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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448쪽 | 148*210*30mm
ISBN13 9791166850691
ISBN10 1166850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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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11월의 바람이 116번가를 휩쓸고 있었다. 쓰레기통 뚜껑은 달그락거리고, 열린 창문 위쪽으로는 블라인드가 삐져나와 퍼덕거렸다. 7번길과 8번길 블록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단지 몇몇 행인만이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바람의 맹렬한 공격에 어떻게든 노출되지 않도록 애쓰며 한껏 등을 구부렸다.
거리에는 종이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극장 프로그램, 댄스 광고, 모임 알림장, 큰 빵을 말았던 두꺼운 코팅 종이, 샌드위치를 싸고 있던 허접한 코팅지, 찢어진 봉지, 신문 쪼가리. 바람은 도로 갓돌을 따라 더듬으며 폐지 조각들을 하늘 높이 추켜올려 춤을 추게 했다. 폐지 부대는 소용돌이치며 사람들의 얼굴에 일제히 공세를 펼쳤다. 하물며 거리에 나뒹굴던 라임도 건물 출입구와 공터로 몰았고, 닭 뼈와 돼지갈비 뼈는 찾아내 갓돌을 따라 떠밀었다.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바람은 몸부림을 쳤다. 도로 위 오물과 먼지와 검댕을 샅샅이 불러내 높이 들어 올리고, 사람들이 숨을 쉬지 못하게 오물을 콧속으로 들이밀었다. 눈에는 먼지를 찔러 넣어 장님을 만들고, 살갗이 따끔거리게 잔모래로 문질렀다. 신문지를 발목에 둘러 붙여 발걸음이 엉키게 했다. 사람들은 발을 쿵쿵 구르며 종이를 발로 차고 목구멍 깊숙이 욕지기를 퍼부었다. 바람은 불고, 불고, 또 불어 댔다. 마침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허리를 굽혀 손으로 종이를 떼어냈다. 바람은 다시 모자를 잡아채고 목에 둘러 있던 스카프를 파고들었다. 코트 옷깃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코트를 날려 버리려 버둥질했다.
바람은 루티 존슨의 머리카락을 들썩거려 목덜미에 닿지 않게 했다. 머리카락이 부드럽고 따스하게 목을 감싸고 있었기에 그녀는 홀연히 머리가 사라진 듯한, 벌거벗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얼음 같은 손가락을 목덜미에 대고 옆머리를 더듬자 루티는 오싹했다. 바람은 속눈썹마저 떼어 가 버렸고, 안구는 찬 기운에 흠뻑 젖었다. 머리 위에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표지판 글을 읽으려면 눈을 껌뻑거려야 했다.
표지판에 초점을 잡았다고 생각하자 바람이 그것을 밀쳐 버려 방이 두 개인지 세 개인지 정확히 볼 수 없었다. 세 개면 가서 물어볼 것이고, 두 개라면…… 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표지판이 바람에 흔들려 잘 보이지 않아도 그것이 오래된 것임은 알 수 있었다. 처음 칠했던 하얀 페인트는 녹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철판은 수년간의 비와 눈으로 인해 페인트가 벗겨지고 서서히 녹이 슬어 피처럼 검붉은 얼룩이 생겨 있었다.
방은 세 개였다. 바람은 그녀 앞에서 잠깐 표지판을 가만히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턱 낚아채더니, 건물과 연결된 막대에 달려 있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은 각도로 그것을 세웠다. 루티는 재빨리 읽었다. 방 3개, 중앙난방, 마룻바닥, 훌륭한 이웃. 양호함.
루티는 건물의 외관을 보았다. 여기서 마룻바닥이란 나무가 너무 오래되고 변색되어, 광약이나 셸락으로는 흠집이나 패인 곳을 숨기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수년 동안 가구에 긁히고, 시간과 아이들과 술꾼들과 추잡하고 꾀죄죄한 여자들에게 망치질을 당한 바닥이었다. 중앙난방이란 이른 아침에는 딸그락, 쨍그렁 시끄러운 소리가 나고 그 후로는 종일 쉬- 소음이 나는 라디에이터를 말했다.
유색인이 사는 플랫의 훌륭한 이웃은, 집세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같이 살게 했다. 그래서 몇몇은 주정뱅이였고, 입이 걸었고, 걸핏하면 싸움질을 해 댔다. 그들이 욕설을 퍼붓거나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는 우울증에 빠질 때면, 혹은 마찬가지로 포악하게 기세등등해질 때면 싸움이 터졌다. 루티는 생각했다. 벽들은 필름처럼 얇아서 이 착한 사람들, 나쁜 사람들, 아이들, 개들, 그리고 코를 찌르는 냄새는 고스란히 하나의 패키지에 싸여 있을 것이다. 훌륭한 이웃이라 불리는 커다란 패키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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