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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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36쪽 | 772g | 153*225*35mm |
ISBN13 | 9788972917090 |
ISBN10 | 8972917095 |
발행일 | 2022년 0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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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36쪽 | 772g | 153*225*35mm |
ISBN13 | 9788972917090 |
ISBN10 | 8972917095 |
프롤로그 제1부 대반란의 기원 제1장 문화혁명의 두 기둥:인간 개조와 권력투쟁 제2장 스탈린, 마오에게 혁명을 가르치다! 제3장 문혁 전야:짧았던 관리자의 꿈 제2부 “천하대란”의 시나리오 제4장 저격수의 등장:대반란 제1막 제1장 제5장 “지옥의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제6장 독재의 시작은 비판여론 탄압 제7장 조반유리:천하대란의 시작 제8장 대반란의 서곡, 말려드는 중공중앙 제9장 “혁명은 폭동이다!” 제10장 권력자의 도그마:독선은 재앙이다 제11장 천하대란, 홍위병 학살극의 배경 제12장 태양신의 숭배자들 제13장 사회주의 신분제도:“혈통이냐, 능력이냐?” 제3부 탈권과 무투 제14장 권력 탈취! 문혁의 전국적 확산 제15장 문혁의 특별기관:혁명위원회의 건설 제16장 계급 학살의 기록 제17장 천하대란의 무장투쟁 제18장 권력자는 군중을 이용해 정적을 제거한다! 제19장 권력자의 역사 유희 제20장 홍위병들, 주중 영국 대사관을 급습하다! 제21장 권력의 부메랑:극좌 맹동 선동가의 최후 제22장 권력에 기생하는 지식분자의 운명 제23장 마오의 긴고주:조반파를 제압하라! 제24장 잃어버린 세대:홍위병의 수난 제25장 성의 자유를 빼앗긴 젊은이들 제26장 경쟁 없는 디스토피아 제4부 “대반란을 진압하라!” 제27장 국가 권력의 대민 테러:청계 운동 제28장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제29장 우붕의 우귀사신들 제30장 군중독재, 정치 학살:일타삼반 운동 제31장 반독재 자유의 순교자들 제32장 광기의 정치공작, 국가주석을 살해하다! 제33장 중, 소 군사충돌:수정주의와 교조주의의 투쟁 제34장 음모와 술수의 통치술 제35장 주군의 배신, 천보다의 몰락 제36장 린뱌오와 마오쩌둥의 대결 제37장 린뱌오의 반란계획서?:571 공정 기요 제38장 닉슨의 대중전략:중국 딜레마의 씨앗 제39장 린뱌오를 비판하고, 공자를 비판하라! 제40장 “종교의 자유를 달라!”:문혁 말기 무슬림 순교자들 제41장 톈안먼의 군중 제42장 빅브라더의 죽음과 사인방의 체포 에필로그 |
『슬픈 중국』 : 문화대반란 1964-1976 | 슬픈 중국 3부작 2
_송재윤 / 까치
나는 1990년대 중반 학술대회 참석차 중국의 선양(瀋陽)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일정 중 하루는 가이드겸 통역으로 수고해주던 중국동포교수가 말을 전하길 중국공산당 간부가 만찬을 마련했다고 한다(통상 우리는 무심코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붙이는데, 중국동포들은 이 조선족이라는 호칭을 매우 싫어한다. 재일한국인들이 ‘조센징’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이 되어 만찬장에 갔다. 나는 공산당 간부가 나이 지긋한 노신사풍이려니 생각했다. 중국동포교수가 인사를 시키는데, 40대 초반의 간부가 그날 저녁자리를 마련한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넌지시 중국동포교수에게 “생각보다 젊군요..”했더니 “문화대혁명 이후로 (요직에서 일할 만한)사람이 없어요. 간부급은 보통 저 나이또래입니다” 그전에도 가끔 ‘문혁’관련 자료를 접한 적이 있었지만, ‘문혁’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그때부터이다.
1억 1,300만여 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그중 55만 7,000여 명이 실종되었다. 대규모 무장투쟁이 4,300여 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12만 3,700여명이 사망했다. 약 250만 명의 간부들이 비투(批鬪 : 비판투쟁)의 미명하에 집단 린치를 당했고, 30만 2,700여 명의 간부들이 불법 구금되었다. 그중 11만 5,500여 명의 간부들이 비정상적으로 사망했다. 도시에서는 약 481만 명의 각계 인사들이 역사 반혁명 혹은 현행 반혁명, 계급 이기분자(異己分子 : 적대분자), 반혁명 수정주의자, 반동학술권위 등으로 낙인찍히고, 그중 68만 3,000여 명이 비자연적으로 사망했다. 농촌에서는 520만여 명의 지주, 부농(대부분의 중, 상농 포함)과 그 가속들이 박해를 받아서 약 120만 명이 비자연적으로 사망했다. _이 자료는 1982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중공중앙) 부주석 예젠인(葉劍英)이 직접 폭로한 문화대혁명(1966. 5~1976. 10)(이하 문혁) 피해자 규모와 관련된 수치이다. 이 수치는 조사연도와 조사자, 조사기관마다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시되는 수치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의 혁명’인가? ‘혁명의 문화’인가?
마오쩌둥(이하 마오)은 토굴 속 혁명 정부시절부터 문화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그는 문화혁명이 정치혁명에 복무하다는 묘한 말을 남겼다. 공산주의 이론에서 문화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문화는 단지 수단일 뿐이다. 목적은 혁명이다. 그럼에도 마오는 “문화혁명이 정치혁명과 통일전선을 이룬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일까? 마오는 문화를 바꾸면 인간의 본성까지 교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60년대에 그는 전 인민들을 향해서 낡은 사상, 낡은 풍속, 낡은 습관을 척결하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파사구(破四舊)의 구호였다. 낡은 것을 모두 제거하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마오는 힘들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혁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마오의 주장은 ‘회칠한 무덤’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상처받고 사라진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중국 각지의 전통시대 유산이 산산이 파괴되었다. 많은 문혁사가들이 동의하듯이, 문혁은 본질적으로 권력투쟁의 드라마였다. 마오쩌둥이 국가원수 류사오치를 제거하기 위해서 전국의 인민을 들쑤셨다. 천하대란이었다. 한 사람을 없애기 위해 그런 엄청난 일을 벌였다고 선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아울러 마오의 지시로 시행했던 대약진운동(1958~1962)이 대기근으로 엄청난 인명의 손실로 끝나자, 천명을 상실한 마오가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인민들의 시선을 딴 곳으로 쏟기 위해)문혁을 주도했다는 분석도 있다.
홍위병(紅衛兵)
전체주의 정권은 집요하게 청소년층을 파고든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오페라 나치오날레 발릴라, 소련의 콤소물 등은 대표적인 전체주의 정권의 준군사적 청소년 조직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까지 가장 필사적으로 연합군에 맞선 독일 병정들이 10대였던 히틀러 유겐트였음은 잘 알려진 바이다. 마오 키즈인 홍위병과 히틀러 유겐트는 공통점이 많다. 결정적으로 마오는 청소년들에게 초법적인 반란의 권리를 보장한 후, 그들을 정치투쟁의 최전방으로 내몰았다. 문혁 당시 중,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홍위병 운동을 직접 경험한 이른바 홍위병 세대는 보통 그 핵심 인원이 1,000만 명 정도라고 여겨진다. 1966년과 1968년 사이에 대학이나 전문학교에 다닌 재학생들까지 포함하면 여기에 1,200만 명 정도가 더해진다. 1965년 당시 초등학교 재학생들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1억2,000만 명에 달한다. 어린아이들을 혁명이라는 이름하에 광란의 현장으로 내몬 마오를 여전히 신처럼 떠받드는 중국 인민들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더러는 마오를 재물의 신처럼 모신다고 한다. 중국공산당이 마오의 과(過)를 일부 인정하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마오를 부정한다는 것은 공산주의 자체의 뿌리가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아끼던 장수 마속을 처형했다. 어리석게도 산 위에 진을 쳤다가 위나라 군대에 포위되어서 휘하의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몬 군사적 패착의 책임을 엄중히 물었던 것이다. 이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는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는 공정한 법 집행의 의미로 널리 사용되어왔다. 제갈량은 법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 마속을 처형했지만, 마오는 혁명의 미명아래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서 동지들을 차례로 제거했다. 1969년 11월 독방에 감금된 류샤오치가 의료 방치로 쓰러지고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마오는 천보다(혁명의 설계자 또는 마오를 대신하는 유령작가), 그 다음해엔 린뱌오(중공중앙 서열 2위, 군사전략가)등을 비롯해서 마오의 곁에 오래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최종적으로 마오가 죽기 직전에는 자신의 아내(장칭)가 속해있던 4인방에게서 마저도 등을 돌렸다. 궁극적으로는 홍위병마저도 하방(下方)시켜서 강제노동에 가까운 삶을 살게 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겪은 세대들은 문혁을 ‘십년호겁(十年浩劫)’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호겁의 사전적 의미는 ‘대재난’이다. 글자를 뜯어보면 ‘커다란 겁탈’이라는 의미이다. 겁탈이란 위협이나 폭력을 써서 타인에게서 무엇인가를 강제로 빼앗는 행위를 이른다. 중국인들은 문화혁명의 광기와 폭력에 치를 떨면서 그 시대를 한마디로 ‘겁탈의 시대’라고 부른다. 지난 문혁을 되돌아봐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지금 시진핑(習近平)정부에서 21세기형 문혁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혁 같은 사례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뿐 아니라 민주제 국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에 그 유혹에 빠지지 않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이다. 홍위병 세대들은 그 시절을 돌아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성인이 되어서 드물게 참회의 글을 올리는 것을 보긴 했지만, 극소수이다. 많은 사람들이 귀신에 홀린 듯 지냈던 그 시간들을 아예 돌아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전쟁터와 마찬가지로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던(그것도 청소년기에)그들을 생각하면 어째 그럴 수가 있나 하다가도 일면 측은한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중국의 문화혁명 자료 중 가장 충실하다.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슬픈 중국” 3부작을 통해 오늘날의 중국을 바로 보는 것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제2권을 통해 1964년 이후 중국 전역에서 일어난 문화대혁명의 실상을 파헤치고, 그 근본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3부작 중 미 출간 도서인 3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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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중국 : 문화대반란 1964-1976 (송재윤 著, 까치)”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슬픈 중국 3부작 중 “슬픈 중국 : 인민민주독재 1948-1964”에 이은 2번째 책입니다.
슬픈 중국 3부작은 중국의 현대사, 즉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인 1948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인민 (人民, people)의 관점에서 재해석함으로써 현재의 중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의도로 서술된 대중 역사책입니다.
저자인 송재윤 교수는 현재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분으로 대중 서적은 이번에 출간하는 ‘슬픈 중국’ 3부작으로 처음 만나게 된 분입니다.
“슬픈 중국 : 문화대반란 1964-1976”은 우리가 ‘문화혁명’이라 칭하는 중국 현대사의 최대 치욕을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십년호겁 (十年浩劫)이라 부릅니다. 국가적 광기와 폭력에 의해 스스로의 문화를 스스로 파괴하고 멸절시켰으며, 수많은 국민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인류사에 손꼽힐 만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의 기간의 문화혁명 기간 동안 1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무려 5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종되었으며, 또한 4000건이 넘는 무장 투쟁이 발생하여 이로 인해 12만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비투 (批鬪, 비판투쟁)에 의해 250만명이 집단 린치를 당했고, 이 중 30만명은 불법 구금되었으며, 11만명이 넘는 사람이 결국 사망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도시에서는 문화혁명의 여파로 인해 무려 68만명이 비자연적으로 사망하였고, 농촌에서는 약 120만명이 비자연적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이 책은 ‘혁명’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진 이런 대량학살에 대해 그 실행 주체를 기존 홍위병에서 그 주변 군중조직까지 넓혀 살펴보고 있습니다.
대약진 운동의 결과로 인해 벌어진 대기근으로 수 천만명에 이르는 인민이 아사한 이후, 정치적권위를 다시 되찾고자 하는 마오쩌둥은 자신만을 위해 인민을 선동하여 일으킨 ‘최후의 혁명’. 비록 그는 그 혁명으로 인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여 죽을 때까지 권좌에 앉을 수 있었지만 민생은 더 없이 피폐해졌습니다. 홍위병과 군중조직은 자신의 충성심을 강조하기 위해 끊임 없이 ‘인민의 적’을 찾아다니고, 비판하고, 모욕하고, 린치에 죽여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대사건은 중국공산당이 스스로 평하기를 ‘마오쩌둥이 일으키고 이끌었으며’, ‘가장 심각한 후퇴이자 손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입니다. 바로 최근 중국에서 이와 유사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입니다. 과거와는 다르게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인민을 감시하고, 정풍(整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문혁의 바이러스가 창궐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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