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1월 20일 |
---|---|
쪽수, 무게, 크기 | 388쪽 | 566g | 140*210*30mm |
ISBN13 | 9788936479022 |
ISBN10 | 8936479024 |
발행일 | 2022년 0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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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88쪽 | 566g | 140*210*30mm |
ISBN13 | 9788936479022 |
ISBN10 | 8936479024 |
MD 한마디
은행, 공공기관, 카드회사, 통신사 등 콜센터는 광범위하게 운영된다. 전화기 너머에는 노동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콜센터 노동에 관한 책이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 지속되게 하는 구조와 이 구조 속에서 아파하는 노동자를 논했다. - 손민규 사회정치 MD
프롤로그 안녕하세요, 콜센터 연구하는 인류학자입니다 1부 콜센터의 탄생 1장 공순이에서 콜순이로 2장 담배 연기 속 한숨들의 무덤 2부 투구가 된 헤드셋 3장 감정 이상의 노동 현장, 콜센터 4장 어느 상담사의 하루 5장 코로나19 팬데믹이 들춰낸 콜센터의 현주소 3부 새로운 몸을 찾아서 6장 상담사들의 노동운동 도전기 7장 일단 몸부터 펴고 이야기합시다 8장 사이버타리아의 시대, 콜키퍼의 탄생 에필로그 콜키퍼 선언 주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망설이다 받았더니 무언가를 홍보한다. 내 개인정보를 어디서 알았느냐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참았다. 대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끊었다.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내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압박이랄까. 이 상황을 연출한 실질적 책임자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할 게 뻔하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할당된 콜수를 채우고자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뿐이고. 일말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므로 나의 감정은 죄책감으로까진 발전 않는다.
콜센터. 그런 직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였으나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이제껏 살아왔다. 언론에 본격적으로 콜센터가 등장한 건 전 세계를 멎게 만든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였다. 비좁은 공간에 다수의 사람이 앉아 쉴 새 없이 통화를 하는 환경이 초래한 불행에 대부분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회사에 본사와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없어 요구 사항이 있을 적마다 이들을 거쳐야 한다는 게 엄연한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들의 중요성 인정에 야박하게 굴었다.
대부분이 여성일 것이요, 그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거란 게 나의 추측이었다. 이는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으니, 이들의 복지에 대한 상대적으로 저조한 관심은 왠지 이와 같은 직종의 특성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거기에, 하청 업체 소속이라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을 게 분명하다. 어디에 어려움을 하소연해야 할지, 통로 자체가 불투명한데다 언제라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열악한 처지 탓에 모두가 침묵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생각보다 통제의 강도는 셌다. 처리해야 하는 건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기본적인 욕구라 할 수 있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눈치를 봐야 했다. 동시에 여럿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원칙 앞에서 느는 건 눈치뿐이었다. 제한된 시간이나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사람들은 흡연을 택했다. 건강을 해하는 지름길임을 알았으며, 흡연이 여성다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흡연 사실을 숨기려 드는 이들도 상당수였음에도 그러했다. 회사는 이를 역이용해 사람들에게 흡연공간을 제공했으니, 지나치게 억압함으로써 인력이 이탈하는 일을 방지하는 차원인 양 여겨졌다.
콜센터의 위치부터 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저자의 시도는 무모했다. 약속도 잡지 않은 채 긴장 상태로 문고리를 잡았던 그의 진심은 은밀한 내부 이야기로의 접근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은 일이므로, 이직을 하고 싶어도 경력 인정을 받기 힘든 데다 어중간한 나이에 발목 잡혀서. 콜센터에서의 노동은 선택 아닌 선택과도 같았다. 서로 비슷한 처지 같았지만 경쟁이 치열했으니, 얼마되지 않는 월급을 쪼개 상사를 모시는 일에 사용해 가면서까지 그들은 제 능력을 인정받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말 그대로 소진을 겪고도 남을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진정 이것이 최선이란 말인가!
미약하나마 변화를 도모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일부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조심스레 조합원을 모집하고, 요구 사항이 적힌 조끼를 입고 근무하는 등의 연대 행위가 사측의 변화를 낳았다. 물론 그들을 고용한 사측 또한 원청이 아니어서 콜센터 노동자들의 외침을 외면하는 일이 잦기는 하였지만, 제 권리를 찾기 위한 이들의 움직임은 숭고했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존감을 회복한 이들이 생겨났다. 파편처럼 제 앞에 놓인 전화와만 상대하던 이들이 고개를 돌려 제 동료와 얼굴을 맞대기 시작한 것이야말로 가장 큰 성과였을 것이다. 적잖은 부분을 할애해 저자가 다룬 몸 운동 역시 이러한 변화의 일환으로 해석 가능했다. 운동이야 개인 차원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데 굳이 이걸 노동조합이 나서야 하느냐는 내부의 반발이 있기도 하였지만, 함께 모여 내지르는 비명은 마냥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하면 걸으며 생각을 덜어내고자 했던 나의 노력을 개인 차원에서 집단 차원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지는 않을지, 조금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이 대목을 읽으며 나름 내 자신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던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생겨났던 대부분의 제재가 더는 유효치 않다. 실외에선 나 또한 거리낌 없이 마스크를 벗고 있다. 그렇지만 사무실에서는 아직 조심스럽다. 마스크를 그냥 쓰고만 있는 것도 갑갑한데, 콜센터 상담사들은 그 상태로 계속해서 말을 해야만 한다. 마스크가 그들의 감정노동(저자는 ‘정동노동’이라 표현)을 지우진 못한다. 지금껏 누구도 주목 않은 이 세계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왠지 잊고 산 것만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이 책은 저자가 때로는 완전참여자로 때로는 완전관찰자로 역할을 하며 상담업무를 관찰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참여관찰연구를 하며 쓴 책이다보니 역시 현장감이 있고 내용이 디테일했다. 상담업무가 고된 일이라는 것은 흔히 알려져 잘 알고 있어 읽기 전에는 아 이 책도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했는데 아니었다. 상담업무의 고됨을 여러 방면으로 보여주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도 다양하게 보여준다. 단순히 업무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업무와 업무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생활하는 환경까지 다루며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지난번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에 이어서 두번째로 읽은 인류학 책인것 같다.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 보고서에 익숙하다 보니, 인류학 보고서가 낯설게(신선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긴 하다) 느껴졌다.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와 관찰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가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뭐랄까, 데이터를 분석한 보고서들과 다른 점은 감정적이라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을 강요받고는 있는 듯했다. 사회의 한 현상을 분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는 커다란 측면에서는 다른 책들과 별다른 점은 없었다. 다만 서술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불편함. 그 불편함이 생각이 많아지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닌, 감정의 과잉이나 감정의 강요처럼 느껴져서 불편했다.
콜센터 상담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위치와 인식, 그리고 다른 직업들과 구별되는 노동환경 등에 대해서 분석하고 잘못을 이야기하고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감정노동'이라는 표현으로 인식을 제한한다고 언급되어 있었는데, 그 '감정'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매여 있는 듯한 모습이라고 할까. '콜센터 상담사의 직업적 위치를 마치 내가 너보다 나은 위치에서 바라보니 안쓰럽게 느껴지는 구나'라는 입장적 차이가 들게 했다. 이런 느낌은 책의 의도와 모순되는 느낌일텐도 말이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텍스트에서 느껴지는 그런 불편함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의 내용이나 구성, 의도 등은 참 좋다. 특히 '공순이에서 비정규직'의 삶으로, 시간은 변했지만, 노동 현실의 변화가 크지 않은 현장의 모습들이나, 왜 그런 노동이나 직업에서 젠더의 차별이 여전히 지속되는지에 대한 부분들은 많은 생각들을 갖게 했고, 더 공부해 보아야 할 부분이었다. 또 콜센터의 발상지인 영국이나 콜센터의 성지인 인도와의 비교 분석은 우리나라에서의 특수적인 상황들이 사회적 혹은 문화적 불변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그만큼 변화하기 쉽지 않은 뿌리 깊은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했다.
읽는 내내 가졌던 가장 큰 느낌은 '답답함'이었다. 변화되지 않은 모습에, 무언가 꽉 막혀 있는 듯한 모습에, 그 현실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음에 답답했다. 그 답답함이 조금씩은 해소되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더 답답했다. 시간이 흐르며 사회와 문화는 변하기 마련인데, 변하지 않는 그 모습들에 답답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 답답함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