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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노래하듯이

계절은 노래하듯이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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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노래하듯이 (큰글자도서)
[도서] 계절은 노래하듯이 (큰글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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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노래하듯이 (큰글자도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20쪽 | 320g | 130*194*16mm
ISBN13 9791191248579
ISBN10 1191248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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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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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지은 지 20년이 넘었다. 제주의 북서쪽 바다를 면하고 있어서인지 창틀이나 외벽, 문손잡이 등이 나이보다 낡아서, 겨울이면 금 간 벽과 벌어진 창 틈새로 거칠고 찬 북서풍이 ‘휘유 휘유’ 휘파람을 불면서 드나든다. 카디건을 두르고 마루로 나가서 실내 온도를 확인하니 섭씨 15도. 시각은 5시 30분. 어제는 14도까지 내려갔다. 뜨거운 물로 보이차를 내려서 남편과 마주 앉아 음악을 듣는다. 어둑한 새벽에 잠에서 깨기 위해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이다.
--- p.18~19

역시 방학에는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내키는 대로 산책을 떠나고, 철새들을 만나고, 하루 세끼를 세심하게 차려 먹고, 요가나 근력 운동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원 없이 음악을 듣고 부지런히 책을 읽고 또 만들어낸다. 반면 숙제 같은 집안일은 남편도 나도 최대한 미뤄서 집 안 바닥은 지푸라기, 풀씨, 먼지, 보현의 털로 적당히 지저분하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은 유리병과 종이 박스가 방 한편에 쌓여 있고, 외출했다 돌아오면 집 안에서 우리 셋의 살내가 섞인 구수하고 쿰쿰한 냄새가 난다. 말끔한 실내를 좋아하지만 하고 싶은 걸 미루면서까지 집을 정돈하기엔 방학은 너무 짧다.
--- p.29

노루가 됐다가, 별이 됐다가. 물고기가 됐다가, 배가 되고. ㅁ이 됐다가, d가 되고 음표가 되는. 무한하게 이어지는 놀이가 결국에는 끝과 끝을 이은 한 가닥의 실로 귀결되는 실놀이를, 지구와 우리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해온 거라고. 방학을 마치면서 생각한다.
봄이 왔고 다시 나의 작은 농원 학교로 등교할 때가 되었다. 새 학기에는 또 누구와 손을 잡고 어떤 모양으로 변해가면서 생명의 끈을 엮어나갈 수 있을까.
--- p.41

여름의 문턱에서 귀를 기울이면, 갓난 것들이 마음 놓고 무럭무럭 자라는 순수한 기쁨의 노래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민들레 핀 보드라운 풀밭에서 망아지는 엄마 젖을 빨고, 동백나무, 참식나무, 보리수나무의 매끈하고 여린 새잎은 나날이 초록으로 짙어간다. 마을 길은 빨간 덩굴장미가 장식하고, 초당옥수수가 쭉쭉 뻗는 하늘 위를 제비들이 사인을 남기듯이 아름다운 곡선을 휘갈기고 떠난다. 하천에는 물총새가 찾아왔다. 등줄기를 흐르는 휘황한 에메랄드 빛이 여름의 바닷물을 흠뻑 발라놓은 것만 같다. 허공에서 물속으로 곧장 뛰어들어 물고기를 낚아서 배를 채운다.
--- p.82

그러던 어느 날, 황두가 우리에게 완전히 마음의 문을 연 일이 벌어졌다. 전날 밤에 보현과 가을 전어, 참치 회 파티를 벌이고서 참치 회 세 점을 남겼는데, 다음 날에는 조금 비려지기도 했고 어제 우리 셋만 먹어 미안하기도 해서, 무쇠 팬에 달달 휘릭 휘릭 볶아서 황두의 첫 특식으로 줬다.
그런데 글쎄 깊어가는 밤에 부엌 창 너머로 늑대 울음같이 긴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야옹, 냐아~~~옹, 냐아아아~~~~~옹.”
이건 틀림없이 환희의 노래다! 너무 맛있었나? 어쩜, 별일 아닌데 괜히 나까지 기쁘네. 종종 해줘야지.
--- p.172~173

요즘 우리 농원은 새하얀 귤꽃이 만개할 때만큼이나 아름답다. 주황빛으로 무르익은 동근 귤이 가지가지마다 매달려서 주변의 황량한 겨울 풍경에 따스한 빛을 던진다. 꼭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농원에 도착하면 가시 돋친 제주진득찰을 피해서 안으로 한 걸음씩 떼며 귤들과 눈ㅇ르 맞추고 반갑게 인사한다.
“오늘은 조금 더 예쁘게 익으셨네요!”
--- p.190

오두막 위로 화목 난로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친구들은 한 사람씩 한 그루의 나무 안으로 들어가서 가위로 귤을 딴다. 광주리에 귤들이 툭, 툭, 떨어지는 소리와 무거운 귤을 떨군 가지가 가뿐하게 몸을 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귤을 따다가 문득 올려다보는 파란 하늘, 나뭇가지를 헤치다가 발견하는 새의 둥지나 매미 허물은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쁘고, 광주리에 가득 담겨 온 귤들과 쉬는 시간에 바지와 털모자에 고슴도치처럼 풀씨를 묻히고 나타나는 친구들의 모습은 수확기에만 만날 수 있는 진풍경이라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하고 또 애틋하게 여기게 됐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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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이런 글을 기다려왔던 것 같다. 도시의 소란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 나와 당신, 우리의 작은 개가 얼마나 고유한 꼭짓점들이며, 그렇게 이루어진 삼각형이 얼마나 단단한 세계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생명, 시, 음악, 순환, 섭리, 이해, 우정, 기도와 같은 단어들을 자전축으로 삼은 이 찬찬한 고백 앞에서 영혼의 눈과 귀가 씻기는 기분이었다. 갈피마다 빛이 일렁이는 사랑의 책이다.
- 안희연 (시인)
아직 나에게는 낯선 24절기의 테두리가 자연을 만지고 살아가는 오하나 작가에게는 지극히 편안해 보인다.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단순한 순리를 따르며 그는 누구보다 먼 곳에, 누구보다 촘촘히 다녀오는 것 같다. 과거의 귤나무와 미래의 멧비둘기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는 그의 동근 세계를 읽다 보면 슬그머니 나의 영혼도 곁에 같이 세워두고 싶다.
- 요조 (뮤지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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