업인 자동차 산업과 한국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 논의하려는 목적도 있다. 한국은 글로벌 모빌리티 패러다임 전환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특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빌리티 혁신의 파도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차이나 모빌리티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중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100년 만에 찾아온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를 주도하기 어렵다.--- p.14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전 세계 내연기관차 판매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은 크다.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내연기관차 판매가 일시적으로 회복될 수도 있지만, 메가트렌드 관점에서 보면 장기 하락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중략) 높아지는 환경규제 부담과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게 내연기관차 관련 설비는 중장기적으로 미래 가치가 제로로 수렴하는 좌초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만큼,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는 기업과 국가만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p.32~33
미래 모빌리티 트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케이스(C.A.S.E.)’(이하 케이스)로 표현할 수 있다. 케이스는 ‘연결성(Connected)’, ‘자율주행(Autonomous)’, ‘차량공유(Shared&Service)’, ‘전동화(Electric)’ 등 미래 모빌리티의 특징들을 압축한 신조어로, 모두 현재 진행 중인 모빌리티 혁신의 핵심축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케이스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가 하나같이 자동차 산업을 뒤흔드는 메가톤급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케이스는 모빌리티 혁신의 파급효과를 가늠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p.37쪽
이 같은 변화는 기존 완성차 업체들에게 심각한 위협일 수밖에 없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부상으로 오랫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핵심 기술이 집약된 내연기관 엔진이 필요 없어지면서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진 데다 소프트웨어가 갈수록 중요해짐에 따라 자동차 업계를 둘러싼 게임의 룰이 통째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구글, 아마존, 바이두, 알리바바와 같은 테크 기업들이 모빌리티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자율주행을 포함한 플랫폼 생태계 선점에 나서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글로벌 모빌리티 혁신의 주도권이 기존 완성차 업체에서 테슬라와 같은 신생 업체로 넘어갔다. 전례 없는 경기침체로 큰 타격을 입은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회복에 매진하는 사이에, 역동성을 갖춘 신생 업체들이 기술 혁신으로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이 격변의 시기를 맞으면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p.52~53
물론 아직까지는 중국의 성과가 질적인 면보다는 양적인 면에 치우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핵심 기술력과 인재는 미국 등 선진국이 우위를 보이고 있고, 중국은 그들의 뒤를 쫓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은 질적 도약을 이끌어낼 정도의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선진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는 데다 2차 전지, 차량·사물 간 통신, 자율주행 딥러닝과 같은 분야에서는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플랫폼 산업에서 본 것처럼 중국은 첨단 기술을 시장의 수요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고 매력적인 수익모델을 구축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에 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p.58~59
미국에 테슬라가 있다면 중국에는 ‘넥스트 테슬라’를 꿈꾸는 니오, 샤오펑, 리오토가 있다. 이들 기업은 세련된 디자인과 뛰어난 주행 성능을 갖춘 전기차 모델을 연이어 출시하며 테슬라와 시장 주도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워런 버핏이 투자한 기업으로 잘 알려진 비야디가 이전부터 전기차를 생산해왔지만, 자율주행 기능을 포함한 첨단 기술을 장착하고 사용자 편의성을 대폭 강화해 차이나 모빌리티 혁신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다름 아닌 니오, 샤오펑, 리오토와 같은 혁신 스타트업들이다.--- p.77~78
중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이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책과 관련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가 지속된 결과다. 경제 발전으로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높은 구매력과 세련된 취향을 갖춘 소비층이 뒷받침된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같은 요인들은 전기차의 수요와 공급 측면에 커다란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단적으로 중국 전기차 시장의 거대한 성장 잠재력에 이끌려 로컬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막대한 자금과 기술을 쏟아부었고, 중국 내 전기차 밸류체인(전기차용 원자재-배터리-부품-완성차-충전소)이 촘촘하게 구축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p.95
중국 정부가 전기차에 올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케이스로 대변되는 미래 모빌리티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최대 격전지가 될 전기차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미리 내다봤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보유한 내연기관차 기술과 경쟁력을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전기차는 상당히 매력적인 대안이었다. 복잡한 엔진 기술이 필요 없고 중국이 강점을 갖는 전장부품과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수 있어서 선발주자들을 추월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을 지원하는 움직이는 IT 단말기 역할을 할 수 있고, 에너지와 통신, 구동 속도 면에서 모빌리티의 종착점인 자율주행에 더 적합하다는 점도 중국 정부가 전기차에 집중하게 된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중국의 전기차 경쟁력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자동차 만년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이제는 오히려 유럽과 일본 등으로 전기차를 수출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가성비와 품질 경쟁력을 갖췄다는 방증이다.--- p.113~114
중국도 차세대 이동수단인 도심항공 모빌리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혁신 기업과 지방정부가 손을 잡고 광범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전자상거래와 물류, 관광산업 등과 연계한 상업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앞서 언급한 모건스탠리 자료에서 2040년 중국의 도심항공 모빌리티 시장 규모가 글로벌 도심항공 모빌리티 시장의 30%에 해당하는 4,3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p.216
모빌리티 패러다임 전환기에 직면한 국내 자동차 산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글로벌 업체들과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데다 제품 차별화 및 신기술 개발에 소요되는 투자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 부진과 차량공유 서비스의 확산 등으로 자동차 수요가 위축되고 있는 점도 큰 부담이다. 이 같은 상황은 국내 자동차 생산 실적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p.230쪽
문제는 지금부터다. 자동차가 주력 산업인 한국은 글로벌 모빌리티 지각변동의 영향권 안에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제조업의 전형이었던 자동차 산업은 이제 차량공유와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업으로 진화하고 있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자율주행 시대가 임박하면서 더 이상 자동차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 하드웨어에 국한되지 않고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간 철옹성 같았던 완성차 업체의 경쟁우위가 빠르게 약화되면서 테슬라를 비롯한 신생 업체들이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고, 완성차 업체에서 부품 업체로 이어지는 기존의 수직계열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여기에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테크 기업들도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고 있어 산업 내의 경쟁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p.232~233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서 국내 기업들이 모빌리티 패러다임 전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 먹거리를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특유의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구사하며 과감한 M&A와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사실 한국은 글로벌 모빌리티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유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특히 미래차 핵심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p.246~247
--- p.246~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